그곳에도 한류 열풍 (韓流) 뜨겁게 불어
그곳에도 한류 열풍 (韓流) 뜨겁게 불어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6.01.2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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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170개 민족들이 더불어 사는 北카프카스

北카프카스 지역 7개의 자치공화국에 170여 개 민족, 660만 명이 공존

북(北)카프카스=북(北)카프카스는 러시아 남서부의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카프카스 산맥을 경계로 북쪽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산맥 남쪽에는 조지아(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이 있다.

북카프카스 지역이 세계에 많이 알려진 것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러시아와 체첸 간에 두 차례 벌어진 체첸 전쟁과,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당시 폭탄 테러 사건을 자행한 2명의 범인이 체첸과 다게스탄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다. 

북카프카스는 행정구역상 러시아 영토인데 그곳에는 아디게이, 까라차이 체르케스, 까바르딘 발카르, 북오세티아, 잉귀시, 체첸, 다게스탄 등 7개의 자치공화국이 있다. 생소한 이름의 이 공화국들에는 170여 개 민족, 660만 명이 모여 살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도착한 카바르딘 발카르의 수도 날칙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어떤 민족이세요?”라는 질문에 “까바르딘 족입니다”, “발카르 족입니다”, “체첸 족입니다”, “꾸믹 족입니다”라고 제각각 답한다. 

이 땅을 처음 밟은 기자의 눈에는 외모가 다 비슷하게 보이는데, 사실은 저마다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각각 민족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공용어인 러시아어가 없으면 다른 민족끼리는 의사 소통이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넓지 않은 이 지역에 이처럼 많은 민족이 살고 있고, 저마다 자신들의 고유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이번에 방문한 까바르딘 발카르, 잉귀시, 체첸, 다게스탄도 수십 개의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라는 것이다. 

북카프카스 지역은 7세기에 이슬람화 되었는데 1800년대 러시아에 정복당하면서 러시아 정교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이슬람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중동의 무슬림들과는 달리 아랍어를 몰라 아랍어로 쓰인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읽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이슬람을 믿고 있다는 것이 지역 전문가들의 말이다.

거리에서 본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머리에 스카프를 둘러 머리카락만 가리고 다닐 뿐 일부 중동국가에서 보는 것처럼 몸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가리고 다니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슬람의 종교성은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까바르딘 발카르보다 잉귀시, 체첸, 다게스탄이 강해 이 지역에는 곳곳에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가 있고 식당이나 거리의 차량에서 ‘나는 선지자 마호멧을 좋아합니다’라고 쓰인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 다게스탄 따박사란 민족의 마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해

북카프카스 지역은 이슬람 테러 집단의 근거지가 되어 러시아 정부가 수행하는 테러와의 전쟁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벌인 체첸은 이슬람 종교성이 강해 이들을 중심으로 알 카에다의 분파인 ‘카프카스 에미르’라는 이슬람 테러 집단이 활개를 치다가 얼마 전부터 러시아 정부의 단속으로 기세가 꺾인 상태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거리에는 총을 들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경찰들이 나와 경계를 서고 있다. 밤이면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조용하다고 한다. 이유는 북카프카스 지역에 있는 대다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 IS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2700여 명의 러시아인들이 IS에 가담했는데 이 중 대다수가 북카프카스 출신이다. 러시아가 갑자기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 IS를 공습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 가운데 있는 북카프카스 출신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들이 나중에 북카프카스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해외에서 제거하자는 전략이라고 한다. 

인구 100만의 까바르딘 발카르는 까바르딘 족과 발카르 족이 주된 구성원이다. 발카르 족은 잉귀쉬 족, 체첸 족과 함께 1940년대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아픔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발카르 족 여인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약 60만 명이 북카프카스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되었는데 이 가운데 3분의 1이 그 과정에서 죽었다면서 “이 사건은 발카르인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잉귀시에서 만난 한 대학의 여자 교수 역시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잉귀쉬 민족이 겪었던 강제 이주의 아픔을 토로했다. 소련은 이들이 독일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강제 이주 시켰다.

이들처럼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등 소련 극동지방에 살던 한인(고려인)들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는데 북카프카스인들은 이 때 고려인들과 동고동락해 고려인, 한국인을 친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기자를 보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봤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환하게 웃으며 환대했다. 

▲ 다게스탄 처녀들. 북카프카스 지역은 170개 민족의 전시장이다.

이곳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호감을 높이고 있다. 14세의 까바르딘 족 소녀는 기자가 한국인이라니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고마워요”라고 인사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는 것이다.

잉귀시에서는 두 명의 소녀들이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인터넷으로만 봤던 한국인을 실제로 본다며 환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체첸에서 만난 여대생은 이민우, 겨울연가의 배용준 등 한국 배우의 이름을 말하며 좋아했다. 삼성, LG, 현대 등 한국기업들 역시 이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을 높이고 있었다. 

신도시로 재탄생한 그로즈니

이번 방문 중 가장 인상적인 도시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였다. 이곳 중심가에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웅장한 모스크와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하며 완전 폐허가 되었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반듯한 도시였다. 

체첸은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가 독립하자 자신들도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카스피해에서 채굴하는 원유 정유시설이 있고 송유관이 관통하는 체첸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독립선언을 받아들이지 않자 체첸과 러시아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1차 체첸 전쟁(1994~1996년), 2차 체첸 전쟁(1999~2009년) 과정에서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완전 폐허가 되었다. 

▲ 체첸 전쟁 다시 완전 파괴되어 폐허가 됐던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 전쟁 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신도시로 재탄생됐다.

러시아는 2차 체첸 전쟁을 승리한 후 친러 정권을 체첸에 세우고 그로즈니를 재개발해 지금과 같은 신도시로 바꿔놓았다. 얼마 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가 운영했던 체첸 석유회사를 체첸 정부에 넘기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체첸 정부를 밀어주고 있다. 

인구 200만의 다게스탄은 36개 민족으로 구성된 자치공화국이다. 대부분 고산지대인 다게스탄에서 기자는 ‘따박사란’이라는 한 민족을 방문했다. 이 민족의 언어는 주격, 목적격 등 언어의 격이 42개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다. 

20여만 명의 이 민족은 다게스탄의 수도 마하치칼라에서 남쪽으로 3시간여를 자동차로 가면 나오는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손으로 짠 카펫이 특산품인 이들은 주로 양, 닭, 소 등을 키우는 목축업을 하며 살고 있는데 외부 손님에게 친절하고 집을 쉽게 오픈한다는 말과 달리 이들의 경계와 의심의 태도로 기자를 대했다. 

따박사란 민족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좀 더 배우고 싶어 하루 밤 집에서 묵을 수 있냐고 물으니 집집마다 거절했고, 어떤 집에서는 기자를 끌고 경찰서로 가기도 했다. 

알고 보니 얼마 전부터 정부의 대테러 정책으로 낯선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와 누군가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되면 경찰에 신고해 정보부의 조사를 받도록 하거나, 외부인은 호텔에서 숙박하도록 하는 것이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이 고산지대의 시골마을도 전 세계를 두려움에 빠뜨리고 있는 테러의 영향권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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