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아니라 소설을 가르치는 북한
역사가 아니라 소설을 가르치는 북한
  • 미래한국
  • 승인 2016.01.2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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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북한 각급 학교에서의 역사교육

한국사를 계급사관과 주체사관, 민중사관으로 허위·조작·날조하여 김일성 가족사로 연결 

북한에서는 <력사>라는 교과서로 국사교육을 소학교 상급학년에서는 주당 1시간, 중등학교에서는 2학년까지 주당 1시간, 3학년부터 6학년 동안은 주당 2시간을 가르치고 있다.

▲ 김동규 고려대 북한학과 명예교수

북한은 김정일 통치 때까지 유치원에서부터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어린 시절>이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소학교에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어린 시절>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의 어린 시절>을, 중등학교 과정에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혁명 활동>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의 어린 시절>이라는 이름의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서도 기초필수 교양과목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 력사>,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로작>을 주당 1~3시간 배정하고 있어 사실상 명칭만 다를 뿐 국사교육 성격의 교재다. 더구나 지금은 김정은에 대한 유사과목이 추가되어 북한의 역사교육은 남한과는 분량과 내용에서 매우 다르다. 

북한의 역사관은 철저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입각한 계급혁명사관과 민중사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1970년대에 들어 이른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중심한 혁명전통론과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에 의한 주체사관, 그리고 그의 혁명혈통 중심의 가족사까지 가미된 특이한 역사관을 따르고 있다. 이것은 세계사에서도 전례 없는 역사교육 내용이어서 후세 세계 역사가들에게 흥미로운 연구 논문의 주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계급사관과 주체사관으로 역사 서술 

북한의 공식적인 종합역사서는 1975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개정판으로 출간된 <조선전사>다. 34권으로 편집된 이 책은 원시편(1권)과 고대편(2권), 중세편(3~12권), 근대편(13~15권), 현대편(16~34권)으로 이뤄져 있다. 김일성을 역사의 중심축에 놓으려다보니 현대편이 압도적으로 많다. 

<조선전사>는 원시시대(원시무리 시기, 모계 씨족사회, 부계 씨족사회)-고대(고조선, 구려, 부여, 진국)-중세(고구려, 후부여, 백제, 전기신라와 후기신라, 가야, 발해, 고려)

-근대(리조)-현대(항일혁명투쟁, 새 민주조선 건설을 위한 투쟁, 조국해방전쟁 승리를 위한 투쟁,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 기초건설을 위한 투쟁, 사회주의 전면적 건설을 위한 투쟁,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하는 데서 결정적 전환을 가져 오기 위한 투쟁) 등의 이름으로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의 중등학교 역사교과 내용을 1980년 과학백과 출판사가 발행한 <조선전사>와 1983년 사회과학연구소가 리종현의 저자명으로 펴낸 <현대조선력사>, 그리고 1984년의 <근대조선력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심각한 왜곡이나 비현실적인 허구나 허위, 위선으로 조작, 기술되고 있음이 쉽게 발견된다. 

첫째, 668년에 있었던 신라 삼국통일을 계급사관과 주체사관으로 해설하고 있다. 

<조선력사>에서는, “신라 봉건 통치배들은 당나라 침략자들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킴으로서 세 나라 인민들에게 커다란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고 국토의 많은 부분을 침략자들에게 빼앗기게 하였다”라는 기술로 신라가 통일 후에 당의 부당한 요구를 일축하면서 삼국통일의 힘으로 문화의 융성과 국력의 강화를 가져온 점을 폄하하고 있다. 

둘째, 임진왜란과 관련된 충무공에 대한 평가이다. 

“리순신 장군은 량반 출신으로 봉건지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봉건국가를 위해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조국해방전쟁 시기에 사회주의 조국을 위하여 자기의 가슴으로 적 화구를 막아 부대의 직격로를 열어놓은 애국자들과 비길 수 없다”라고 하여 지나가던 소도 웃을 비교평가를 하고 있다. 

허위와 조작 

셋째, 비현실적이거나 근거 없는 허구적인 것으로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1919년 3·1운동에 관한 것으로, “3·1 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독립만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이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서는 여덟 살 되시는 어리신 몸으로 반일시위 대열에 참가하시어 30여 리나 되는 평양 보통문밖까지 가시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 길거리에 갑자기 사람들이 모이면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니까 어린 마음에 호기심으로 졸졸 따라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33인에 의한 독립선언문이나 서울의 파고다 공원 집회에 관한 사실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넷째, 일제하의 상해임시정부에 대한 평가다. 

“도대체 지금 민중들은 도처에서 피 흘리며 일제 헌병의 총칼에 맞서 맨손으로 싸우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정부를 만들어 한자리씩 해먹겠다고 서로 대립하고 암투를 벌이는 것 자체가 민중에 대한 배신 행위였다”고 기술하여 김구나 이승만의 독립투쟁사를 비판함으로써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독립운동의 정통성으로 만들고 있다. 

독립운동가 김구에 대한 평가도 “김구는 지난날 공산주의자들을 배척해온 사람으로서 자기를 민족의 지도자로 내세우던 완고한 민족주의자였다. … 일생을 두고 공산주의를 반대해 온 김구 까지도 ‘조선을 바로잡을 영웅은 오직 김일성 장군님 밖에는 안 계신다. 나는 김일성 장군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겠소’라고 하면서 조국통일을 위해 굴함 없이 싸울 것을 맹세 다졌다”라는 근거 없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다섯째, 1945년 8월 15일 민족해방에 대한 허위와 조작이다. 

<현대조선력사>에서는 “조선의 해방은 김일성이 조직 령도한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가 가져다 준 위대한 결실이었다”로 기록하고 있으며, 중등학교 5학년 <력사> 교과서에도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서는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시었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런 국사교과서로 공부한 탈북자들은 8·15 해방이 오로지 김일성에 의해 성취된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여섯째, 남북한 정부수립의 정통성에 관한 기록이다. 

2001년 북한의 백과사전 출판사가 펴낸 <조선대백과사전 제18권>의 현대사 부분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과 그 위력의 강화’라는 항목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 밑에 주체 37년 8월 25일 남북조선 총선거는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북반부에서는 합법적으로 민주주의적 선거를 실시하여 212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였으며 남조선에서는 비밀리에 선거자들의 서명을 받는 방법으로 1,080명의 인민대표들을 선출하고 그들이 해주에 모여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하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 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하시고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고 하면서 북한정권이야말로 남북한의 유일한 정통 정부임을 역설하고 있으나 사실적인 근거가 없는 허구일 뿐이다. 

민중사관으로 시대 구분 

끝으로 1950년 6·25 전쟁에 관한 기술은 허위와 허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 동안 침략전쟁을 준비하여 온 미제 침략자들과 그 앞잡이 놈들은 1950년 6월 25일 드디어 조선전쟁을 일으켰다. 이날 이른 새벽 적들은 38선을 넘어 공화국 북반부에 대한 불의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평화롭던 이 땅 우에 총포소리가 울리고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 전사(戰史)에서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기는 전력으로 어리석은 전쟁을 먼저 일으킨 사례가 없다. 또한 6·25 전쟁도 결국 ‘김일성 원수님께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군을 물리치고 조국강토를 지켜내어 승리로 이끈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역사기술의 기본원칙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계급투쟁사관에 입각한 철저한 민중사관에 의하여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 

즉 남한의 역사교과서는 고대(선사시대)-중세(고려시대)-근세(조선시대)-현대(일제시대, 공화국 수립)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는 데 반하여 북한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따라 고대 무착취의 원시사회(정)-중세와 근세의 노예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와 계급투쟁 사회(반)-현대의 사회주의 사회의 무계급 사회(합)로 발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계급사관에 의한 민중사관, 그리고 김일성의 쇼비니즘적 주체사관 때문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역사적인 사실도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왜곡하여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해석이다. 신라가 자력으로 3국 통일을 이룩한 것이 아니라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아 국사에서 신라 삼국통일의 표현을 배제하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1951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북한 영토를 보전한 6·25 전쟁도 북한의 승리라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승기념일로 삼고 있음은 자가당착이다. 

한편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도 철저한 계급사관에 의존하고 있다. <조선역사> 제4권 46쪽에 “리순신 장군은 량반지주 출신으로 봉건지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봉건국가를 위해 싸웠다”고 쓰고 있다. 

철저한 계급사관이다. 아무리 북한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적 가치기준으로 모든 현상을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사가 평가하는 민족 영웅을 지배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쟁터의 일개 졸병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역사관과 각급 학교 역사교육 내용에 관한 기본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피지배계급의 투쟁사가 이어져 

첫째, 1960년대까지는 마르크스의 계급사관에 기초하고 있어 역사 서술의 중심에는 항상 통치계급 보다는 피지배계급인 민중들의 투쟁사로 이뤄져 있다. 

남한에서 해방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제도 전반이 미국의 자유자본주의적인 이념과 제도를 그대로 도입 적용했듯이 북한도 사회제도와 학교교육의 틀을 종주국이었던 구 소련의 통치 형태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리하여 북한의 국사교육에서는 민중사관에 근거하여 근대사 부분의 동학란이나 3·1운동 등의 민중봉기 중심의 내용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둘째, 근대사에서 고구려와 고려사를 중심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역사 구분은 남한과는 달리 단군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의 순서로 서술되어 있다. 남한지역 중심의 국가였던 삼국을 무시하고 북한지역 중심의 국가를 강조한 것은 역사적인 정통에서도 남한보다는 북한지역이라는 점과 건국의 뿌리도 서울보다는 평양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시도다. 

그리고 단군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하면서 평양 외곽에 거대한 단군왕릉을 조성하고 있는 것도 민족의 뿌리가 북한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단군의 유골인지 아닌지도 통일 후에 검증해야 할 과제다. 

셋째, 196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김일성의 항일운동 중심의 소위 ‘혁명전통론’을 부각시키면서 각급 학교의 필수교양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극히 미미하고 별다른 전과도 얻지 못한 1937년 ‘보천보 전투’를 내세워 통치권 확보의 기반을 만들었고, 동시에 김일성을 일가의 혁명가족 혈통론의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북한의 현대사는 완전하게 김일성 개인과 일가의 가족사로 이뤄져 있다. 

넷째, 1960년대의 ‘혁명전통론’과 함께 대두된 김일성의 ‘주체사관’이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1986년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남의 것을 올려보거나 본 따려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우리 식대로 하는 수령의 주체사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연호(年號)도 김일성의 출생년도인 1912년을 기점으로 ‘주체 00년’으로 바꾸고, 모든 국사와 세계사도 북한 중심의 역사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제일주의’ 또는 ‘우리 식대로 산다’와 같은 구호로 나타나고 있다. 철저한 쇄국주의이며 전근대적인 변태적 쇼비니즘이다. 

끝으로 혁명적 낙관주의의의 역사관과 승리사 일변도의 역사 서술이다. 

북한의 근현대사에서는 외국과의 충돌이나 전쟁사에서 한 번도 패했다는 기록은 없고 모두가 자국 승리로 끝났다고 설명한다. 패배사는 없고 승리사만 있다.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통치도 김일성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1950년의 6·25 전쟁도 북한이 미제를 타도한 조국해방전쟁으로 묘사하면서 평양에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학생들에게 역사현장 교육의 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혁명적 낙관주의 역사관으로 생겨난 것은 1990년대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대량의 아사자가 발생했을 때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로 주민들에게 인내심을 갖도록 유발한 것이라든지, 비록 지금은 ‘고난의 행군’으로 살기 어려우나 사회주의 조국은 결국 자본주의 남조선을 타도하고 최후의 승리는 북조선이라는 것을 모든 주민들에게 주입시켜 미래의 희망을 갖도록 만들었다. 

역사담당 교사들의 재교육 이뤄져야 

이상과 같은 남북한 간의 역사관과 역사 서술 문제의 엄청난 괴리와 편차는 상호 이질화의 기본을 이루면서 통일 이후 민족 동질성 회복에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가장 합리적인 역사 사실의 해석과 기준은 어떠해야 하는가. 특히 매우 심각한 이질성을 내포하고 있는 남북한의 현대사 문제 해결을 두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역사적 사실(事實)은 분명히 하나인데 해석은 둘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남북한 역사연구자들이 해결해야 되는 무거운 과제다. 

사실 역사 기술 문제는 기술자(記術者)들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은 존재론일 뿐 인식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가의 시각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역사의 본질이 순수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일지라도 현상론자 후설이 개념한 회의론적인 ‘판단유보(에포게)’가 적용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는 선악 판단이 배제되는 자연과학적인 성격을 지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은 시비선악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여하튼 역사는 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역사와 같은 허위와 허구의 사실만은 배제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역사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교과서 내용을 바로잡고 국정화시켜도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사관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반감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과서 내용 수정과 함께 일선학교 역사담당 교사들의 재교육이 동시에 이뤄져야만 참다운 국사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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