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경제의 마력에 빠져
북한, 시장경제의 마력에 빠져
  • 미래한국
  • 승인 2016.02.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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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정보] 변화하는 북한

북한 개인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 중국제 능가, 고리대금업 뜨고, 판매원들 스마일 교육까지

북한의 변화에 대해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이 깊어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혐오스러워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념이 어찌되었든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아와 빈궁, 처절한 인권 침해, 상상을 초월하는 개인숭배, 종교탄압의 참상들이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더욱이 그들이 수소탄이라는 인류 최악의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북한체제의 존재 자체와 존재의 경과가 지구촌에 미칠 파괴와 살육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韓美)와 국제사회는 군사적 위엄과 공포 조성, 경제 제재,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 압력 등을 수 십 년 동안 거듭해 왔지만 체제 변화의 근본적 동인(動因)을 만들어내지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한미 연합군의 최신무기들의 위엄과 공포는 최고지도부의 제한된 작자들을 제외하고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결코 확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공포는 뉴스나 이미지 등을 통해 대중에게 확산되는데, 북한은 1채널뿐인 TV와 라디오, 신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정보의 확산 통로가 극히 미미하다. 

둘째, 경제 제재는 실제로 효과적이지 않다. 경제 제재가 북한 정권의 경제적인 국가관리 능력을 바닥에 떨어뜨려 자포자기하게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한 당국의 국가 운영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1995년 이후 북한은 국가가 부담하던 식량·생필품·연료 배급을 포기하고 명색만 무료교육, 무료보건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붕괴 직전까지 갔던 국가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시장을 만들어 놓고 주민들이 거기서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을 자력갱생으로 해결하도록 훈련시켰기 때문에 국가 운영 재정이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다만 김정은은 체제 유지를 위한 비용과 비대칭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달러만 있으면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가 강화되어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한다. 

동시에 북한 주민들은 대북 경제 제재 조치로 초래되는 기아와 궁핍을 김정은의 잘못이 아닌, 미국과 한국 등 제국주의의 고립 압살 정책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중동과 같은 대중적 반발과 반정부 시위가 유발되기 어렵다. 

셋째, 대북 심리전의 효과가 예상했던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물론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절대적인 충성 및 우상화 의식 프레임이 크게 바뀌거나 김정은 및 정부 정책에 대해 반감을 품거나 그것을 공식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현재 우리 군이 시행하는 대북 심리전은 주로 북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간부, 학생, 대학생, 일반인, 여성,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북한 주민들에 대한 맞춤형 심리전이 될 수 없다. 
 
시장과 진실의 힘이 북한을 움직여 

그렇다면 북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경험에 의하면 두 가지 요인, 즉 시장과 진실의 유입이다. 그밖에 인권 의식 확산과 국제사회의 압력 등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의 힘은 심리전의 힘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와 닿고, 심금을 울리며, 그들이 바깥 세상을 알고 싶은 갈증을 그들의 수준과 눈높이에서 해갈해 줄 수 있는 그런 진실이다. 

필자는 북에 있을 때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거의 9년 동안 남한 라디오를 들었는데, 초기에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뉴스와 프로그램들에 귀를 떼지 않고 들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난 후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간헐적으로 들었고, 초기와는 현격하게 청취시간이 줄어들고 집중도가 떨어졌다. 라디오를 듣다가 자버리기가 일쑤였다. 라디오를 통해 얻는 지식이나 상식이 내일 돈을 손에 쥐거나 장사를 하는 데 직간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오랫동안 청취하다 보면 집사람이나 가족이 알게 되는데, 보위부에 발각되어 큰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라디오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외부 정보를 북한 내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유입기술, 정보 콘텐츠, 유입 조직의 구축이다. 

시장은 북한사회 변화와 북한 주민 마인드 체인지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은 구체적인 실상과 몸으로의 실천을 통해 시장 대 국영상점, 자유로운 개인 활동 대 조직적인 집체 활동, 개인의 책임에 따른 소득 형성 대 국가 분배에 의한 소득, 국가가 만들어 공급하는 생필품 대 개인의 창의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필품 등 뚜렷한 차이를 각인하게 되고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좋은가를 생동감 있게 한다. 

북한은 올해로 시장을 허용한 지 거의 20년이 됐다. 그 동안에 북한의 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거듭했고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년 간 북한의 변화 양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장이 계획화 경제부문과 경쟁하는 새로운 사(私)경제 형성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던 구조로부터 생산적 토대를 갖추고 중국 상품과 경쟁하면서 생존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장인기술, 지혜와 근면성이 사적 이해관계의 자극으로 촉발되어 상품을 북한의 실정에 맞게 잘 만들어 냄으로써 이제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북한에서 자생적 시장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시장에서 부를 축적해 고급 화장품, 기호품을 구매하고 가사도우미까지 활용하고 있다. 사진은 평양의 화장품 공장 모습이다.

사금융, 서비스업, 운송업 활발 

상품 개발과 생산을 목표로 한 수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품질 향상에도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어 액세서리 등은 중국보다 북한이 더 잘 만든다. 동대문시장에서 만든 의류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질이 높은 제품을 만든다. 중국 의류업체들도 북한의 미싱 기술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오히려 북한을 불량상품시장으로 여기면서 “중국산이라면 헌 고무신도 북한시장에 가지고 가면 다 돈이 된다”고 하던 중국 상인들의 신화가 더는 신화가 아니다. 

시장의 불안정이 가셔지고 생산자본과 유통자본, 금융자본이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초창기 장마당의 허울을 완전히 벗고 완전한 구조와 메커니즘을 갖춘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개인이 공장기업소 설비를 돈을 주고 빌린 다음 식용유 생산기계, 인조고기 생산기계 등 기계 설비들까지 생산 공급함으로써 사경제와 계획화 경제부문의 영역을 허물고 그 내부로 확장해 들어가고 있다. 

이제 시장은 과거와 달리 상품과 재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까지 공급하고 있다. 최근 북한 내에서 운송업이 발전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송 노선들이 증설되어 전국 각지의 버스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다. 그 결과 열차에만 의존하던 교통 상황이 크게 해소되었다. 기차와 버스를 타면 전국 어디나 갈 수 있어 주민 이동 통제 구조가 무너졌고, 여행증 발급제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돈이 될 만한 각종 신생 서비스들이 오픈되고 있다. 특히 안마사, 방문의료, 방문요리, 가정교사 등 맞춤형 가사 도우미, 심부름집, 콜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마케팅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백번 물음에 백번 웃으며 대답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개인 식당 등 자영업자들은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배꼽인사 훈련과 스마일 표정훈련을 시키고 있다. 

특히 이빨을 세 개 정도 드러내고 웃는 연습을 시키고 있어 서비스의 질이 엄청 높아진 것에 대해 모두가 좋아하고, 변화를 칭찬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장사꾼들은 아무렇게나 입고 매대에서 물건을 팔았지만, 이제는 다들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쓴다. 왜냐하면 판매원의 화장과 패션, 인상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화의 진전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금융 문제도 사금융으로 해결하고 있다. 과거 수령이 독점하던 금융자원이 점점 주민들의 수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중앙은행을 비롯, 수령이 장악하고 있는 은행들은 공장, 기업소들과만 거래하지만, ‘돈데꼬’, ‘돈주’, ‘돈 거간집’들은 주민들에게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려줘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불린다. 

고리대금업자들은 휴대폰 통신이 발달하면서 주요 도시의 동종업계 사람들과 연계망이 맺어져 돈의 이체와 전달, 운반까지 하므로 장사를 훨씬 편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당국과 은행들이 발행권과 모든 유통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북한 화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시장에서 잔금도 중국 인민폐를 포함한 외화로 치르다 보니 북한 화폐는 ‘그림종이’로 전락하여 휴지라는 의미의 ‘펄라리’로 치부되고 있다. 

목숨 가진 사람은 다 시장으로! 

동종업계 뿐만 아니라, 타 업계 사이에서 협력생산체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선 수공업 생산가게에서는 단독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여럿이 모여 협동생산을 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의류를 생산하는 데 1명이 모든 가공 공정을 걸쳐 하루에 한 벌 생산했다면, 이제는 전문화 된 공정에 한 명씩 배치되어 협력으로 의류를 가공하다보니 지금은 6명이 하루에 20벌 생산, 즉 노동생산 능률이 3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가공설비, 기계, 기술, 운송수단들을 서로 빌려주거나 임차하면서 개인이 구상하는 상품을 생산하고 있어 민수경제, 군수경제, 당경제와 함께 당당한 4섹터인 사경제를 형성하고 그 영역을 급속도로 넓혀나가고 있다. 
사적 노동시장이 급속히 커져가고 있다. 평성, 평양 등에는 노동시장이 있는데, 여

기서는 일당을 구하거나 일일 동원 대타를 구하는 수요자와 개인, 혹은 노력 거간꾼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시장에서 공급되는 인부들은 계획경제 체제 내의 공장·기업소가 아니라, 사경제 쪽의 수공업 가게나, 개인 주택건설, 개인집 개보수, 일용직, 파출부, 노력동원 대타에 돈을 받고 노동력을 팔게 된다. 

특별히 장사를 할 것이 없거나, 몸은 건강하지만 기술이 없거나, 돈이 필요하지만 사용자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서 노동력 수요와 공급이 만나게 된다. 

이 시장은 일반 시장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 계획경제 체제의 노동자들이 이중적인 노동시장에 중첩하여 참여하는 것으로써 단속되거나 고발되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워낙 사경제 분야에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중요한 원인은 사적 노동시장의 일자리에서 하루 받는 일당은 계획경제 체제 내 공장 기업소에서 1년 이상 받는 고액이기 때문이다. 

사영농업의 대부분은 개인 가족 단위의 소규모 농사 및 축산이지만, 최근에는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농지에 투자해 대규모 농사를 짓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돈주들은 지방 간부와결탁하여 공장 기업소가 관리하는 부업지를 빌려 종자와 비료를 투자하고 농민을 고용해 농사를 지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런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으로 언제든 단속 대상이 될 수 있어 얼마나 확산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시장에 대한 인식이 간부건 주민이건 일제히 달라졌다. ‘목숨을 가진 사람은 다 시장으로’라는 구호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지만 수요-공급이 맞춰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집단이 성분과 계급에 의해 분류되었으나 지금은 돈과 사회적 인맥, 판매망, 정보, 권력 접근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 친척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제일 잘 살았다. 지금은 시장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 쓰고 살며, 충분한 서비스를 받는다. 다른 사람들이 못 쓰는 화장품, 기호품을 쓰고, 식모와 가정교사까지 두고, 중국이나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그럴 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황금 만능주의 만연 

수산업에서도 사경제 활동이 활발하다. 본래 수산업은 수산사업소나 수산협동조합, 군대, 수산기지 등이 담당하게 되어 있지만 오래 전부터 개인 선주가 사업소 소속 어선을 임차해 고기잡이를 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나온 흥미로운 소식은 동해에서 오징어(북한 말로는 낙지)가 풍어를 기록하며 동해안 지역 주민만이 아니라 타 지역 주민들까지 동해안으로 몰려들어 대거 오징어잡이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낙지 오징어를 직접 잡아들이는 배꾼들과, 그를 넘겨받아 유통해 주는 달리기꾼, 손질하는 가공업자 등 여러 업종 사람들로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수산업뿐만 아니라 유통업·운수업·가공업까지 포함하는 식품경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장화의 진전은 북한 사회에 또 다른 부작용도 함께 몰고 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번창하는 시장에 품질 높은 상품 및 서비스가 공급되면서 돈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관심, 즉 황금만능의 가치가 뿌리깊이 새겨지고 있으며 “시장에 가면 고양이 뿔 내놓고는 다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돈만 되면 무엇이든 다 하려는 중상주의가 우심해져가고 있다. 

사회주의 대가족 사상에 세뇌되어 서로 돕고 인정 깊었던 사회가 이젠 “상대를 딛고서라도 내가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훈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주민들이 “조상 전래의 도덕이 증발했다”, “도덕이 왕가물이 들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의 기반 위에서 복종과 규율 지키기에 습관이 되었던 북한 주민들이 그 도덕과 가치들을 케케묵은 것으로 폄훼하고 있으며 “지금은 선량한 척 하던 사람들은 다 죽고 승냥이들만 살아남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영악스럽고, 적대적 공생관계를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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