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협정과 중국의 국제권력 정치
한반도 평화협정과 중국의 국제권력 정치
  • 남시욱 미래한국 고문
  • 승인 2016.03.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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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역사상 전례 없이 강력한 북핵(北核) 제재가 과연 성공을 거둘지 여부는 그리 머지않아 판명이 날 것이다. 지난 3월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對北)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간 초기의 사태 발전을 보건대 세 가지 정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 남시욱 미래한국 고문·세종대 석좌교수

첫째, 북한 김정은 정권이 자진해서 핵을 포기하는 경우, 둘째, 김정은 정권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다가 안고 쓰러지는 경우다. 김정은은 유엔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핵탄두의 경량화·표준화·규격화에 성공했다면서 선제타격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셋째, 과거 여러 번 그랬듯이 중국이 앞으로도 슬그머니 대북제재를 풀어줘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대한민국에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다. 

한국에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첫째 경우다. 김정은이 이란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례를 따르는 길이다. 세계 4위의 핵보유국이던 카자흐스탄은 그동안 수백 회의 핵실험으로 인해 수 천 명이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한 핵 재앙을 겪고 난 뒤 소련 붕괴 후 독립국가가 되면서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자진해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체제 붕괴냐 핵 포기냐 택일 요구 

따라서 문제는 둘째와 셋째 경우다.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다 핵을 안고 쓰러지면 우리에겐 새로운 형태의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김정은이 핵 개발을 고집하다가 외부적 요인 또는 내부적 요인에 의해 3대 세습체제가 종료될지는 모르나, 그것이 북한 정권 내지 북한이라는 국가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북한이라는 완충국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중국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안 채택 이전부터 줄기차게 한반도 평화회담을 주장한 것은 북핵의 순조로운 포기를 목적으로 함과 아울러,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2월 17일 베이징에서 열린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반도(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병행 추진하는 협상 방식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안 골자를 미국 측과 타결한 직후인 2월 25일에는 워싱턴 D.C.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다시 “미북 평화협정 없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북한의 비핵화에는 미북 평화협정이 필수적인 전제라는 의미다. 

이 같은 중국의 행태는 북한이 체제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고강도 제재와 압박을 가해 김정은으로 하여금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하려는 한국 정부와 미국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사실 자체가 비핵화 의사가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16일 국회 연설에서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 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다”면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다. 즉 김정은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고, 체제 붕괴냐 핵 포기냐 중 양자택일을 하도록 강박하자는 것이다. 

중국, 평화회담 병행 주장 

박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대화’라는 용어는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도 이 무렵 정례 브리핑에서 왕이 부장의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제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평화체제 구축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 따라 비핵화가 진전됨에 따라 관련 당사국이 별도 포럼에서 협의하도록 되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21일자 온 라인 기사에서 북한 측이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 전에 미국 측에 평화협정 협의를 제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북측과의 접촉 사실을 시인하면서 “분명히 말하자면 북한이 먼저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했다”면서 “우리는 제안을 신중히 검토한 후 비핵화가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나 북측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 역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인 2월 20일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렇게 되자 딜레마에 빠진 것은 중국이었다. 왕이 외교부장은 3월 9일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날 베이징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핵문제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중국은 3자, 4자, 5자 접촉 등에 대해 모두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왕이 부장은 중국이 북한에 대해 제재보다는 6자회담의 재개를 원한다는 기존 입장을 설명하면서 이 같이 언급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도 중국이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았다. 다만 그는 안보리 결의와 관련해서는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그 결의를 실행할 책임과 능력이 있다면서 철저한 이행을 강조한 점에서 그의 평화회담 주장이 아직은 조건부는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왕이 부장은 “한반도 최대의 이웃 국가인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이 근본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의 안보 이익이 이유 없이 손상을 입는 것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북한의 발전과 안전 추구에 대해 우리는 지지와 지원을 희망한다”고 북한 지원 방침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측의 한발 양보하는 듯한 평화회담 제의에 대해 한미 양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양국은) 향후 북한과 어떤 대화에 있어서도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일관된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중국 측의 평화회담 병행론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미국 국무부의 카티나 애덤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 역시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우리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 기반 한 진정성 있고 믿을 만한 협상에 응할 자세가 돼 있다’는 점을 북한에 지속적으로 말해 왔다”면서 “동시에 어떤 대화든 비핵화가 핵심이며, 특히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고 강조함으로써 중국 측이 주장하는 평화회담 병행론에 제동을 걸었다. 

▲ 중국은 6자회담 등 북한에 대한 비핵화와 대화의 병행을 원하지만 한미 양국은 비핵화 선결 없이는 6자회담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8일 열린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장면.

북한의 노림수는 주한미군 철수 

6·25 전쟁이 유엔·공산 양측의 군사령관 간에 체결된 휴전협정을 정부 차원의 평화협정(강화조약)으로 대치하기 위한 최초의 평화회담은 60여 년 전에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였다. 1954년에 열린 이 회의는 양측의 이견으로 2개월 만에 결렬되었다. 휴전협정 제4조 제60항(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에 따라 한국 및 유엔군 참여국가 15개국(남아공 제외)과 공산 측에서 소련 중국 북한 3개국, 모두 19개국이 참가했다.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다음 달인 8월 28일 유엔총회는 한반도에 독립된 통일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이 유엔의 목표임을 재확인하면서 휴전협정을 승인하고, 협정에 규정된 고위정치회담의 실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로 인해 제네바회의는 결렬됐다. 

한국 대표인 변영태 외무장관은 처음에는 유엔 감시 하의 북한만의 총선거를 주장하다가 영국이 이를 반대하자 유엔감시 하의 토착인구 비례에 따른 한반도 전역의 자유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14개 항목의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 측은 총선에 앞서 북한으로부터 ‘중공군 철수’와 ‘북한군 철수나 항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남일 외상은 외국군 동시 철수 후 남북한 동시 선거를 주장했다.

결국 유엔군 측 16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공산 측의 제안은 유엔헌장과 원칙을 백지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장차 한국 문제의 해결은 유엔의 원칙과 결의에 바탕을 두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힌 것을 마지막으로 회의를 끝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평화협정 공세를 벌이기 시작한 것은 냉전시기인 1974년 초였다. 북한은 이 때부터 틈만 나면 미국 정부를 향해 “남조선에 있는 외국 군대는 무기 일체를 가지고 철거해야 한다”면서 평화협정 공세를 벌였다.

1997년부터 1999년 사이에 북핵 문제로 6차례에 걸쳐 남북한과 미중 간 4자회담이 열리자 북한은 미북 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의제로 삼자고 다시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북측의 두 가지 제안을 모두 반대하면서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양국 간 논의 사항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00년대 들어 기존의 4자회담에 일본과 러시아를 추가한 6자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즉 2005년 4차 6자회담(2단계 회의)에서 9·19 공동성명(제4조) 및 2007년 5차 6자회담(3단계 회의)의 2·13 합의(제6조)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규정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가장 큰 장애물인 북한 핵문제가 선결 과제라는 기본 입장을 견지했다. 

평화회담 병행은 절대 받아들여선 안 돼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평화회담 병행을 거부하고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 국면에 들어간 다음 6자회담 참가국 대표들로 구성되는 별도 회담을 여는 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 별도 회의에서는 휴전협정을 대체하고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규정하는 본격적인 평화협정 내용을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동북아 평화안보체제(NEAPSM) 수립 문제로 확대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할 것이다. 

2009년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차 NEAPSM 실무그룹 회의는 역내의 다자안보체제 구축의 필요성과 점진적 접근 방법에 대한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 평화 안보에 관한 기본원칙’ 초안도 마련한 바 있다. 미북간의 개별적인 관계 개선 문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국교 수립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소련·중국과 평화협정 체결 없이 국교를 수립한 전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그때는 한국이 6·23 평화통일선언의 취지에 따라 미북 간 국교 수립을 환영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국이 남북한을 갖고 국제권력정치를 펴는 것을 방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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