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년을 허송세월했다
우리는 20년을 허송세월했다
  •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 승인 2016.05.19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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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현행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문제점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20년 전 IMF 외환위기 때와 완전 닮은 꼴.

대체 20년 동안 뭘 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 필요성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정(與野政) 구조조정 협의체 구성 등 논의가 무성하다. 정부도 관계부처 장·차관 회의를 거쳐 3트랙(3 tract)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했다.

즉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 업종은 구조조정 협의체 주도로 자율협약 등으로 구조조정 추진 ▲신용평가 C등급 부실징후기업과 D등급 부실기업은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을 동원해 워크아웃 등 상시 구조조정 ▲공급과잉 업종은 사업 재편 특별법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방안이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나 로드 맵이라기 보다는 원론적인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해운 용선료 협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5월 중순 경까지는 시일이 촉박한 상황을 고려해 보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나 로드 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무성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방안은 각론은 없이 총론만 백가쟁명 식으로 무성할 뿐 사공만 많아 산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대통령의 거듭된 양적완화 필요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은 발권력 동원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절차가 필요하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이 와중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양적완화는 무책임한 정책이며, 추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구조조정을 총괄해야 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추경 편성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발언하는 등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주장들만 난무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부실기업들 

그 동안 기업 구조조정에 필수불가결한 노동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의 중요한 한 축인 사업재편지원특별법에서도 대기업은 제외시켜 실효성을 반감시켜 온 야당이 기업 구조조정을 먼저 주장하고 나온 점은 매우 전향적인 자세다. 

그러나 이런 전향적 자세가 실업대책을 가져오라는 등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주장이라면 경제 논리에 의해 추진되어야 할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정치 논리가 끼어들게 돼 위험할 수도 있다. 

2012년부터 경기가 급강하하면서 부실기업이 증가하기 시작하자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수차례 강조해 왔지만 결국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되면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먼저 기업 구조조정은 올해 안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지난 해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하여 대기업 54개 사, 중소기업 175개 사 등 총 229개 사를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선정하고 대기업은 범정부 협의체에서, 중소기업은 유암코(UAMCO·국내 금융기관을 주축으로 설립된 민간 중심의 부실채권 관리 회사)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대기업은 7월까지, 중소기업은 11월까지 대상기업을 선정한다고 하는데, 이러다가는 올해를 넘길 우려가 있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어 사실상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어렵다. 올해 안에 구조조정이 안 되면 급증하는 기업 부실이 금융 부실로 전이돼 금융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선제적 상시 구조조정 방안으로 요약될 수 있는 정부의 스리 트랙 구조조정 방안을 보면서 왜 아직 선제적 상시 구조조정이 안 되고, 원론적인 주장만을 반복하는지 허탈감을 지울 수 없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나 로드 맵도 없이 20년 전 금융위기 때 이미 나왔던 원론 수준의 테이프를 다시 듣는 느낌이다. 

허송세월한 20년 

1997년 금융위기로 168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100만 명이 넘는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나온 중요한 대책이 선제적 상시 구조조정 대책이었다.

구조조정을 미루다 막다른 골목에 와서 하게 되면 희생과 비용이 너무 크므로 선제적으로 상시 구조조정을 해서 경쟁력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대책에 따라 각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수장(首長)으로 고액 연봉의 리스크관리 최고경영자(CRO)를 도입하고 감독원은 적기 시정조치를 도입했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이런 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았단 말인가. 이런 기능이 금융기관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감독해야 할 감독 당국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도무지 유구무언이다. 

▲ 지난 4월 부산신항만 현대상선 터미널 모습.

선제적 상시 구조조정 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가운데 다시 2대 해운사와 3대 조선사 부채가 78조 원에 이르러 지난 해 말 대우조선해양·현대상선·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4266%, 2007%, 848%로 천문학적인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산은(産銀) 수은(水銀) 2대 국책은행 부채가 21조 원에 이르러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정부와 한은의 추가출자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한은이 출자나 유동성 공급을 해야 할지, 추경을 편성해 국채를 발행해 재정자금을 투입해야 할지를 두고 백가쟁명의 혼란을 보이고 있는 양상이다. 한은이 출자하거나 유동성을 공급하는 경우에도 정부보증이 필요하니 결국 국민 혈세가 투입되기는 마찬가지다. 

해운사는 호황일 때 장기 용선계약을 해 용선료가 지금의 5배가 되어 아무리 실어 날라도 적자만 커진다고 하니 도무지 경영진이 글로벌 경제나 해운업 전망 등 경영을 알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면서도 대주주는 자율협약 신청 전에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니 도덕적 해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부거래 등 법률위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 한다더니, 이제 천문학적인 부채를 남기고 그동안 50억~90억 원의 고액 연봉을 받아온 대주주 경영자는 경영권을 포기할 터이니 수 조 원의 빚은 국가가 재정으로 하든지 한은 발권력으로 하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이처럼 노조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로는 구조조정이 순조로울 리 없다. 

구조조정은 손실분담 원칙 지켜야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주·경영진·채권단·노조의 손실분담 원칙 준수가 기본이다. 특히 채권단이 국책은행이라서 채권단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2011년부터 글로벌 경제가 재침체하면서 해운 물동량과 조선 수주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업은 물론 사전심사와 사후감시를 해야 할 채권금융기관은 무엇을 하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국책은행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선제적 구조조정을 해야 할 국책은행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책은행도 산하 관리기업이 인사 창구 역할을 하므로 구조조정을 미루는 도덕해이 소지가 있다. 산업은행은 관리회사가 268개나 된다고 하니 한국 최고의 문어발 재벌이다. 

핵심은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순수한 경제 논리를 토대로 금융기관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독할 수 있는 금융감독 제도와 감독인데,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금융위원회 위상 강화 등 거꾸로 가다 드디어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주기적으로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배가 산으로 가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토대로 추진해야 한다. 

첫째, 여야 정치권은 구조조정 관련 법규를 정비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대기업을 제외하고 공급과잉 업종으로 제한해 실효성이 반감된 사업재편지원특별법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실기업들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비록 공급과잉 업종이 아니더라도 신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사업 재편이 시급한 점을 감안해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란 관련 업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 사라져 부실해진 부분을 도려내고 신성장동력 부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므로 기업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이 패키지로 추진돼야 효과가 크다. 

이 과정에 정치 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나가면 정치 실패가 발생한다. 내년 대선 때 후유증이 클 우려도 있다. 과거 잘나가던 LG반도체를 대북사업에 협조적이었던 약체의 현대전자에 정치 논리로 합병시켜 탄생시킨 하이닉스가 그 후 15년여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둘째, 정부는 구조조정 방향, 지원방식, 일정, 사후대책 등 큰 그림만 그려야 한다. 그동안 구조조정은 제대로 못하고 부실만 키워온 국책은행을 여전히 구조조정 주도기관으로 할 것인지 부실채권정리기금 등 새로운 기구를 통해 할 것인지, 부실여신으로 악화된 은행자본금은 어떤 방식으로 보전할 것인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실업자와 장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 큰 정책 방향만 설정한다. 이 보다 더 나가면 정부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은행이 산은 채권을 인수해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게 하자는 주장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우선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오면서 문제를 키워왔다. 심지어 기업 부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낙하산 인사들을 대거 부실기업 고위직에 임명해 왔던 도덕적 해이, 이해상충 등의 과정을 보면 산은 채권 인수는 기업 구조조정은 안 되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우려가 적지 않다. 

정치 논리로부터 해방된 구조조정 추진하라 

더욱이 산은에 한은 발권력으로 자금을 공급하고도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내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되고, 대선 후에도 국회 청문회 등 정치·경제적 문제를 초래할 시한폭탄이 될 우려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산은 채권을 직접 인수하기 보다는 부실기업 채권 매입을 위한 ‘부실채권 정리기금’의 채권이나 자본 건전성이 훼손된 금융기관의 자본 보전을 위한 ‘예금보험공사 채권’을 매입하는 대책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997년 금융위기 시 자산관리공사에 설치되었던 부실채권정리기금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총 33조 5734억 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 가운데 초기 기금의 현금 조성을 위해 2조 원의 채권을 한국은행이 인수해 현금을 마련했다. 나머지는 채권을 금융기관 부실채권대금으로 지급했다.

총 기금 중 12조 원은 예금보험기금으로 이관하고 21조 5734억 원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매입해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은 2002년 11월 까지 111조 6000억 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2012년 11월 법적으로 운영이 종료되고 2013년 3월 청산된 부실채권정리기금은 119%의 회수율을 기록하여 성공적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국에 성공사례를 전수하고 있고 잉여금 3000억 원은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국민행복기금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다시 조성해 사용할 것인가, 산은 산금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산업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 구조조정을 하도록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어느 조직이 전문성·추진력 면에서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에 적절한가, 어느 조직의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가 더 효율적인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해야 한다. 

어느 경우라도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정부보증을 위한 국회 동의, 한은의 산은 출자를 위한 산은법 개정, 한은의 산금채 매입을 위한 한은법 개정 모두 여소야대 국회를 거쳐야 하는 고비가 있다. 

실업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판 뉴딜정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조선·철강 등 구조조정으로 타격을 입을 지역이 동남권인 점을 고려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도 좋은 대책이다. 이런 대책과 패키지로 추진할 때 반발을 최소화해 구조조정이 추동력을 가질 수 있다. 단순히 고용특별업종으로 지정해 실업급여 몇 개월 더 주는 정도로는 강성노조의 발발을 무마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GM의 성공 사례 연구하라 

셋째, 채권은행은 1~2년 정도를 내다본 미래지향적(forward looking criteria: FLC)인 기준에 의해 마련된 기업 정상화 계획을 토대로 산업 전문가와 함께 재무상태를 분석해 일시적 유동성 위기인지, 지급불능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 기업에 대해서는 채권은행의 주주·경영진·노조의 손실분담 원칙하에 자구 노력을 전제로 채무 재조정과 금융지원 등 채권은행과 기업 간의 자율협약이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살린다. 지급불능기업은 법정관리로 가는 등 청산절차를 진행한다. 감독 당국은 채권은행의 추진 상황을 감독한다. 

넷째, 현장의 구조조정은 구조조정 전문가가 전권을 가지고 추진한다. 정치권과 정부가 배제된 구조조정 전문가가 추진함으로써 정부 개입과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고, 구조조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금융위기 후 미국 GM의 구조조정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부도 직전 까지 갔던 GM이 어떻게 구조조정을 해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재탄생되었는가를 되돌아보면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이 나올 수 있다.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부시 행정부는 10월에 부실자산 구제기금(TARP)을 설치했다. 당초 7000억 달러 규모로 설치되었으나 도드 프랭크 법에 의해 4750억 달러로 축소되었다. 이 중 총 4310억 달러가 지출되었는데,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2014년 12월 4417억 달러의 수입을 거두고 성공적으로 종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자동차 3사(GM·포드·크라이슬러)는 사상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다. GM은 2007년 400억 달러, 2008년 31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해 임금 체불과 부품대금 지급불능의 위험에 직면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 3사는 정부에 250억 달러의 긴급자금 대출을 요청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부실자산 구제기금(TARP)을 가동해 200억 달러를 GM과 크라이슬러에 긴급 투입했다. 

2009년 1월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민간 구조조정 전문가와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구성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해 본격적인 GM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총괄 책임자로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출신 구조조정 전문가 스티브 래트너를 영입하고 글로벌 1위 구조조정 투자은행 로스차일드, 구조조정 법률회사 캐드월레이더, 구조조정 컨설팅회사 알릭스파트너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이들에게 구조조정의 전권을 맡겼다. 

구조조정 전문가에게 맡겨라 

이들은 먼저 GM을 경쟁력이 없어 법정관리에 들어가 매각 등의 절차를 거쳐 청산해야 할 올드GM과 올드GM의 자산을 선별적으로 매입하고, 기업회생절차로 살려내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뉴GM으로 기업을 분할했다. 

그리고 손실 분담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해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주주의 주권은 완전히 소멸시키고 CEO를 포함한 경영진은 전면 퇴진시켰다. 

그리고 채권단은 271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보통주로 출자 전환했다. 근로자들은 200억 달러 규모의 연금건강보험료를 출자전환해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하고 11개 공장을 폐쇄하는 데 동의했다. 

이러한 자구 노력을 바탕으로 연방정부의 지원 명분이 확보되자 미국 재무부가 301억 달러, 캐나다 정부가 95억 달러를 뉴GM에 출자하여 지분을 70% 이상 확보함으로써 국유화했다. 

이처럼 민간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 2010년 11월 환골탈태한 뉴GM을 상장시켜 135억 달러를 회수하고 정부 보유주식도 매각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2009년 이후 2만 31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부도 직전까지 갔던 GM의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재탄생 교훈은 손실 분담에 대한 의사결정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뤄져 불필요한 대립과 분쟁을 최소화시켰다는 점이다. 또 소요자금 대부분이 정부로부터 나왔지만 정부는 역할을 제한하고 민간구조조정 전문가 태스크 포스에 전권을 줘 구조조정을 함으로써 순수한 경제 논리에 의해 구조조정이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민간 구조조정 전문가에게 구조조정 전권을 부여해 추진함으로써 정부나 정치권도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구조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측면도 있다. 이로 인해 부시 행정부가 시작했으나 오바마 행정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정파를 초월해 오직 국민경제를 최우선에 놓고 추진된 구조조정이었다는 점도 정략적 판단을 앞세우기 일쑤인 한국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다섯째,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위기가 재발하지 않는다. 이번에 2대 해운사 및 3대 조선사 부실정리에만 수 조 원이 투입될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직접 국채를 발행하든, 한은 매입채권을 정부가 보증을 하든, 이는 모두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다. 물론 과거 부실채권정리기금처럼 잘만 하면 10여 년 후 원금 회수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혈세 투입은 불가피하다. 

이렇게 된 데는 1차적으로 기업 경영진과 대주주, 노조 등 기업 차원의 문제가 있다. 경영진은 잘못된 경기 전망을 토대로 과잉투자를 하고, 노조는 생산성보다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기업을 부실화시켰다. 앞으로 강성노조 문제와 더불어 무능 오너 경영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한국 경제의 중요한 과제라는 점이 다시 한 번 각인되었다. 

2차적으로는 이러한 기업의 행태에 대해 채권금융기관은 채권부실 방지를 위해 대출 시 철저한 심사를 하고, 대출 후에도 상시 모니터링을 하면서 상시 적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의무다. 

금융감독기관의 기능이 고장 났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들이 그런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것이 감독당국이다. 감독당국은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전문기관으로서 순수한 경제 논리에 의해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준수 여부를 감독해야 한다. 

이처럼 기업 차원의 기업 경영진, 대주주, 노조와 금융기관 감독당국 모두 책임이 있다. 어느 한 부문만 잘했어도 문제가 오늘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책임 규명도 없이 수 조 원의 국민 혈세만 투입한다면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으며, 재발 방지는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앞으로 기업 부실과 혈세 투입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책임을 규명하고 잘못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 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위기가 반복되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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