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리의 이웃인가, 적대국인가?
중국은 우리의 이웃인가, 적대국인가?
  •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 승인 2016.09.05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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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간의 역사는 서로 밀고 당기던 경쟁의 역사, 과연 우리의 선한 이웃인지 제대로 검토해야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으로부터 시작해 우리나라는 가장 가까운 중국이 가장 친근한 이웃이라기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 침략하기도 하고 또 침략을 당하기도 한 역사를 갖고 있다.

기원전 109년 가을, 중국 한나라의 육군 3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진격했고, 해군 700명은 대동강 하구로 상륙했다. 한 무제가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위만 조선과 전면전을 감행한 것이다. 강력한 정복 왕조와의 싸움에서 위만 조선은 1년 남짓 항쟁하다가 끝내 멸망했다.

590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599년 고구려의 영양왕이 요서지역을 공격하자 수 문제가 30만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실패했다. 30만5000명의 수나라 병사 가운데 압록강을 넘어 요동지역으로 살아서 돌아간 이는 2700명에 불과했다. 612년 수 문제 이어 수 양제는 1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설욕전에 나섰다. 그러나 612년 을지문덕 장군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살수에서 수나라 대군을 크게 무찔렀다. 

고구려 수도인 평양성을 치려던 수나라의 계획이 살수대첩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 것은 물론, 그 후유증으로 수나라는 내분과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물고 물리는 전쟁이 중국과 우리나라 역사에는 비일비재였다. 615년 영양왕 25년 수나라의 마지막 침입이 실패하고 수나라는 멸망했다. 642년 영류왕을 살해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연개소문은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을 옹립하고 스스로 독재정치를 펼친다.

연개소문의 등장은 7세기 중엽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의 최대 변수로 작용했다. 그는 이후 24년 동안 고구려를 사실상 통치하면서 나당(신라와 당) 연합군에 맞서 동북아의 장자로 군림했으나 잇따른 지나친 국력 소모와 권력 독점에 따른 정치 불안으로 고구려를 패망의 길로 이끌고 만다.

642년 당 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대군이 고구려 영토인 요동지역의 안시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안시성의 백성들은 동요치 않고 완강히 저항해 당 태종은 3개월만에 별다른 소득 없이 물러났다.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는 당나라와 한판 승부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 결정적 승부는 매소성에서 벌어졌고 결과는 신라의 승리였다. 신라는 중국 세력의 한반도 정벌을 결코 허용치 않았다.

왕건이 외세의 도움 없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건국한 고려는 500년간 후반기 몽골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자주적인 국가로 스스로를 황제국이라 칭할 정도로 동아시아 역사의 중심에 선 나라이기도 했다. 송·원 등 중국 대륙의 주인이 바뀌는 중에도 온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현재 우리나라의 명을 Korea로 쓰는 것은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 미래한국 고재영

고려는 거란과의 세 차례 전쟁을 했고 여진을 정벌했으며, 몽골의 침략을 받아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삼별초가 금주와 전주 등지에서 몽골군을 격파했다.

1270년 고려는 몽골군에 항복해 39년간 강도(江都) 시대를 마감하고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고려는 원의 간섭기에 접어든다. 원의 속국으로 전락한 고려는 이후 80여 년 동안 원의 내정 간섭으로 자주성의 위기를 겪는다.

이성계가 건립한 조선 왕조는 내분으로 정변이 일어났고, 외침까지 계속되어 19세기 이후에는 두 차례의 왜란과 호란을 겪었다. 분당정치가 활발해졌으며, 영·정조대에는 탕평책이 정치적 안정을 가져와 각종 개혁이 추진되어 조선은 근대를 맞이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열강의 침입을 받은 조선은 마침내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한다. 1919년 중국 상해에서 민주 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임시정부내 노선 갈등으로 분열, 통합을 거듭하다가 우파정당인 한국독립당을 세워 상해 남경의 중국 국민당 정부 상대로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45년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열되어, 1950년 한국전쟁 시 UN군이 남한을 도와 북한과 중국의 국경 근처까지 밀고 올라가자 중국은 10월 25일부터 100만 명의 군대를 파견해 북한군을 도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우리의 선한 이웃이라기보다는 우리와 밀고 당기는 경쟁국이었다. 사드 문제를 반대하는 중국은 그 원인 제공자인 북한의 핵개발에는 침묵 내지 묵인하다가 핵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과 우리나라가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

좋은 이웃을 갖는다는 것은 그 국민에게는 큰 감사다. 우리의 이웃 나라들이 우리에게 좋은 나라가 되도록 우리가 노력하고 그렇게 만들어야 할 책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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