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혁신특공대’ 과학자를 창업 전사로 만들다
美 ‘혁신특공대’ 과학자를 창업 전사로 만들다
  • 이상민 미래한국 워싱턴 특파원
  • 승인 2016.09.06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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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美 워싱턴 과학기술 창업 박람회
▲ 미국과학재단 소속 멘토와 의논하는 학생들.

혁신특공대(I-Corps)의 핵심은 실험실을 떠나 고객을 만나는 것. 아이디어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멘토와 함께 분석 

지난 7월 15일 워싱턴 DC에 있는 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KIC·Korea Innovation Center)에서는 한국 청년 과학자들의 발표회가 있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실험실에서 연구해오던 것들이 미국 시장에서 사업화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자리였다.

발표자들은 한국의 카이스트, 포스텍 등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과 기타 유수의 대학에서 뽑힌 18개 팀으로 미래창조과학부의 ‘한국형 Innovation-Corps (혁신특공대)’ 프로그램 참가자들이었다. 

I-Corps는 미국과학재학재단(NSF)이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그동안 연구개발(R&D) 분야에 막대하게 투자했지만 실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미 연방정부는 연간 1720억 달러를 R&D에 쏟아붓고 있지만 이 연구 결과가 기술 이전이나 창업 등으로 연결되는 것이 미미해 의회의 공격을 받아왔다. 

NSF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을 하려는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 결과와 아이디어를 갖고 시장에 진입하도록 했다. 고객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체험하고 연구 방향이나 아이디어를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2011년 I-Corps가 설립됐다.

지난 5년 동안 미국 유수의 과학기술대학 출신 600개 그룹이 I-Corps에 참가했고 이 가운데 230개가 회사를 창업했으며 그 중 몇 개 기술은 기존 기업에 팔리면서 I-Corps는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한국 정부는 2013년부터 NSF와 I-Corps 프로그램 전수를 두고 협의했고 지난해 6월부터 NSF의 I-Corps프로그램을 한국 대학의 청년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 작곡을 하는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키이스트 팀이 I-Corps 프로그램에서 한 고객 인터뷰 결과에 기초한 사업 보고를 하고 있다.

美 NSF 벤치마킹한 한국형 벤처 키우기 

한국형 I-Corps는 7주 과정으로 이 가운데 4주는 미래창조과학부가 2014년 5월 미 워싱턴DC에 설치한 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KIC)에서 이뤄진다. 보스턴대 경영학 교수인 김종성 KIC 센터장은 “I-Corps의 핵심은 고객을 만나는 것(customer discovery)이다. 연구자가 자신이 연구한 것을 들고 고객을 찾아가 이런 것이 나오면 쓸모가 있는지 직접 물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고객으로부터 주로 실망스러운 대답을 듣고 오는데 벤처 경험이 풍부한 멘토가 왜 그 기술이, 그 아이디어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가를 함께 분석해주면 연구자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모형을 만들고 그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기술 기반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 투자 확보와 사업화가 용이해지고 실험에만 익숙해진 연구자는 훈련을 통해 과학 창업가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다는 것이다. 

I-Corps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1주일에 15명의 고객을 만나 인터뷰를 하도록 되어 있어 7주 전 과정 동안 100개의 인터뷰를 고객과 해야 한다. 연구 내용이 의료 분야라면 의사, 소방관 위치 추적 기술이라면 소방관 등 연구물을 사용할 고객을 만나 연구 내용과 아이디어에 대한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날 발표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팀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해수를 이용해서 전기를 발생하는 해수 전지였다. 이들은 이 아이템으로 친환경적인 배터리를 개발해 상업화하는 것을 목표로 이번 I-Corps에 참가했다. 이 제품을 사용할 장래 고객들 리스트를 작성해 워싱턴 DC에서 1주일에 15명씩 만났다. 

울산과학기술원팀에 반응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기술원 팀장은 “‘잘 못 알아듣겠다’, ‘별 필요가 없다’, ‘잘 해봐라’ 등 부정적인 답들이 많았다. 그 대답들을 멘토들에게 말하면 멘토들이 대상을 잘못 잡았거나 제품의 방향 등을 잘못 잡았다고 알려주더라. 그러고 나서 수정 후 다음 주에 다시 나갔다”고 답했다. 

한국형 I-Corps에서는 NSF의 I-Corps에서 멘토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직접 와서 각 팀별로 조언을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전문가들은 기술사업을 하다가 은퇴한 전직 회사 사장들이 대부분이다. 

UNIST팀은 수차례 고객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의 경우 쓰레기를 분리수거도 하지 않는 등 문화 자체가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 정책은 친환경을 지향하고 있어 미 환경보호처(EPA)의 친환경사업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쪽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내리게 되었다고 밝혔다. 

UNIST 연구자는 “한국에서는 연구자로 생각했던 것들이 이곳 미국에서 고객 인터뷰를 해보니 많이 달랐다”며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시장에서는 반대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곡을 하는 인공지능(AI)을 만드는 카이스트(KAIST)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학교 창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미 회사를 설립한 이들이었지만 I-Corps 과정을 통해 창업을 하려면 머리로 고객들이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개발자로 돌아가 열심히 제품 개발을 하면서 고객의 필요를 같이 알아낼 것이다.” 

▲ 고객인터뷰를 위해 미국 대형할인매장인 코스코를 찾아간 학생들.

머리로만 소비자 예상하는 것은 잘못 

참가자들은 워싱턴 DC에서 4주간 현지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2주간 동일하게 고객 인터뷰를 하고 7주차에 기업모델을 정하고 창업을 하게 된다. 작년에 시범사업으로 9개 팀이 I-Corps를 참가했는데 이 중 5개 팀이 회사를 창업했고 어떤 회사는 라이센스를 팔아 수익을 내는 등 성과가 나오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I-Corps 프로그램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참가했던 학생들이 남긴 강평을 보면 ‘자금이나 제도적 지원을 해줄 테니 창업을 해보라는 권유는 많았는데 이런 교육은 처음이었고 낯설고 어려웠지만 해보니 실험실에서 만든 기술을 어떻게 사업화할지 명확해졌다’, ‘그동안 연구에만 매몰되어 있었는데 밖에서 어떻게 쓰일지 알게 되면서 연구 시각이 바뀌었다’ ‘성격이 바뀌었다. 

과학자로 연구만 하다보면 외부와 단절되는데 고객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등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형 I-Corps을 운영하고 있는 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는 장차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이 프로그램을 마친 졸업생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하고 있다.

김종성 센터장은 “박세리 같은 사람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창업을 해서 2개만 성공시키면 한국에서 창업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신나는 일이죠. 새로운 것을 만들어 한국의 창조경제가 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일은 금방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정부에도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공무원들은 신념을 갖고 오래 하려고 하니 정치권에서 인정하고 계속해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혁신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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