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 종북(從北) 논란, 실체(實體)는 무엇인가?
미주한인 종북(從北) 논란, 실체(實體)는 무엇인가?
  •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6.09.28 07: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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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이념 갈등의 한인사회를 가다①

미국내 진보 한인단체들은 종북이든 아니든 북한의 대남 통일 전술에 이용 당할 수 있다.

LA·워싱턴DC·뉴욕=지난 2014년 9월 제69차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춰 반(反)정부 시위가 북미 19개 도시에서 릴레이로 벌어졌다. 이때 시위대의 피켓 중에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박근혜 대통령) 즉사’ 같은 박 대통령에 대한 막말까지 등장해 국내에선 ‘종북(從北)’ 시위 논란이 빚어졌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간 ‘한미 연합훈련 반대’, ‘대북제재 결의 철폐’, ‘세월호 진상 규명’, ‘국정원 부정선거 규탄’ 등을 주장하는 한인단체들의 시위가 미국 주요 도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한인 보수단체들은 이에 대응한 반대 시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워싱턴 재향군인회 등이 2014년 9월 반정부 시위에서 맞불 시위를 벌였던 것도 그런 예다.

미주 한인사회의 이념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진보 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의 한인 시민단체인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소속의 강 모 씨가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내용의 방북기를 올려 ‘종북’ 논란을 재연시켰는가 하면,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에 세월호 광고를 게재했던 미국 내 인터넷 커뮤니티 미시USA에 대해 “종북 단체”라고 비판했던 국내 언론사는 이 커뮤니티와 법정 다툼을 계속하는 중이다.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 갈등은 일부 시민단체 및 인사들에게 제기되는 종북 논란으로 모아진다. 그렇다면 이 종북 논란에는 실체가 있을까. 안보 전문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은 북한 정권이 대남적화전략 차원에서 해외에 있는 동포단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동열 원장은 “북한이 정권 차원에서 운영하고 조종하는 해외 교포 중심의 조직이 전 세계 200곳이 넘는다”면서 “해외에서 남조선, 즉 대한민국 혁명을 위한 국제 혁명역량 강화 차원에서 해외 동포들에 대한 의식화 공작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LA 소재 인터넷 매체 <민족통신>, 뉴욕을 기반으로 한 재미동포전국연합, 노둣돌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정권의 노선과 정책을 미화 선전하거나 재미동포의 북한 방문 행사를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식으로 친북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을 70여 차례 방문한 민족통신의 대표 노길남 씨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4월 북한에서 김일성 상을 수여받은 인물이다. 최근에도 민족통신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에 대한 당위성을 전파하고 있다.

재미동포전국연합도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로동신문>, <조선중앙TV> 같은 북한 관영매체의 선전선동 보도를 그대로 게재하고 있다. 재미동포전국연합은 1997년 1월 뉴욕·시카고·LA 등 3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인물들이 결성한 단체로 미국의 조총련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들 단체가 주력하고 있는 과업 가운데 하나는 ‘북부 조국 바로 알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재미동포의 북한 방문 사업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미동포전국연합은 1998년부터 북한의 방북신청 창구가 돼 주로 한인사회 내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방북 작업을 진행했고, 노둣돌은 주로 해외동포 2~3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방북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다. 민족통신도 북부 조국을 제대로 알린다는 명목으로 방북 활동에 나섰다.

▲ 지난해 12월 미국 LA에서 벌어진 박근혜 대통령 퇴지 시위.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가 시위 참여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족TV> 방송화면 캡처

“한인사회 내 종북은 일부의 문제” 

문제는 북한 편향성 지적이 이런 일부 단체뿐만 아니라, 한인사회 내 다수의 진보적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미국 한인사회의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대체로 “북한에 대한 편향적 성향은 일부 골수 친북 단체에 국한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욕의 한인 라디오 방송인 기쁜소리방송의 유제원 기자는 “종북 성향의 사람들은 극히 소수일 뿐”이라며 “한인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반정부 시위는 대부분 반전·평화 운동이라 할 수 있는데, 반전 운동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처럼 미국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북한은 군사적 보복을 운운하는 현재의 적대적인 북미 관계도 이런 한인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친북 행동이 반역에 가까울 정도로 금기시 되는 미국에서 종북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LA 한인사회를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보수매체인 <썬데이 한국>의 안국찬 사장은 “노길남 씨 같은 인물은 오래 전부터 친북 성향으로 인식돼 한인단체에서 배제돼 왔다”면서 “기본적으로 한인사회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반북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적어도 LA 한인사회에선 친북 세력이 발붙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안국찬 사장은 노길남 대표와 수십 년간 교류하며 사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북한 편향적이라는 문제 제기를 받고 있는 미국 내 한인 진보단체들도 북한 연관성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故) 장준하 선생의 3남인 장호준 씨가 의장으로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미주희망연대’(이하 미주희망연대)는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현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본인들의 북한 정권 편향성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미주희망연대는 지난 2013년 설립된 단체로 문성근 전 민주당 고문이 창립 기념 강연회, 토크콘서트를 여는 등 국내 ‘친노’(親盧) 그룹과 교류가 깊은 단체다. 이 단체의 이재수 사무총장은 “미주희망연대는 민족통신이나 재미동포전국연합처럼 북한 정권에 편향적이지 않다”면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사후 노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결성됐다”고 강조했다. 친북이 아닌, 미주 지역 내 ‘친노’를 표방하는 셈이다.

“한인 진보 지도자들, 종북 인사들과 연결” 

반면에 미국 한인사회 내 북한 편향 세력이 극히 일부라는 시각에 대한 반론도 많다. 미국 LA 소재 보수단체 미주애국동지회의 션리 대표는 “진보를 표방하는 미국의 한인단체들 가운데 많은 단체들은 지도자급 인사들이 노길남 씨 같은 친북 인사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보조를 맞춰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인단체들이 민족통신이나 재미동포전국연합 같은 친 북한 성향 단체들과의 연계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전략적인 차별화 시도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인적 구성이나 대외 활동 내용 면에서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북한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 활동가 로렌스 펙 씨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미국 내 한인단체 가운데 일부는 북한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면서, 평화나 통일 등 구체적인 이슈에 집중하며 대중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렌스 펙도 이들 단체의 대표나 지도자급 인물들은 핵심적인 친북 세력과 긴밀하게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단체의 일반 회원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으로 알고 활동하겠지만, 결국 북한의 정책 목표와 이익에 따라 움직이도록 이용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LA를 기반으로 하여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A단체의 경우 한반도 평화 통일운동을 표방하며 젊은 층의 참여도를 높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 단체를 움직이는 대표와 핵심 이사진은 친북 매체 민족통신의 간부를 거치거나,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씨와 간담회에 참석하고 방북을 함께하는 식으로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북한과의 연계성을 부정하고 있는 미주희망연대가 국내 언론에서 북한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이 단체의 활동이 북한 정권의 노선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주희망연대는 최근에는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한국 내 사드 배치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백악관 앞에서 사드 배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단체의 핵심 인사들은 과거 주한미군 반대 시위, 한미 FTA 반대 시위 등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이나 사드 배치 반대 등 정부 정책에 반하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친북 세력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과거 친노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중심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가 있었고, 한미 FTA나 사드 배치 등은 현 야당의 핵심 세력도 이들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 한인사회 진보 운동권 내에서 벌어진 자체적인 북한과 관련된 이념 논쟁도 재미 한인단체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미주희망연대 이재수 사무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미국 내 한인 진보단체들이 결집했던 6·15공동선언실천 미주위원회 일부에서 북한 편향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인사들 간에 노선 갈등이 있었다.

이때 문동환 목사가 북한에 대한 편향성은 운동의 대중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분리해 나왔다는 설명이다. 문 목사는 문익환 목사의 동생으로 6·15남북공동선언실현 재미동포협의회 공동 의장을 지냈다.

▲ 미국 LA 인근 글렌데일 소재 <민족통신> 사무실. 지난 7월 본지 취재진이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하고 노길남 대표의 자택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곳을 찾아 가기도 했지만, 그는 취재진을 피했다.

美 진보 운동 국내 이념 갈등과 뿌리 같아 

사실 미국 한인사회 내 진보 운동의 역사는 국내 운동권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1980년 발생한 5·18이 국내를 넘어 미국에서도 운동권의 성장에 기폭제가 됐고, 이어서 1982년 12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했던 것도 미 한인사회 시민운동의 또 다른 구심점이 됐다.

국내에서 5·18에 참여한 후 수배 중이었던 1981년 미국으로 도피한 윤한봉 씨가 LA에 민족학교, 뉴욕에 뉴욕청년교육봉사원(이후 청년학교, 민권센터로 개칭)을 세우며 미주 운동권의 선구자 역할을 했는가 하면, DJ 계열로서 미국 내에서 시민운동을 해온 차종환 씨가 남가주 호남향우회를 설립한 것도 이 때였다.

1982년 12월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워싱턴에서 맞이했던 것도 장차 미국 한인사회 진보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한 문동환 목사였다. <썬데이 한국> 안국찬 사장은 “미국 내 진보세력은 주로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유신 시절,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때 도미한 운동권 인사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은 한인사회 진보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보수 정부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결집돼 본격적인 대북제재 철폐 운동, 반정부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이 시기 LA, 시카고, 시애틀, 워싱턴 등 미국 내 주요 도시에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약칭으로 ‘사사세’인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명칭은 노무현 재단의 정식 재단명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들 미국 내 친노 단체들은 개별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되지만 인적 연결을 통해 사안마다 협조를 하는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노무현 재단의 정식 산하 단체는 아니지만, 문성근 씨나 한명숙 씨 같은 핵심적 친노 인사들은 강연 참석이나 축사 등을 통해 미국 내 친노 단체들과 교류를 강화했다. 국내 야당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대협, 평통사 등의 단체도 이들과 교류 중이다.

결국 1980년대부터 성장한 미국 내 시민단체와 최근 확대 중인 친 노무현 계열 진보 운동 진영이 결합해 주요 사안마다 현재의 보수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한인사회 진보단체들에 대해 제기되는 종북 논란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여야 및 보수·진보의 이념 대결과 흐름을 같이 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국내 보수단체 블루유니온의 권유미 대표는 “미국에선 북한 방문이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 선전 활동을 해도 우리처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한국 교포사회 유력 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해 일방적인 체제 선전에 현혹돼 친북 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친북과 진보세력 간 교류가 문제

또한 북한의 공식 선전원처럼 활동하고 있는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같은 인물이 자유롭게 한인사회 진보단체 지도자들과 왕래하는 것도 제재할 수단이 없다. 권유미 대표는 “미국에선 친북 인사들이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지시를 직접 하달 받을 수도 있다”면서 “이런 친북 인사들이 한인단체 대표들과 수시로 만나 평화나 통일 운동의 명목으로 친북 활동을 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안보 당국의 관계자는 현재의 미국 한인사회 내 진보단체들의 동향을 좀 더 심각하게 진단한다. 이 관계자는 “종북 세력과 운동권 세력이 한국의 정권 교체를 위해 동지가 되어가며 구분이 사실상 모호해지는 상황”이라면서 “미국 내 많은 한인단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김정은 정권을 추종하지는 않더라도, 사안마다 서로 지원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최근 종북 논란에 휩싸인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의 행사에도 한때 국내 대표적 친노 인사들이 참석한 바 있다. 종북 세력에게는 대북제재의 완화와 대북지원, 운동권 세력에게는 진보 정부 수립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미국 내 한인 진보단체들이 종북이든 아니든, 그들이 북한의 대남혁명과업의 대중화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경고했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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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6-09-30 12:00:38
ㅋㅋㅋㅋㅋ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간의 갈등 해외교포사회에서도 계~~~~~속 지속되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