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비전은 죽지 않는다
그의 비전은 죽지 않는다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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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 서울교회 원로목사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의 연수에 미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가신 김상철 장로님을 우리는 못내 그립고 아쉬워하며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것과 다르니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그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립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2013년 12월 13일 늦은 밤 미완성 교향곡처럼 그는 숱한 일을 남겨 놓은 채 이 세상 모든 일을 훌훌털고 하나님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김상철 변호사는 바른 국가관을 가진 참 애국자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점점 붉은 물이 들어가기 시작할 때 그는 자기 몸을 던져 밀려오는 쓰나미 현상을 막은 분이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국민의 대다수가 붉은 악마의 조종에 따라 붉은 티셔츠에 Be the Reds 빨갱이가 되라는 글자를 새기고 생각 없이 날뛰면서 한국사회는 종북좌파가 기세를 올리는 사회가 돼갔습니다.
 
김상철 박사는 인간의 사상은 영적인 것이므로 영적인 눈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목이 터지도록 선지자처럼 소리쳤습니다. 한미우호협회를 창립해 공산주의자들을 막고 있는 주한미군을 위로하고 미국에 대한 감사를 여러 모양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태평양아시아협회 회장으로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국제적 시야를 넓혀주고 이웃 나라를 돕는 선진국으로 가는 주춧돌을 놓은 분입니다.
 
탈북난민보호운동을 창설해 본부장으로 선봉에 서서 1,180만명의 국내외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의 동의를 얻어 서명을 받아내 마침내 UN난민위원회(UNHCR)에 제출하므로 탈북민들의 난민지위 확보는 물론 UN이 해마다 북한인권법을 제정케 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 국회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힘을 불어 넣어 주신 분이 김상철 판사님이셨습니다.
 
타락한 한국사회를 바라만 보지 못하고 그는 거룩한 분노를 사자처럼 토해냈습니다. 포르노, 자살, 이혼, 매춘, 낙태, 음란, 거짓이 만연된 사회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을 때 이런 문제를 빼고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며 국민적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무지한 그리고 왜곡시킨 사회상을 바로 잡으려고 사실 앞에 정직할 것을 외쳤습니다.
 
김상철 장로는 바른 기독교신앙을 가진 참 신자였습니다. 나는 그를 한국의 나다나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고 항상 하나님 면전에서 일관성 있게 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찬양대 대장, 새가족부 부장, 교구장, KIMCH 위원장, 신앙강좌반 부장 등 여러 부서에서 힘을 다해 겸손하게 섬겼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시어 하나님 앞에 무슨 일을 하기 전 기도로 아뢰고 말씀으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행동은 항상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뛰어 넘었고 그의 진리에 대한 용기는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를 믿었습니다. 교회 문에 못질을 하고 기독교인을 핍박한 북한과 세계에 선교사를 2등으로 많이 보낸 대한민국의 오늘날 현실은 결정적으로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굳게 믿고 이 나라가 살길은 복음화된 통일에 있다는 확신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김상철 회장은 바른 가치관을 가진 시대의 등대요 민족의 구원선이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셨습니다. 그는 월간법률지 고시계 발행인 그리고 밝고힘찬나라운동 집행위원장으로 국격을 높이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바탕 위에 통일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뼈저리게 체험하신 분입니다.
 
비록 7일간의 서울시장직을 담당하셨지만 결국 가치관의 충돌로 항해 출발 직전에 좌초된 체험을 한 분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그 일로 인해 김상철 회장은 언론의 중요성을 실감케 됐고 마침내 미래한국을 창간하게 됐습니다.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안보 등 모든 것을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보는 눈을 갖게 하고, 비판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고 우리에겐 항상 희망이 있다는 믿음 위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기독교의 교계신문이 아니라 기독교 양심세력이 만드는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필체로 시사신문을 발간케 된 것입니다. 그의 이 바르고 깊은 취지에 동의하고 함께 힘을 모은 동지들이 그가 2008년 12월 5일 과로로 갑자기 쓰러져 그분 없는 4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그분의 창립 목적을 따라 섬김으로 이제는 이 나라의 시사정론지로 자리매김을 했을 뿐 아니라 해외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주간지가 됐습니다.
 
대통령 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21세기가 열리는 새천년을 위한 큰 비전을 나라 위해 심어주기도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김상철 장로, 판사, 변호사, 시장, 회장이여, 장하여라 당신이 그 숱한 일을 행하기까지 당신을 받쳐주고 지탱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석사 박사 미국 코넬대학교 인문학박사, 독일유학을 포함해 당신의 젊은 시절의 학구적 열심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곧은 신앙의 유산이 지금의 김상철 회장을 만든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눈을 뽑아 줄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상철 장로의 가족의 내조와 보이지 않는 응원의 함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인 최원자 권사님은 지난 4년 동안 병상을 지키면서 김상철 장로님 옆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신 분입니다. 집에 가서 주무신 날수는 다섯 손가락으로도 셀 수 있는 보기 드문 열녀입니다.
 
그 분의 이 같은 헌신적 사랑은 고상한 인격에서부터 나왔다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그의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 신앙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고난을 함께 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권을 갖고 계심을 굳게 믿고 쉬임 없는 기도와 간구를 감사함으로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3년 병자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원자 권사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밝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믿음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될 것입니다. 김상철 장로님은 자녀들에게도 내가 그리스도 예수를 닮은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한 사도 바울처럼 자기를 거울삼아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살 것을 잘 가르친 가정적으로도 성공한 가장이었습니다.
 
아들 내외는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를 전담하면서 효도하고, 딸 내외는 아버지가 창립한 미래한국과 북한구원운동(세이브엔케이)을 성실하게 계승하고 있으니 김상철 장로님은 자식복도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받은 분입니다.
 
고통도 눈물도 한숨도 이별도 없는 천국에 가셔서 아버지 품에 안겨 영원한 평안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실 장로님, 당신은 죽었으나 지금도 말하고 있는 아벨처럼 우리에게 계속 생각나게 하실 것이고 듣게 하실 것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자랑 김상철 장로님!
 
이제는 일상 염려와 근심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목사 이종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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