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흘린 땀과 눈물
그와 함께 흘린 땀과 눈물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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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기도지사
故김상철 선배는 캄캄한 군사독재 시절 나와 같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성심껏 도와 준 은인이자 시대적 통찰력과 원대한 비전을 지닌 선각자였다.
 
고인과 내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 ‘서울의 봄’ 때였다. 당시 서울 구로동의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었던 나는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정화해고’로 노동현장에서 쫓겨났고 삼청교육 대상자로 수배까지 됐다. 해고와 체포에 이어 삼청교육의 공포가 엄습하던 그때 고인은 서울대 법대 2년 후배인 김정환 형과 함께 나에게 변호사로서 뿐 아니라 선배로서 위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무렵 고인은 요즘은 일반화된 로펌 형태의 변호사 사무실을 선도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고시 수험생을 위한 ‘월간 고시계(考試界)’를 발행하는 등 사업적인 분야에서도 큰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고시계는 서울법대 출신 운동권 제적생들의 일터였고 그 사무실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소식을 나누는 사랑방이 됐다.
 
6년 뒤인 1986년 5·3 인천시위로 내가 보안사에 체포, 수감됐을 때 김상철 선배는 나를 변호한 여섯 명의 변호인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나는 보안사에 불법 구금돼 가혹한 고문을 당한 뒤라서 몸과 마음은 심하게 파괴돼 있었다. 고인은 여러 차례 구치소로 면회를 와서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고 함께 울면서 용기를 북돋워줬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뜨겁게
 
김 선배는 인권변호사로서 권인숙 김근태 박종철 고문사건을 폭로하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으로서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 민주화 쟁취에 앞장섰다. 민주화 이후에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앞서 인식하고 행동에 나선 북한인권운동의 선구자셨다.
 
1999년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를 설립, 118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의 서명을 국내외에서 받아 이를 유엔과 미 의회 등 전 세계 관계 기관에 전달함으로써 탈북민들이 국제법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자신이 평안북도 태천 출신의 실향민이었기 때문에 북한 인권에 대한 고인의 헌신은 더 각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2년에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을 창간,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와 기독교적 세계관의 함양, 대한민국의 정통성 수호에 나섰다. 민주화 운동권 및 학생운동의 주류가 퇴행적인 종북좌파 성향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진보적 지식인의 사명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고인은 생전에 “진리는 저항이 아니라 인내와 희생에 있고, 불신이 아니라 믿음에, 증오가 아니라 연민과 사랑에 있다”고 하셨다. 그의 이와 같은 성찰과 실천은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단순한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가진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김상철 선배는 바른 가치관과 시대를 읽는 감각을 가진 등대이자,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셨다. 나는 대한민국의 통일과 선진화를 향한 그의 원대한 비전과 기도가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상철 선배시여!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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