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세이브엔케이 여성위원회 총무
지금도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그 분을 왜 그렇게 일찍 떠나보내야만 했는지 왜 하나님의 기적 같은 회생이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현대 의학의 불가사의한 기사를 읽어 본 적도 있는데 고인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에 아직도 번뇌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신 것은 국가와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서 오매불망 국가와 민족의 안위와 미래를 염려하고 항시 기도하시던 고인의 모습을 더 잊을 수 없습니다.
인재(人材)는 단명한다고 했던가요. 사랑하는 분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 친지, 지인, 또 항시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애통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전에 고인께서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저에게 막중한 총무직 수락을 권고하시면서 죽을 때까지 감당하라고 했습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 오늘까지 책임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고인이 병중에 계실 때 자주 가뵙지 못한 것과 기도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하며 자책으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잊을 수 없습니다. 생전에 고인이 베푼 친근함과 헌신적인 사랑에 저는 늘 감사하면서도 따뜻하게 대접 한 번 해드리지 못하고 오늘에야 고개 숙여 명복만 빌어야 하니 제 심정 어찌 참담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고인에게 받은 배려, 사랑, 어찌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겠습니까. 저의 자식 주례를 서주셨고 2004년 예기치 않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때가 있었는데 바쁘신 중에도 최원자 사모님과 두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영광이었습니다.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나 무지한 사람까지 오직 사랑만으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베푸신 은혜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고인이 살아계실 때 탈북여성위원들이 역삼동 사무실을 방문한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들을 보았습니다. 판사, 변호사, 법학박사, 북한구원, 미래한국신문…. 평소 인격과 훌륭함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후회 없이 천국으로…
김상철 박사님은 불철주야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 봉사하셨습니다. 정말 많은 일을 하셨고 많은 일을 이루셨습니다. 비록 짧은 생애를 살고 가셨지만 저희들에게는 희망을 주셨고 서로에게 믿음 사랑을 일깨워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후회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하고 싶었으나 해보지 못한 아쉬움과 둘은 생각만 하고 하지 못한 후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사님은 후회 없이 천국에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사님이 평소 소망하셨던 어떤 일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다 할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1999년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본부장님으로 계실 때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민국 5분의 1이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되는 1천만이 넘는 국민들에게 서명을 받아 유엔과 세계 관계기관에 전달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여성위원들과 함께 롯데백화점 안, 탑골공원, 지하철역 등에서 서명을 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박사님의 노고에 1천분의 1도 되지 않는 숫자라 부끄럽고 죄송해서 더 이상 그때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건강하신 것 같았고 10년 후 이별해야 하는 저희들이 될 줄을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당차시고 기품과 큰 비전을 가진 분이란 것만 느꼈을 뿐 어찌 오늘의 슬픔을 겪을 줄이야. 이별을 연습할 수는 없잖아요.
일생 동안 박사님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믿음 생활을 하셨는지를 모든 지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착한 자녀를 두셨고 온화하고 현숙한 사모님이 계셨기에 4년이 넘는 투병생활에도 지극한 간호로 기도하면서 한 번도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심이 강했고 존경심을 보였던 최원자 권사님이었습니다.
가족 분들의 헌신적 사랑 믿음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최원자 권사님을 뵈올 때 저희들은 박사님의 병세를 여쭤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평온한 얼굴로 저희들을 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속은 얼마나 두렵고 안타까운 심정이었을까요.
박사님! 박사님이 병원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기독교인) 지인들이 기도하고 기원드렸습니다. 하루속히 쾌유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저도 기도했습니다. 박사님만 살려주신다면 꼭 교회에 다시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하나님은 박사님을 하나님 나라로 모시고 가셨습니다. 괴롭고 고달픈 이 세상에서 편히 하나님 나라로 쉴 수 있는 천국으로 우리 곁에서 떼어놓았습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신 박사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박사님이 작고하신 지 벌써 1년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12월 13일 저희들은 박사님을 사진 속에 있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박사님! 지금 이념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라를 위해서 하늘나라에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사님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미래한국 김범수 사장이 요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생전에 못 다한 꿈을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펼칠 수 있도록 비전 있는 신문이 전 세계에 전달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도 기도하며 돕겠습니다. 육신은 저희들 곁에서 떠나셨어도 박사님은 저희들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박사님 명복을 빌면서 부족한 난필을 놓을까 합니다.
“사랑의 색깔은 아마도 파랑인가 봅니다
지금 하늘도 파란 빛이 나네요
가을 하늘이 가득하게 파란 걸 보니
모두 이 계절 행복한 날들 되세요
치열하게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여
파랑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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