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장로님의 기도
김 장로님의 기도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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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동천교회 담임목사

내가 처음 김상철 장로님을 만난 것은 2003년 2월 중순경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소재 수동기도원 원장이신 이태희 목사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원장실에서 처음 뵀다.

그 전 해인 2002년 12월 19일 김대중에 이어서 노무현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나서서 싸우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태희 목사님에게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계셨던 김홍도 금란교회 목사님을 연결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상철 장로님을 연결시켜주신 것이다.

김상철 장로님과 나는 원장실에서 약 2시간 단독 대좌해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김 장로님에게 전해 대선 다음날인 2002년 12월 20일 천마산 정상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의 앞날에 대해서“뒤죽박죽 엉망진창 도중하차 도중자멸”이란 계시를 주셨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날 김 장로님과 나는 신앙적으로, 사상적으로, 애국심으로 의기투합했다. 그날 이후 2007년 초까지 만 4년 동안 김 장로님과 나는 그리스도 신앙과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했다.

만 4년 동안 함께 행동하고 싸운 김상철 장로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첫째, 김 장로님은 신앙의 사람이셨다.

김 장로님이 내게 처음 부탁하신 것은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기드온 300용사단’을 조직하고자 하니 창립예배 설교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한 20여 년 간 은둔하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내가 참여는 할 테니 설교는 다른 유명하고 훌륭한 목사님에게 부탁을 드리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집요하게 부탁하시므로 기드온 300용사단 창립예배 설교를 하게 됐다.

창립예배일이 2003년 3월 6일이었고 장소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어느 아파트 단지 내의 교회였는데 이름이 산성교회였고 백여 명 모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 이후 코엑스 종교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네 번 ‘기드온 300용사단 기도회’를 가졌다. 그 중 열 두 번은 내가 설교했고 두 번은 다른 목사님 두 분께서 한 번씩 하셨다. 그리고 기도회 장소를 종로5가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으로 옮기면서 기도회 명칭도 ‘북한구원운동 기도회’로 바꿨다.

나는 2007년 초까지 북한구원운동 기도회에서 주로 설교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2007년 초 그만 기도 자리로 돌아오라고 하셔서 김 장로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천마산에서만 기도하게 됐다. 그 해 말 대선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연이어 두 차례 집권했던 좌경 정권이 무너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와 같이 김 장로님은 일관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그리고 예배드리는 것으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기본을 삼으신 분이시다. 그는 철두철미 신앙의 사람이셨다.

신앙의 사람, 신념의 사람, 애국의 사람

둘째, 김 장로님은 신념의 사람이셨다.

내가 겪은 김 장로님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의 사람이셨다. 김 장로님은 모두가 알다시피 군사정권 시절 유명한 인권 변호사이셨다. 그래서 군사정권 시절 고초당하는 많은 사람을 변호하셨다. 군사독재에 항거하신 것이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저항세력이 득세하면서 대학에서도 소위 주사파 세력이 대학을 장악하게 됐다. 이윽고 좌경정권이 집권하게 됐다. 연이어 좌경정권이 재집권하게 되자 김 장로님은 자유민주주의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면에 나서서 싸우시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도 김 장로님을 만나고 함께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됐다. 김 장로님은 이와 같이 굳센 신념의 사람이셨다. 김 장로님의 신념은 내가 알기로는 잠시라도, 추호도 흔들림이 없으셨다.

셋째, 김 장로님은 애국자이셨다.

이전 세대의 선각자, 애국자들이 그러셨듯이 김 장로님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신 분이다. 몸에 지병이 있었으나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신 분이시다.

한 번은 기도회를 마치고 김 장로님과 몇 분이 주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됐는데 건강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한 두 분이 건강을 위해 특별한 약을 드신다는 등 이야기를 하자 김 장로님은 “저는 검정콩 두유를 한 잔씩 마십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두유가 무슨 특별한 건강 음식이 되나’라고 생각했다. 김 장로님은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신 것이 없는 분이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으셨던 것 같다.

한 번은 내가 조직 운영에 관해 모처럼 조언을 드린 일이 있는데 김 장로님은 대답하시기를 “제가 뭘 알겠습니까? 나라만 잘 되면 그만이지요”라고 대답하셨다. 이와 같이 김 장로님은 오직 애국의 사람이셨다.

김 장로님이 소천하신 지도 어언 1년이 돼온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내 기도 자리로 돌아온 후 2008년 12월 5일 김 장로님이 쓰러지실 때까지 나도 전화 한 마디 없었고 김 장로님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각자의 길을 간 것이다. 나는 수도하고 기도하는 목사이므로 항상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김 장로님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빨리 데려가실 줄 나도 몰랐다.

오늘날 분명한 것은 나라가 아직도 혼란하고 하나님의 원수대적, 대한민국의 원수대적, 자유민주주의의 원수대적, 좌경 좌익분자들은 여전히 발호하는데 김 장로님은 안계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 상황에 절실히 필요한 분인데…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겠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어찌 알랴.

김 장로님의 일평생의 기도와 헌신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시기를,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기를,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시기를, 그리스도 신앙을 지켜주시기를 한 발 먼저 하나님께로 가신 김 장로님의 유지를 받들어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유가족을 지켜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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