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뿌리 내린 불굴의 정신
광야에 뿌리 내린 불굴의 정신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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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두 글로벌코리아포럼 공동대표 · 한반도평화재단 사무총장

90년대 초 한참 불거지기 시작한 재야의 민주운동권이 민주화를 표방하고 반미운동을 펼칠 때 나는 한미우호협회 사무총장으로 민간 차원에서 주로 미국의 정치지도자 또는 언론계 인사와의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그 당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실상과 뜻을 제대로 알리는 일에 전념하게 됐다.

그때는 요즘처럼 SNS(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시스템이 개발이 안 돼 직접 관계된 많은 인물을 직접 찾아가 만나고 친선을 다지며 인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것은 지금 개념으로는 휴대폰 연락망에 개인적으로 올릴 수 있는 친구들을 통해 한미 간의 친선을 도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故김상철 전 한미우호협회장과 이런 방대한 일을 광야의 풀뿌리같이 정부의 아무 지원 없이 한미우호협회의 활동을 같이 하며 김 회장의 애국심과 그의 헌신적인 생활철학과 진솔한 심성을 알게 됐다.

이러한 철두철미한 김 회장의 헌신적인 자세는 그의 강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인권보호정신에서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평안도가 고향으로 조국 분단의 아픔을 통해 실향민의 비애를 같이 나누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확고한 책임의식이 있었다.

나는 김 회장이 남다른 사회개혁에 대한 독특한 봉사정신을 가진 것은 그의 생활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진실한 기독교 신앙이 비리가 있는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촉매라고 믿었다. 그는 신앙을 통해 혹독한 군사독재시절에 재야민주운동인사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고 이에 더해 그의 예리한 법리적인 지식과 소신이 그를 특출한 인권 변호사로서 유감없이 활동하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김 회장이 소위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기독교인 재야민주운동가들이 갖고 있는 ‘반미주의’를 불식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진정한 민주운동은 반미운동자가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취지에서 소위 재야민주운동권의 비합리성을 지적하고 교정할 목적으로 한미우호협회를 창설했다. 협회의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로 매월 ‘미래한국 포럼’ 토론회를 개설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학계를 비롯한 언론계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우리나라의 맹목적인 반미주의운동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정한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올바른 자세를 취하도록 계도하는 목적을 이루려 했다.

김 회장의 결심으로 반미감정에 매몰돼 국내 재야 민주화바람이 한참 불어 닥쳐올 때 그의 활동은 흐르는 오염된 강물에 맑은 물을 제공하는 ‘샘바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반민주적인 독재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었다.

무질서 속에서 찾아낸 질서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인류 역사 발전에 얼마나 큰 힘이 됐고 자유민주주주의 정신이 반영된 우리나라 헌법이 오늘날 경제성장에 기초가 된 것은 물론 미국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수호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주장이었다. 김 회장은 먼저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고 국민을 계도시키는 것이 얼마나 주요한 것인지 제대로 알고 우리가 이러한 우리 국민의 미국에 대한 진심을 미 언론계에 알리고 한미 상호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에 앞장서 활동한 사명감에 불타는 일꾼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생애 롤모델은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남의 철저한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권보호주의 신념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이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우남의 사상은 미국식 교육문화에서 배양됐다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김 회장은 요사이 떠오르는 우리나라의 세계화 추세도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에서 유래됐다고 확신했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향해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우남이 세운 우리나라의 건국이념, 즉 헌법정신이라고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김 회장의 봉사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협회 이사인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내게 김 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미우호협회가 미국의 명문대학과 제휴해 미국 대학생과 교수들이 한국을 방문하도록 해서 한미 간 서로 바른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다리를 놓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나는 1995년 1월 김 회장, 사모님과 동행하며 하얀 눈이 덮인 아이오아주 버모트를 방문해 코넬대학에서 김 회장의 인류사회학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했다. 그 대학과 협회가 합의해 총장을 비롯 교수, 학생들이 방한해 한국의 대학 생활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김 회장은 세계 어느 민족국가에도 유래 없이 근 70년 동안 갈라진 우리 민족이 언젠가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믿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독일통일과 같이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의 자주적 의지로 이뤄져야 하고 이러한 자주 역량에 대해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독일문화를 몸에 익혔다. 무엇보다 독일의 통일 기반은 독일 국민의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인문학 배경을 둔 선진적인 정신문화에 있었음을 김 회장은 갈파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김 회장을 회고하며 그에 관한 강렬한 인상을 요약해 말한다면 그는 인권을 증진하는 데 가치를 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용기,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집념으로 사명감에 불타는 일꾼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그는 오늘이 그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일을 찾아 몰두해 열심히 일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 향상에 많은 업적을 남기지 않았나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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