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문화행사로 뿌리내린 전태일문학상
[특별기획] 문화행사로 뿌리내린 전태일문학상
  • 이근미 소설가·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5.26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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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보다는 해석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역사적 인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특히 이념적인 인물이나 정치적인 인물은 추종자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떠오르거나 사라진다. 좌우 대립이 팽팽한 우리나라에서 좌파들은 의지를 갖고 인물을 조명하고 사건을 기념하는 데 반해 우파들의 기념 활동은 전무하다시피하다.

문예공모만 놓고 봤을 때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문학공모 정보 사이트로 유명한 ‘엽서시문학공모’에 올라온 3년 치 공모전을 살펴보니 각 신문사와 출판사, 문인기념협회,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작품을 모집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인물이나 이념적인 색채를 띤 인물, 정치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문학공모전도 있었다.

 우파공모전으로는 제1회 북한인권문학상 작품공모전(주최/국제PEN망명북한작가센터 북한인권문학상위원회)이 사실상 유일했다.

백범 김구를 기념하는 백일장은 19회째 계속되고 있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기념하는 공모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관련 공모전은 ‘김대중정신 계승 글짓기대회’와 김대중평화센터가 주관하는 ‘6·15통일문학상 공모전’ 등 2건이 매년 열리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 기념할 만한 여러 일들이 있지만 문학공모전을 통해 꾸준히 조명되는 사건은 광주5·18과 제주4·3이었다.

특히 ‘제주4·3평화문학상’은 기성작가도 응모가 가능하고 상금이 9000만 원(시 2000만 원, 소설 7000만 원)이나 되어 단숨에 유명 공모전으로 떠올랐다.

5·18 관련 공모전으로는 ‘5·18문학상’, ‘5·18민중항쟁기념 전국 학생 글쓰기·미술한마당’, ‘5·18기념 서울 청소년대회’가 있다. 제주4·3 관련 공모전은 ‘제주4·3평화문학상’, ‘제주4·3사건기념 전국청소년4·3문예공모’가 있다.

좌파단체에서 의지를 갖고 알려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인물이 있다면 단연 ‘전태일’을 들 수 있다.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노동운동을 하다 해고된 뒤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저항운동 중에 분신으로 인해 사망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쪽과 ‘단순한 노동자를 과대평가한다’는 쪽으로 나뉜다.

유명작가와 함께 거론되는 전태일, 대한민국 건국 영웅들은 외면

전태일재단은 그가 사망한 지 11년 후인 1981년에 발족해 지속적인 기념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태일 평전>(1983),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1988)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고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을 개봉했다.

여러 사업을 펼치는 가운데 전태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알린 것은 <전태일문학상>(1988)과 <전태일청소년문학상>(2005)이라고 할 수 있다.

 

24회와 11회를 꾸준히 계속하다보니 전태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문화인물, 작가’로 인식할지도 모르겠다.

영랑백일장, 심훈중앙대청소년문학상, 만해백일장 등 신인공모전이나 기성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김수영 문학상 등에 붙은 이름의 주인공이 최고 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네이버 지식in 코너에서 ‘우리나라의 문학상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것은?’이라는 질문에서도 전태일이 거론되고 있었다.

답변자는 신춘문예가 가장 권위 있고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문예지 공모가 뒤를 잇는다고 단정하면서 ‘꽤나 권위가 있는 것은 작가의 이름을 붙여서 나오는 대회’로 ‘이상문학상, 전태일문학상, 소월문학상’을 꼽았다.

답변의 부정확함은 일단 제쳐두고 전태일문학상이 이상문학상, 소월문학상(정확한 명칭은 소월시문학상)과 함께 거론된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은 기성 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명실공히 최고의 상이고 전태일문학상은 신인공모전이어서 모집 대상부터가 다르다.

4·3과 5·18을 기념하는 공모전

무엇보다도 문학전공을 희망하는 고등학생이라면 전태일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문학특기자 전형에서 가산점을 주는 전국 규모의 대회명에 전태일청소년문학상이 빠짐없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전국 규모의 대회명에 붙은 이름들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긴 문인들이다. 학생들이 전태일청소년문학상을 유명작가들을 기념하는 상과 동등하게 여길 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2005년부터 공모를 시작한 전태일청소년문학상은 전국국어교사모임과 함께 진행한다. 공모 취지에 ‘1970년에 노동자의 존엄을 알리는 횃불을 높이 들었던 전태일 정신을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가슴속에 새겨질 수 있는 마당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국어교사들의 후원 속에서 학생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시, 산문, 독후감’을 모집하고 있으니 호응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후감 응모 대상 도서인 <전태일 평전>을 다른 부문 응모자들도 다 읽어야 한다. 응모 요령에 ‘모든 응모자는 <전태일 평전>에서 감명 깊게 읽은 한 구절을 응모 작품 끝에 덧붙여주세요. (예: “오늘 그들의 외로운 목소리는 언젠가는 거대한 함성으로 메아리칠 것이다.”-<전태일 평전>에서)’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청소년문학상에 응모하려면 반드시 <전태일 평전>을 읽어야 한다는 전략이 놀랍다.

왁자지껄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조용히 사라진 행사가 부지기수다. 꾸준히 계속해서 하나의 브랜드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행사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처음에는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게 뿌리내리는 것이 문화이다. 사람과 사건이 ‘문화’로 자리 잡으면 삶의 지형을 바꾼다.

문화는 많은 사람이 꾸준히 노력해야 인정받고 파급효과가 크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씨앗을 뿌리고 가꿔나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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