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예봉이 꺾이다
언론의 예봉이 꺾이다
  • 박한명 전 미디어펜 논설주간
  • 승인 2017.08.24 10: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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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의 언론 장악 능력은 확실히 진일보했다. 기자실에 대못을 치던 노무현 정권의 서투르고 우악스럽고 거친 방식 대신 노련하고 섬세한 기술과 영악한 꼼수가 그 자리를 채웠다.

노 대통령이 정공법으로 언론과 정면에서 붙었다면 문 대통령은 측면에서 기습하고 우회적으로 약은꾀를 쓴다. 전면전은 대통령을 둘러싼 홍위병들이 대신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통상 허니문(honeymoon period) 기간이라 불리는 이 기간 동안 문재인 정권은 언론의 예봉을 확실히 꺾어놓은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짓밟고 감옥에 보낸 언론의 날이 이 정권의 대통령에게는 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거대 포털사인 네이버 부사장 출신을 홍보수석비서관에, 카카오 부사장을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에 임명해 대한민국 언론 방향의 키를 쥐어준 것부터 확실한 징조다.

▲ 문재인 정권 들어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게시판이 폐쇄됐다.

청와대 포털 장악은 완성

양대 포털사 출신의 핵심 간부를 청와대로 불러들인 것만으로도 언론에 주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포털의 가두리 양식장 안에 갇혀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아야 하는 언론의 생태계를 정확히 파악한 신의 한수였다.

의도의 노골성이나 목적의 정확성에서 박근혜 정권과도 차별화되는 큰 수였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중도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 대표와 네이트닷컴 미디어마케팅 부장, SK커뮤니케이션즈 홍보실장 등을 지낸 오모 씨 정도가 뉴미디어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들은 포털과 언론환경을 정상화하는 데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네이버와 카카오 부사장 출신을 홍보수석과 뉴미디어비서관으로 세웠다. 어느 면을 봐도 이전 정부와 차이가 난다. 문 정권은 이들 인사들을 영입함으로써 포털의 생리와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언론 장악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가고 있다.

예컨대 네이버가 6월 도입한 ‘사용자와 함께 만드는 댓글 문화 정책’을 보자. 네이버 뉴스 하단에 달린 이용자들이 접기 요청을 한 일정 비율 이상의 댓글이 자동으로 접히는 방식을 말한다. 네이버는 그 비율이 몇 퍼센트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는 정책 도입 이유로 ‘건전한 온라인 소통 환경 조성’을 내세웠다. 명분은 그럴 듯했다.

그러나 현실도 과연 그런가.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이용자들, 소위 네티즌들은 이 정책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인사와 정책을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가 얼마 안 돼 댓글이 사라졌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고, 소수에 불과하나 일부 언론도 이 점을 조심스레 지적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이 정책이 현실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한가. 문 대통령은 문슬람, 달레반, 문주주의자로 불리는 온라인 극성 지지팬을 갖고 있다. 온라인에서 이들 문빠들의 횡포는 유명하다.

상대 편 우리 편을 가리지 않는다. 문자폭탄, 댓글폭탄을 맞고 나가떨어진 의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요컨대 네이버의 이 정책은 의견 표현에 적극적인 집단, 여론조작을 하는 집단이 다른 의견을 묵살할 위험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표현의 자유는 더 위축되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네이버가 하필이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사용자와 함께 만드는 댓글 문화 정책’을 편 것은 단순히 우연에 불과한가. 네이버 부사장 출신 청와대 홍보수석과는 전혀 무관한가. 그는 현 정권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서 단 한통의 어떤 전화도,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있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이전 우익 정권에서 유독 정권에 날을 세우고 좌편향을 의심받았던 네이버 등 포털이 문 정권 들어와 문비어천가의 근원지로 돌변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 절대 다수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현실에서, 적극적인 정권 지지로 돌변한 듯한 포털은 문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에 따른 하나의 변화라는 의심을 지울 순 없을 것이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에서 열 열린 4기 방통위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

프로파간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진행 중

다른 한편에서 문재인 정권의 언론 정책, 혹은 언론 장악 시도는 다른 공약들과 마찬가지로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치 청부업자를 연상시키듯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영방송사 사장을 제거하기 위해 임명되자마자 칼을 휘두르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의 언론 공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약집에 의하면 문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약속을 했다. ▲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추진 ▲ 보도·제작·편성권과 언론사 경영의 분리, 독립. 편성위원회를 방송사업자와 취재, 제작, 편성부문 종사자 대표가 동수로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하는 등 보도, 제작, 편성의 자율성 확보 추진 ▲ 특혜 없이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방송을 동일하게 규제하는 체제로 전환 ▲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 정부에서 억울하게 해직, 정직 등의 징계로 탄압받은 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 원상 복귀 및 언론탄압 진상규명 추진 등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 대통령의 이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선 현재 공영방송사 이사회와 경영진 물갈이가 필수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MBC 사장과 이사회(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의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재 KBS와 특히 MBC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우연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참고했다는 선전 전략의 고전 ‘프로파간다(1928년, 에드워드 버네이스(일명 PR의 아버지))’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다.

“시민들이 똑같은 거수기가 되는 상황에서 똑같은 자극에 노출되면 똑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군주제든, 입헌제든, 민주제든, 공산제든 정부의 성패는 여론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 문 정권은 유난히 여론을 의식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정권인데, 이런 기만성 정책의 성공 여부는 당연하게도 언론 통제에 달려 있다. 특히 그 중심에는 방송 장악 성공 여부가 있다.

이 정권이 방송사 중 공영방송에 우선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지상파 민영방송인 SBS는 지난 5·9 대선 전 일찌감치 백기를 들었고 종편은 재허가 문제로 정부가 사실상 코를 꿰고 있기 때문이다.

민영방송에도 불구하고 SBS의 현재 권력에 대한 과도한 굴종적 행태는 의미심장하다. 흔히 생각하길 방송법과 방문진법 등에 의해 통제를 받는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에 의한 방송 장악이 더 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따져보면 딱히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MBC KBS에 관심이 집중돼 있는 탓에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 SBS 보도가 이들 보도보다 더 공정하다는 객관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SBS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세월호 인양 시기와 관련해 해양수산부와 물밑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수차례 사과방송까지 하는 수모를 겪으며 항복했다. 기사를 삭제한 것은 물론이고 보도본부장이 사과방송하고 급기야 대표이사의 사과까지 있었다.

역대 방송사 오보나 왜곡 보도의 숱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가 고개를 숙여 사과까지 한 일이 있었나.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한 상황에서 백기를 든 SBS에 대해서는 문 정권 출범 후 여당이나 야당이나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보도가 공정하다기보다 이미 문 정권에 백기를 든 방송사 보도에 여당이 쌍심지를 돋울 일이 없고, 민영방송사 보도에 야당이 끼어들기 껄끄럽기 때문이다. 민영방송이든 공영방송이든 내부 노조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소속이라는 공통적인 사실과, 이들이 작금의 여당 권력과 어떤 관계인지가 보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황은 차후에 따로 지적되고 연구돼야 할 것이다.

어찌됐든 문재인 정권 100일 동안 언론이 보여준 것은 전무후무하게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이다. 북핵사태와 탈원전, 최저임금, 복지 등 국가 존망과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이해와 위험성이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언론자유를 빙자한 언론자유 말살 시도 탓이다.

문재인 정권은 대중조작의 진정한 실력자

예컨대 MBC 문건(소위 블랙리스트)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거의 유일하게 정권에 부역하지 않는 보도를 간신히 유지하는 MBC에 대한 유무형의 온갖 탄압이 생생한 증거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사법적 탄압을 별개로 하더라도, MBC를 둘러싼 여권의 총공격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내부에선 언론노조가 터무니없는 블랙리스트 논란을 일으키고 2차 3차로 확산시킨다. 아직 임명도 안 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말도 안 되는 MBC 특별근로감독을 옹호하는 자세를 취한다거나, 친위 부대나 다름없는 언론매체들이 문건 사태 확성기 노릇을 하는 모습, 민주당이 거들고 대통령까지 나서 전방위로 포위하는 행태. 이런 것이 방송 장악 기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방송 장악이라고 부를 수 있나.

문제는 언론의 일그러진 권력 복종의 행태와 100일 간 보여줬던 문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가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시도되고 완성되리라는 우려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기도 한 버네이스는 프로파간다에서 ‘대중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이룬다’고 했다.

방송은 대중조작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매개체로 이 방송을 장악한 세력이야말로 버네이스가 말한 ‘국가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 아닌가. 그런 면에서 방송 장악을 완성해가는 문재인 정권이야말로 선전선동의 대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에 약점이 잡혀 있던 YTN 사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면서 해고는 정당했다는 대법원 판결도 무시된 채 언론노조 소속 해직기자 3명의 복직이 최근 결정됐다고 한다. 이 정권 들어 무섭게 번지는 법치 파괴 현상이 언론계도 비껴가지 않은 꼴이다. EBS 사장까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도 사퇴했다.

MBC 사장과 KBS 사장이 그 다음 목표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MBC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괴한 사건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이후에 벌어질 일은 안 봐도 뻔하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일이야 국회에서 야당이 저지한다고 쳐도, KBS MBC 내 보도와 제작, 편성을 경영과 분리시키고, 편성위원회를 만들어 노조의 간섭을 공식화, 법제화하려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작금의 방송은 사실상 내부 언론노조의 통제 안에 있는데, 이것이 실현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노영방송의 완성이다.

문 대통령은 언론 공약에 ▲ 종편.보도전문채널·유료방송에 시청자위원회 설치 및 위상 강화와 시청자 권익보호 전담기구 신설 등으로 시청자 주권 보호 ▲ 지상파방송 및 유료방송에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편성을 확대하여 시민참여 방송 활성화 추진 ▲ 미디어 활용능력과 비판적 이해 능력 증진을 위한 미디어교육 활성화 추진 ▲ 시청자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수신료위원회(가칭)’를 설치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수신료.산정·징수·배분 등 관리, 감독 강화 등을 집어넣었다.

이 공약들은 외부 단체들의 참여를 전제하는데 우익진영의 언론 관련자들이 거의 전무한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방송은 우익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으로 초토화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문 정권의 언론 장악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우익진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문 정권의 대형 이슈에 파묻혀 이런 언론 현실을 막연히 인지하고만 있다.

공부가 제대로 안 돼 있고 따라서 실력도 없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소위 보수분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해 허둥대고만 있다. 정권의 방송 장악 폭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익단체들도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기만 하다. 통상 정권은 100일을 넘기면 허니문 기간도 끝나고 본격적인 견제를 받는다. 그러나 탄핵사태를 거쳐 선동에 넘어간 대중과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더 영리하면서도 더 공격적으로 질주할 것이다. 방송 장악의 진짜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박한명 전 미디어펜 논설주간, 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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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2017-08-29 21:16:44
보수우익이 정말 반성해야 할 것은 정권이 진보든, 보수이든 상관없이 공영방송이 제 역활을 하도록 도와주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애초 정부가 해야 할 역활입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제 역활을 하도록 도와주었습니까? 전혀 안 했습니다. 공영방송이 제 역활을 못한 결과가 박근혜정부가 처참하게 몰락했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bobpark 2017-08-24 17:57:25
이런 글도 쓸 수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