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는 말을 꺼내기 두려워
법대로 하자’는 말을 꺼내기 두려워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7.09.05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세상처럼 보인다. 필요하면 법을 새로 만들자거나 고치자 하고, 특정한 사안에는 법을 걸어 시비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법을 두고도 무시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정한 기준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따라,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각각 다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최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재판은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삼성 뇌물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하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특검이 기소한 뇌물공여, 횡령, 국외재산도피 등 5가지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과 관련하여 “특검의 직접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해서 기소했지만, ‘직접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한 것은 판단을 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표현이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은,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판단의 근거가 될 만큼 확실하지 않다거나 아예 증거 자체가 없다는 경우의 둘 중 하나다.

그런데도 유죄판결을 한 것은,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형사재판에서 증거가 부족할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적용한다는 대원칙에도 어긋난다. 대기업 경영자가 정치권력자에게 청탁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원칙적으로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고 법리적으로는 무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법리적으로 무죄라는 것을 재판부가 전제하면서도 유죄 선고를 한 것이니 그 사이의 간격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한 재판에서 되레 원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검찰 측이 추가 증거로 제출한 자료를 재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결국 그는 무죄 선고를 받기는 커녕 더 높은 형량을 받았으니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하다.

우리의 사법 제도가 3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하급심에서 다툰 내용에 대하여 이의가 있으니 상급심에서 바르게 밝혀 달라는 취지이고, 대법원의 판단은 최종심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대법원의 결정은 해당 사건의 최고 판단이자 비슷한 사건의 판례 역할을 한다.

대법원 무죄 취지로 환송, 하급심은 형량 높여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은 최소한 해당 사건은 하급심에서 내린 판단이 법적 구성을 충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록 피고인에게 의심이 간다 하여도 유죄 판단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봐야 할 것이다. 이전의 여러 사건에서도 적용된 판단일 터이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못지않게 우리 사회를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는 사안이 ‘탈원전’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 곧 탈원전을 실현하겠다며 가동 기간이 도래한 원자력 발전소의 연장을 중단했다. 새로 짓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 여부에 대해서도 다시 판단하겠다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은 소박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흔하다.

문 대통령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탈원전 정책에 관한한 비판이나 반대 여론이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난다. ‘국민의 뜻’에 다르겠다는 말을 관용구처럼 인용하는 대통령이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의 뜻’과는 다르게 가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법을 대신하는 여론 위원회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여론을 우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지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원전공론화위원회라는 한시적 기구를 만들어 여론을 살피는 작업에 나섰다.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가 내리는 결론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공론화위원회가 해당 사안의 결정에 전권을 가진 셈이 되었고, 위원회의 구성에 원자력 전문가들은 빠진 채 위원장을 포함한 9명이 몇 개 분야로 나뉘어 여론 조사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설치한 공론화위원회는 법적 근거를 갖는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국회 산업중기위 소속 이채익 의원이 국회입법 조사처를 통해 받은 회신 자료는 ‘국무조정실이 행정명령으로 건설 중단을 내릴 수 있는 법률의 근거조항이 없고,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한과 관련해서도 공론화위원회가 발전소 사업허가나 건설허가를 내릴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공론화위원회는 법률에 의한 위임 규정 없이 국무총리훈령으로 설치됐기 때문에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사항은 법률적 구속력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 같은 판단은, 정부가 예산권을 가진 국회의 동의 없이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신고리 5,6호기)의 사업 중단으로 발생할 2조6000억 원 이상의 매몰비용을 부담하는 건 위법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 속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마지막 잣대로서의 법이 가진 역할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그 믿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슴 가죽(鹿皮)에 가로 왈(曰)을 쓰고, 옆으로 당기면 왈자 그대로 유지되지만 아래 위로 당기면 길이가 길어지면서 날 일(日)로 바뀐다. ‘녹비에 가로왈’이란 표현의 유래다.

비슷한 표현에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도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것이니 이사람 저사람 마음대로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요즘 자주 쓰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도 입장이 달라졌다고 그때그때 적용 잣대가 달라지는 경우를 빗댄다.

이번호 미래한국에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 탈원전 공론화위원회의 활동과 관련한 기사들을 실었다. 각 사건의 내용은 다르지만 바탕에는 법치에 근거한 공정 사회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의문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닿는다.
 

편집 마감을 하고나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갑작스레 느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