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굿판’ 탈원전 주술이 현실을 지배하나
‘망국적 굿판’ 탈원전 주술이 현실을 지배하나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17.11.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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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여야 한다. 영화 속 상상력이 정책의 옷을 입고 현실 세계를 지배한다면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얘기되는 대로, 원자력 발전의 대재앙을 그린 영화 <판도라>가 탈(脫)원전 논의의 기폭제가 됐다는 풍설을 믿고 싶지는 않다. 만약 사실이라면 한국 사회의 지력(知力)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문명 비평이 사회에 화두를 던질 수는 있지만 화두는 화두일 뿐이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원자력의 ‘안전기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를 진행시키면 된다. 느닷없는 탈원전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이다.

공론화위원회의 월권 논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 20일 원자력발전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원자력 발전소 공사를 재개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공론화 결과를 정부에 제출했다.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 발표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라’는 권고를 끼어 넣었다. 공론화위원회에 월권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7월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공론화위의 활동범위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짓는 것’으로 한정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공론화 작업은 신고리 5·6호기에 국한된 공론화 작업입니다. 5·6호기에 대한 건설 공사 중단 여부만을 대상으로 해서 공론화 작업이 철저하게 이뤄진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도 이를 공식화했다. 위원회 활동이 설립 목적을 벗어난 것이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중단보다 19%포인트 높았던 결과에 대해선 ‘더 높았다’고 논평한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유지 또는 확대보다 8%포인트 많아 간신히 오차범위(상하 7.2%)를 넘긴 원전 축소에 대해 ‘훨씬 높았다’고 논평한 것은 부적절한 처사이다.

공론화위가 “공사 중단을 추진하려던 정부의 입장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탈원전 권고안을 무리하게 끼어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공론화위윈회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것 아니냐는 관측과 같은 맥락이다.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공사를 중단시킨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정부에게 전기사업법, 원자력안전 관계법에 근거해 시행중인 공사를 집행해야 할 의무만 있지 중단할 권한은 없다.

예외가 있다면, 국가 경제 및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긴급 사태가 발발해 긴급 조치를 발동할 때일 것이다. 따라서 진행 중인 발전소 공사를 법적 근거 없이 중단시킨 행위는 명백한 부당행위다.

▲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옆에서 울진군 탈원전 정부정책 반대 범대책위원회원들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없는 진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


탈원전 로드맵에 따른 매몰비용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결과 발표 4일 만인 24일 국무회의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에너지 전환(탈원전) 로드맵’을 의결했다. 로드맵엔 신고리 건설 재개 외에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까지 확대 등의 계획이 담겨 있다.

그리고 운영 허가 기간을 10년 연장해 가동 중인 월성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전환정책은 대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놓아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국정 아젠다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대선 승리가 모든 공약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정강을 ‘전체로 보고’ 표를 준 것이지 정강의 모든 ‘공약 하나하나’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것은 아니다. 공약사항이라도 국가적 사활이 걸린 문제는 정식 아젠더화(化)해 전문가와 국민 대표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 조직 전인 지난 6월 이미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 운항 선령(船齡)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했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중고 선박을 들여와 무리하게 객실을 증설하는 바람에 복원력이 손상된 데다 과도하게 화물을 실어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불법개조와 화물과적으로 선박 노후화와는 관계가 없다.

27개월간 7000억 원을 들여 전면적으로 설비 개선을 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연장 가동이 승인된 월성 1호기를 세월호와 비교하는 것은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가동 원전 99기 가운데 최초 운영 허가 기간 40년이 지나 20년 연장 운전을 승인받은 원전이 올 6월 기준 84기나 된다. 미국은 가난한 나라라 운전 기간이 만료된 원전을 20년씩 더 쓰고 한국은 미국보다 부자라서 곧바로 내다 버리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발전은 건설단가가 높아 유지보수를 통해 운용기간을 길게 잡는 것이 통례이다. 몇 년 굴리다 폐차하는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고리 5·6호기를 3개월 멈추는 바람에 본 피해가 1000억 원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경북 울진에 건설 예정이던 신한울 3·4호기는 지난 5월 설계 용역이 중단됐고, 영덕에 건설 예정이던 천지 1·2호기는 부지 매입과 환경영향평가가 6월 중단됐다. 월성원전 1호기가 폐기되면 매몰비용은 더 늘어나게 된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국정감사에서 2022년 11월까지 가동 예정이던 월성원전 1호기를 올 연말 폐쇄할 경우 설비 용량, 평균 가동률, 전력 단가를 감안할 때 가동 포기 4년 11개월 동안의 전력생산 손해액(매출액)은 1조4991억 원이 된다.

월성 1호기는 2012년의 30년 운영 허가 기간 만료에 앞서 2009~2011년 7000억 원을 들여 압력관 등을 포함해 대대적인 설비 교체 작업을 벌였다. 가동 연장을 위해 들인 돈이 7000억 원인데 절반은 가동하지 못하게 됐으므로 수리비 3500억 원은 헛돈이 돼버린 것이다, 건설지역지원금 등을 포함해 총 매몰비용은 약 9000억~1조 원으로 추정된다.

사업 중단으로 발생하는 손해배상 책임은 특별법인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있다. 한수원은 한전의 100% 자회사이다. 한전의 주요 주주 구성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 말 현재 정부와 산업은행이 각각 18.2%, 32.9%, 국민연금공단이 6.5%이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30.7%이며 나머지는 기타 개인 및 기관 투자자다.

한수원의 피해는 한전으로 전가될 것이고 한전의 손실 피해는 최대 주주인 공공부문에게 돌아갈 것이다. 향후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일부 소비자에게도 손실이 돌아간다. 종국적으로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간다. 이는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간과해서 안 될 것은 한수원이 ‘한전의 100% 자회사’라는 사실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완전모자(母子)회사이기 때문에, 즉 하나의 회사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라는 화살을 맞을 수 있다. “한전의 외부주주가 한전의 자회사인 한수원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재 정상 작동 중인 월성 1호기를 강제로 퇴역시키면, 경제성 있는 자산의 가치를 영(零)으로 만들어 주주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되기 때문에 한수원 경영진은 배임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전의 외국인 지분률이 30.7%인 상황에서 자동차 폐차하듯이 원자력발전소를 조기 폐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큰 정책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설계 수명이 끝난 원전의 수명연장을 금지하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사업자(한수원)가 계속운전(수명연장)을 신청할 경우 규제당국(원자력안전위원회)은  안정성을 검토해 인허가를 내주도록 돼 있다.

계속운전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지난 6월 영구정지한 고리 1호기처럼 사업자가 계속운전을 신청하지 않도록 규제하거나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행정부 혼자 행정조치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끝으로 계획된 원전을 자의적으로 백지화하는 것은 정부 사업과 행정의 제1원칙인 ‘예측가능성과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무형의 신뢰손실은 매몰비용에 비할 바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와 탈원전은 모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되 탈원전을 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신고리 5·6호기가 2022년에 준공되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정부의 미션은 5·6호기 건설 재개를 결정하고 끝나는 것이 순리(順理)이다. 원전의 수명의 30년 이상임을 감안할 때, 기 건설된 원전의 유지보수를 위해서도 탈원전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론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겠단다. 이 역시 앞뒤기 맞지 않는다. 정작 우리는 안전을 문제 삼아 우리 원전을 외면하면서 외국을 향해 기술력과 경제성이 뛰어난 한국 원전을 선택해 달라는 논리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탈원전 로드맵에 따르면 현재 7%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20%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비 불확실성이 큰 재생에너지 특성상 변수가 많다. 태양광 패널의 카드뮴·납 등 폐기물 문제와 난개발 문제도 숙제다. 바람의 질이 좋지 않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풍력발전은 그야말로 이삭줍기다. 원전은 나쁘고 신재생에너지는 좋다는 어설픈 탈원전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원전을 가속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늦어지면 남은 선택지는 북한을 경유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성국가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또한 탈원전을 하게 되면 핵무기 개발의 인프라를 우리 손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일본은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잠재적인 핵보유국인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우리 손으로 핵개발의 인프라를 파괴하는 것은 스스로 무장 해제를 하는 것이다.

정권과 대한민국이 일체일 수는 없다

원자력발전은 반도체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분야이다. 따라서 탈원전을 한다는 것은 산업 생산과 일자리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원자력발전 사업자인 한수원에게 “탈(脫)원전 로드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구체적인 책임 범위에 대한 언급도 없이 탈원전에 대한 책임을 무작정 한수원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백년지대계로 불리는 에너지정책 전환을 사실상 ‘편법’인 행정조치로 일관하면서 ‘국회 패싱’ 논란까지 부추기고 있다.

정권의 유효기간은 5년이다. 정권은 국민이 위임한 임기 동안 선한 의지로 나라를 관리하는  주체일 뿐이다. 정권과 대한민국이 일체일 수는 없다. 임기 동안 모든 것을 정권 입맛대로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권한을 준 사람은 없다.
탈원전 정책으로의 근본적 전환은 원자력 관계법, 전기사업법 등 각종 관련법을 재정비해야 하는 국회가 해야 할 입법 문제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투표까지 예상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을 공론화위원회에 맡긴 것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망국의 탈원전 굿판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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