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수(梟首)와 조리돌림의 시대
효수(梟首)와 조리돌림의 시대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11.1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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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수(梟首)는 처형당한 죄수의 머리를 잘라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 경우를 가리킨다. 다른 말로는 효시(梟示, 梟市)라고도 한다. 중국의 상고시대인 황제(黃帝) 때부터 모반자(謀反者)에게 적용했다는 것을 보면 그 역사도 오래다. 한(漢)나라 구장률(九章律)에서는 5형(五刑) 중의 하나였다.

5형은 얼굴이나 몸에 글자를 새기고(刺字), 코를 베고, 발을 베고, 혀를 끊고, 효수하는 다섯 가지 형벌을 가리킨다. 요즘 같으면 죄의 유무를 떠나 그 자체로 인권 시비를 일으킬 만한 잔혹한 내용이다. 모반이나 살인 등 중죄에 적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의종14년(1160년)에 어미를 죽인 친족범죄자를 효시하였고, 공민왕 12년(1363년)에는 역모를 계획한 피의자를 효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보통 3일 동안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죽은 사람의 머리를 내걸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조 때 모반죄에 효시를 시행한 이래 자주 행해졌다. 세조 때 김종서(金宗瑞) 부자, 황보 인(皇甫仁) 등 10인이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효수되었다. 박기년(朴耆年) 등 5인도 백관(百官)을 군기감 앞길에 둘러 세워 뭇사람이 보는 가운데 거열(車裂-몸을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형벌)로 죽인 뒤 3일 동안 효수하였다.

효수 방법으로는 장대를 세우거나 장대를 삼각(三脚)으로 세워서 머리칼을 묶어 매달았다. 조선시대 내내 수시로 적용되던 효수형은 고종31년(1894년) 12월 27일 포고한 칙령 제30호에 의해 참형과 능지처참형이 폐지됨에 따라 함께 사라졌다.(위키피디아) 참고

효수가 죽인 사람의 머리를 내걸고 욕보인 것과 달리 ‘조리돌림’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초법적 욕보이기 처벌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 정치세력은 이정재 등 자유당 시절의 정치 깡패들을 잡아들이고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다니며 가두 행진을 하도록 하였는데, 당시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에서는 나치 독일에 협력한 비시 정권의 여자들을 삭발 시킨 채 거리를 걷게 했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 시절에 ‘반동분자’들을 잡아다 머리에 고깔을 씌우거나 몸에 팻말을 걸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는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가리켜 ‘인민의 적’이라고 비난하던 간수가 문화혁명 때에 오히려 반동으로 몰려 조리돌림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을 담당했던 여러 인물들이 각종 혐의로 체포, 기소되어 수감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당시 주변의 참모, 기업인과 주변 사람들, 정보기관의 인물 등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면, 문제가 되는 제도나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우선일 터이지만, 지금은 지난 정권의 인물을 찍어 각종 혐의를 엮어 처벌하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들이 한때는 나름 국정을 이끌었던 책임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인권이 강조되는 디지털 시대에 인격을 목 자른 채 여론 앞에 내걸고, 온갖 낙인을 찍어 치사한 잡범만도 못한 존재로 만들어 공공연히 조리돌림을 하고 있는 일이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6·25보다 더한 국난을 겪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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