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적 정의’가 누군가를 해치는 흉기는 아닌가
‘열광적 정의’가 누군가를 해치는 흉기는 아닌가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7.11.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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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광석은 지난 1996년 사망했다. 경찰 조사는 자살로 결론지었다. 타살의 흔적을 의심할만한 요소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주위 사람들과 대중은 저마다 생각하는대로 미뤄 짐작할 수는 있지만, 모든 죽음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젊은 나이에 세상과 등진 김광석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여운이 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노래는 남아 추모의 마음을 담았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객으로 기억되던 김광석이 새롭게 뉴스의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김광석>이란 영화(달리 부를 용어가 없다)가 개봉되면서다. 전직 기자 출신의 이상호가 꾸민 이 영화는 김광석의 가객 인생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더 앞세웠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을 담았다.

김광석의 딸이 죽었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은폐되었다가 뒤늦게 드러난 부분에도 숨겨진 흑막이 있다는 방향으로 몰았다. 그 의혹 뒤에는 김광석의 부인 서모 씨가 있다는 설정도 이어졌다.

영화를 통해서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재수사를 촉구하는 구체적인 액션까지 곁들였다. 의혹을 밝혀줄 구체적인 증거까지 있다는 식의 주장도 내놓았다. 수사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자료를 내놓겠노라고도 했다.

느닷없는 의혹 제기였지만 국내 언론은 이상호의 추측성 의혹을 여과 없이 퍼 날랐다. 그 과정에서 서모 씨는 김광석의 돈을 노리고 남편과 딸을 살해한 흉악범 같은 인상으로 몰렸다. 당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부정하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무고한 특정인을 인격 살인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 가수 故 김광석 부인 서해순 씨의 변호인인 박훈 변호사가 14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서 딸 살해 혐의 의혹을 제기한 김광석 친형과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에 대해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 고소장 제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

결국 재수사 절차를 밟은 끝에 서모 씨에 대한 의혹은 근거 없다고 결론 났다. 흉악범이 아닌 사람에게 흉악범 혐의를 덧씌워 놓았다가 다시 살펴봐도 흉악범이 아니더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된 것이다. 흉악범이 아닌 사람이 흉악범이 아니라는 결론만 본다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제자리돌기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서모 씨는 할퀴고 찢긴 채 만신창이가 되었다.

서모 씨가 사실이 그렇지 않다거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대응을 하면 반성할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버틴다는 식의 또 다른 비난이 쏟아졌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군중의 돌팔매가 융단폭격처럼, 쓰나미처럼 쏟아진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틴 걸 보면 그의 강단도 보통 내공은 넘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이상호의 영화는 8월 30일에 개봉하여 11월 17일 현재 9만8072명의 관객을 모아 7억7164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영화진흥위원회통합전산망) 근거 없는 음해가 특정인을 여론 재판으로 짓밟고 있는 사이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세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이상호의 의혹 제기가 영화 <김광석> 개봉을 계기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진실 추적을 명분삼은 노이즈마케팅이 아니었는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김광석 부녀의 사망 의혹 논란은 근거 없는 여론조작과 무차별 가세한 수많은 매체들, 덩달아 깨춤을 춘 네티즌들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지기도 전에 광란의 굿판을 만드는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그림자처럼 남겼다. 사이버 공간을 오가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넘치는 ‘열광적 정의’가 지금도 누군가를 향한 흉기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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