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의 일과 봉사
‘영원한 현역’의 일과 봉사
  • 인터뷰 이근미 소설가 / 사진 이승재 미래한국 객원기
  • 승인 2017.11.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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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상달 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회장·칠성산업 대표 [인터뷰]

기아대책, YFC, 중동선교회, 가정문화원 이사장 등 헌신과 나눔의 삶

 

100세 시대인 만큼 은퇴 이후 삶까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빠르면 40대 후반, 늦어도 60대 초반이면 엄청난 시간이 몰려오니 제2의 삶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은퇴 시기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면서 봉사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다면? 모두가 바라는 삶이 아닐 수 없다. 칠성산업 대표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CBMC(한국기독실업인회) 중앙회장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두상달 회장을 서울 잠실에서 만났다.

요즘 가장 관심 있게 펼치는 사업에 대해 질문하자 현장에 가보자며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신양수대교를 건넜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문호리 879-5번지의 ‘노빌레스빌’ 푯말이 보였다. 마을을 통과하지 않는 독립된 진입로를 약간 올라가자 드넓은 단지가 펼쳐졌다. 단지 내 가장 위쪽으로 올라가서 탁 트인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이 땅과 만나게 된 배경부터 들었다.

“오래 전 동호회원들과 양평에 놀러왔다가 모두들 여기에 반했지. 뒤로 산이 든든히 자리하고, 양 옆으로 언덕이 감싼 데다, 아래는 강이 흐르는 이 곳을 보자 이구동성으로 ‘은퇴하고 여기 와서 살자’고 했어요.”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룬 택지 아래 2차선 도로가 보이고, 잔잔한 북한강 너머 경춘고속도로 변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30분 거리 노블레스빌, 톱스타들도 입주

“그때 땅을 사놨다가 고급주택전용단지로 개발을 하여 지금 10여 채가 들어섰어요. 앞으로 40여 채가 더 들어서야 합니다. 택지만 분양받아 직접 지으면 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바빴는데 앞으로 분양 사업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톱스타 K씨가 나와 깜짝 놀랐다. 두상달 회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K씨는 “서울에서 촬영할 때를 제외할 때는 거의 여기 와서 지내요. 낙엽이 많이 떨어졌는데 단지 내 주민 분들이 와서 다 쓸어주셨어요.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하고 몸도 건강해져요”라며 웃었다.

K씨보다 더 유명스타인 아들의 작업실 겸 갤러리로 건축한 집이어서 규모가 아주 컸다. 서종면 문호리는 톱스타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유명하다. 노블레스빌에도 2명의 톱스타가 개성있는 집을 지었고 사업가들과 전문직, 은퇴한 외국인이 자리잡았다.

두상달 회장과 노빌레스빌 단지를 산책하며 이미 들어선 집들도 구경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했다. 서울 잠실에서 단 30분을 달려왔을 뿐인데 완전한 전원 풍경이 펼쳐지고, 아파트숲이 아닌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문호리에서도 노블레스빌의 위치는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뒤에는 산이 있고, 양 옆에도 언덕이 감싸고 있고, 앞에는 강이 보이는 것도 좋지만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자동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잖아요.”
실제로 단지 내 산책을 하는 동안 소음이 전혀 없었다.

“이 곳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분들도 있고, 주말을 지내는 세컨하우스로 삼는 분들도 있어요. 텃밭을 가꿀 수 있어서 은퇴 후에 편안하게 지내는 분들도 있고. 우리 부부도 틈만 나면 여기 오고 자녀들도 자주 와요. 단지 내에 산책로와 삼림욕 코스가 있어 걷기만 해도 운동도 되고 건강해집니다.”

무엇보다도 단지가 언덕에 위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의 장수마을은 다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요. 전망과 운치가 뛰어났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죠. 좋은 경치를 바라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여기는 사계절이 다 아름다워요. 봄여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예쁘게 물듭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죠. 밤중에 건너편 건물의 불빛이 강물에 드리워진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이 지역은 영원한 청정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인근에 공장이 하나도 없으니 공기가 맑을 수밖에 없죠. 단지 바로 아래 도로변은 카페나 모텔이 전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입니다.”

대신 자동차로 5분 이내 거리에 대형 슈퍼마켓과 병원, 초중고등학교가 있어 생활하는 데 불편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인근에 멋진 카페와 맛집이 즐비한 데다 세미원식물원, 두물머리, 도장계곡, 중미산 천문대 같은 관광지와 비전힐스를 비롯한 여러 골프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 양평‘노블레스빌’에서 내려다본 북한강 전경.

CBMC, 연무대교회에 17억 헌금

두상달 회장은 1974년에 창업한 칠성산업을 통해 무역업과 다양한 사업을 동시에 하면서 끊임없이 봉사활동을 해왔다. 기아대책, 한국십대선교회(YFC), 중동선교회의 이사장을 맡은 이후 현재 이들 단체의 이사를 맡고 있다. 요즘 CBMC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지난 8월 14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관 강당에서 ‘제44차 CBMC 한국대회’를 개최했다.

“군대를 황금어장이라고 하잖아요. 해마다 수천 명의 훈련병이 세례를 받아요. 지금 논산훈련소 내의 연무대교회를 건축하고 있는데 건축비가 많이 들어요. 그래서 2박3일 일정으로 행사를 진행하면서 우리 회원들이 연무대교회를 위해 17억 원을 헌금했어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만큼 어릴 때부터 모범이 되고 두각을 나타냈을 거 같은데 정반대였다고 한다.

“형님 세 분은 다 공부를 잘했어요. 그런 데도 기죽지 않은 건 어머니께서 ‘놔둬라. 공부 못하는 놈도 하나 있어야지’라며 너그럽게 봐주신 덕분이죠. 초등학교 졸업할 때 선생님이 종합평가에 ‘불량’이라고 썼을 정도로 공부를 못했어요.”

그랬던 그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형님이 입학 전에 알파벳을 가르쳐줬어요. 예전에는 미리 배우고 오는 애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내가 A,B,C,D를 아니까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셨죠. 처음 칭찬이라는 걸 받았고, 계속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23등에서 3등, 1등으로 올라갔죠.”
고등학교 때 1등을 도맡아 한 실력으로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해양대학교에 무시험 합격했다. 그런데 신체검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형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죠. 1년 넘게 집에서 그러고 있으니 어머니가 ‘여기서 있으면 안 된다. 형님한테 쌀 한 가마 값 달라고 해서 서울로 가라’고 하셨어요. 형님이 쌀 한가마니 값을 주셔서 서울로 오게 된 겁니다.”

스물한 살 여름 서울에 와서 처음 한 일이 공사장 막일이었다. 이틀 일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 청계천에다 좌판을 깔았다. 껌, 담배 같은 걸 팔았으나 수입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원단을 갖고 다니면서 와이셔츠 주문을 받는 외판일이었다. 이틀 만에 시장을 완전히 파악하여 직접 사업을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원단을 사와서 주문을 받은 다음 굴레방다리에 있는 미싱사들에게 맡겨 와이셔츠를 완성했다.

“그때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나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일하면서 몇 달간 준비해서 고려대학교에 들어갔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니면서 과외를 하여 상당한 수입을 올렸다. 워낙 학생들을 잘 가르치자 학교 선생들이 찾아와서 자기 반 학생을 맡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남아 어머니에게 송금까지 했다. 대학원 졸업 후 취직을 하려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 마음이 흔들렸다.

“한 달에 과외로 10만원을 벌었는데 당시 초봉이 8000원이었어요. 하지만 사회 경험을 쌓고 일을 배우기 위해서는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여 과감히 과외를 그만뒀죠.”

일신제강그룹에 입사하여 8년여 근무한 뒤 무역업에 뛰어 들었다. 늘 사업으로 바쁜 가운데 봉사활동을 겸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 아내 김영숙 가정문화원장은 30년 넘게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재소자 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가정법원 조정위원 활동도 하고 있다.

우선순위 정해 일과 봉사 병행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대학교 2학년 때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 들어간 겁니다. CCC가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단체인 만큼 대학교 때부터 공부와 봉사를 동시에 진행했고, 그게 훈련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일과 봉사를 병행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아내 김영숙 원장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가정문화원도 봉사활동의 한 축이다. 1990년에 개설한 가정문화원을 통해 결혼예비학교, 신혼부부캠프, 부부행복학교, 부부대화학교, 시니어부부학교, 중년학교, 노년학교,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부부가 함께 강연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 문화를 퍼트리고 있다.

“일과 봉사를 동시에 하려면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그때그때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게 요령이죠. 요즘은 CBMC에 시간을 많이 투자합니다. 여러 일들은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대부분 맡겨진 겁니다. 그대신 맡으면 구레네 시몬처럼 해내려고 노력하죠.”

두상달 회장은 여기저기서 자신을 부르는 건 키가 커서 그런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내 키가 183㎝인데 세월이 좋아져서 롱다리라고 하지 예전에는 비정상 취급 받았어요. 그래도 무역할 때 미국 바이어한테 꿀리지 않아서 좋았지. 바쁜 중에도 봉사할 수 있으니 고맙죠. 지금도 계속 제안이 와요. 같이 일하자는 분들이 있다는 건 축복이죠.”

사업과 봉사를 겸하면서 문화 활동까지 펼치는 그에게 요즘 “은퇴 이후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많다고 한다.

“은퇴 이후 등산과 골프로만 소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시작하기 힘든 거죠. 내가 가진 경험과 경륜으로 사회에 유익을 끼쳐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후반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이후에 하고 싶었던 일, 재능을 살리는 일을 하려면 현역에 있을 때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만 잘 되면 은퇴는 빠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노블레스빌 산책로를 거닐며 대화하다가 단지 중앙에 위치한 두상달 회장 집으로 들어갔다. 노빌레스빌은 전체가 남향이며 어디서나 산과 강이 보인다. 단지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데다 각각의 집이 인근 집의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택지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면의 통유리를 통해 북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여기서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여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강과 기회를 주신 주님께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옆에 앉은 김영숙 원장은 “이 집의 흠은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는 거예요. 그저 풍경만 보고 있어도 좋으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일 좀 하고 가야지 하고 와서는 그냥 주변 풍경에 취해 있다가 일 보따리를 도로 싸서 간다니까요”라고 했다. 김영숙 원장은 가정문화원을 운영하면서 30년 넘게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재소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가정법원 조정위원 활동도 하고 있다.

김영숙 원장이 “내 남편의 흠은 여전히 자신이 청년인 줄 착각해서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하자 두상달 회장이 “나 청년 같지 않아?”라며 쾌활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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