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출국을 서두르고 있던 김정남이 동남아 여성 2명의 갑작스런 독극물 테러로 공항에서 피살됐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혐의자들을 체포해 조사한 결과 김정남을 습격한 범인들은 북한 공작원의 사주를 받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젊은 여성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당시 46세였던 김정남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 김정일의 자리를 물려받을 강력한 후계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0년 후계자 자리가 이복동생 김정은에게로 넘어가면서 북한정권의 항시적인 암살위협에 시달려 왔다.
김정남은 중국과 마카오, 싱가포르 등 동남아 일대를 전전하며 고달픈 피신생활을 이어갔고 2011년 부친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에도 북한으로부터의 신변위협 때문에 평양으로 조문 갈 수 없었다.
정보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김정남은 동생 김정은에게 서신을 보내 살려달라고 구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추호의 자비도 없었다. 북한 전문가들은 형이 살려달라고 빌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그것도 백주대낮에 독극물로 자신의 형을 무참히 살해하는 김정은의 광적인 편집증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정보당국은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이 일정시간 내에 반드시 수행해야 할 긴급지시, 즉 ‘스탠딩 오더’였다고 밝혔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 내부에서는 권력계층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 숙청의 피바람이 불었다.
2013년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공개석상에서 온갖 터무니없는 죄목을 씌워 숙청시켰고 고사기관총과 화염방사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김정은은 연이어 김용진 내각부총리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을 처형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최룡해와 함께 북한 권력서열의 2~3위를 다투던 황병서 총정치국장 처형 소식이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해외언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남한과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정권의 시대착오적이며 무모한 군사적 도발과 테러행위들은 북한 스스로를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1년 전 김정남에 대한 독극물 테러로 국제사회는 다시 한 번 김정은 정권의 야만성에 경악했다.
특히 김정남은 동생 김정은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긴 후 줄 곧 중국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정권이 자신들의 유일한 우방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각오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것은 그만큼 김정남 제거가 김정은 정권유지를 위해 절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김정일의 후계자였을 당시 김정남은 중국의 혁명원로 3세 황태자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말끝마다 ‘자신이 북한의 수령이 되면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남의 중국식 개혁개방 구상은 단순히 친중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허세’가 아니었다. 그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확정된 후 북한의 방방곡곡을 열심히 다니면서 북한주민의 가난과 사회적 모순, 비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굳혀왔다고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친중성향의 김정남은 당연히 반가운 인물이었겠지만 80~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노선에 역행하며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고립정책을 폈던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자식’이었던 것이다. 결국 김정남은 부친 김정일의 눈 밖에 났고 북한을 떠나 해외를 떠돌면서 도박과 유흥으로 풍운아의 외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정남이 지나친 친중성향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김정남을 대체할 후계자가 마땅치 않았던 김정일은 북한의 모든 국정을 홀로 처리하면서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4일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있는 김정일의 모습은 7년 전인 2000년 6월 15일 1차 남북정상회담 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있을 때의 활발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창백한 얼굴에 병색이 짙어 보였다.
당시 한국 정보당국은 ‘김정일이 심장질환과 당뇨병이 있으며, 2차 정상회담 5개월 전 심장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바 있다. 한편 외신들은 김정일의 건강상태로 볼 때 치매를 앓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2차 정상회담이 있은 지 4년 후 김정일은 후계자에 대한 어떠한 유언도 남기지 않고 열차 안에서 급사하게 된다.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는 차기 북한 집권자에 대한 이름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고 갑자기 듣도 보지도 못한 ‘김정운’ 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등장했다.
그 후 ‘운’ 자의 뜻이 불결해 ‘은’으로 이름을 고쳤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정말로 ‘김정운’에서 ‘김정은’으로 이름을 수정했는지 아니면 원래 ‘김정은’이었는데 정보의 오류로 ‘김정운’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갑자기 성대도 여물지 않은 1984년생(82년생으로 수정 됨) 30초반의 애송이가 ‘조선의 김대장’으로 등장하자 전 세계가 코웃음 쳤다.
2010년 김정남은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동생 김정은의 3대 권력세습에 대한 질문에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어쩌면 이 발언이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려 김정남 암살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김정남 본인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김정은의 직접적인 라이벌이 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3년 12월 자신을 뒤에서 보살펴주고 있던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김정남은 결국 장성택의 다음 타깃이 되어 동생 김정은에게 제발 살려달라는 편지까지 써 보낸다.
한편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질주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된 중국이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과 오랫동안 비밀회담을 진행해 온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 북한 정권 교체설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이제 김정은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모든 백두혈통을 재거해야만 했고 그 백두혈통 중 이복형 김정남이 제1 타깃이 돼 버린 것이다. 이는 김정은에게 ‘체제유지’라는 표현 보다는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초미의 과제였을 것이다. 비운의 왕자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동생의 칼에 죽어야만 하는 불행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이다.
김정남 독살을 보는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계속되는 숙청은 내부적으로 권력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소극적이던 중국도 북한의 폭주를 묵인·방조할 명분이 없어졌다”, “김정남 살해는 북한 정권의 제 무덤 파기나 다름없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거듭되는 김정은의 무리수는 김정은 자신의 파멸을 앞당기는 어리섞은 짓’이라는 뜻이 되겠다. 어쩌면 ‘북한정권 조기붕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인식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탈북자들의 견해는 조금은 다르다.
북한 고위층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우선 김정은을 북한의 진정한 실권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김정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김여정 같은 기타 혈통을 내세워 정권을 유지할 것, 그리고 그 뒤에는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라는 악마의 권력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해 본다면 김정남 암살도, 장성택 처형도, 고위간부들의 연이은 숙청 처형도 김정은의 단독 결정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이라는 애송이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치밀한 작품이라는 뜻이 되겠다.
어쩌면 김정남의 암살자로, 장성택을 처형한 천하의 폐륜아로 낙인찍인 김정은 자신 역시 앞에 있는 미국의 핵항모나 스텔스 전폭기들보다 등 뒤에서 때를 밀어주는 노동당의 내시들이 더 무서울 법도 하다.
그리고 밤마다 형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고모부의 처절한 비명소리, 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저지른 모든 악행들에 대한 저주를 자장가 대신 들으며 잠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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