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꼰대’의 탄생
‘586 꼰대’의 탄생
  • 공희준 델리크라시(www.delicracy.com) 수석 에디터
  • 승인 2018.03.19 13: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단]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구매한 다음에 한동안 책꽂이에서 묵혀뒀던 <고건 회고록>을 비로소 꺼내들면서 내가 페이스북에 요란하게 적어놓은 독전감(讀前感)의 일부분이다.

비록 내 또래 아저씨들이 한창 명예퇴직의 유·불리를 저울질할 시기인 나이 50에 늦깎이 신입사원으로 운 좋게 회사에 들어갔을지언정 인간의 운명은 원래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을 띠므로 공인의 길, 즉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등의 짭짤한 별정직 공무원 자리로 진출할 기회가 나에게도 만에 하나 찾아올 경우에 대비해 스스로를 쉬지 않고 갈고 닦자는 다짐의 차원이었다.

그런데 이 싱거운 속담을 나름 진지하고 전투적으로 되뇌고 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말 사람 팔자 알 수 없는 일이 턱하니 생기고 말았다.

유력 대선주자들 가운데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걸로 평가되어온 인물인 안희정 충청남도 민선 지사가 여성 정무비서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몹쓸 짓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정치생명 자체가 통째로 끊어지다시피 한 것이다.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보통 ‘여성주의’로 번역되곤 하는 페미니즘(Feminism)에 그리 우호적이거나 친화적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종전처럼 꿋꿋하게 마초(Macho)로 살 것만 같다.

따라서 이제는 하루아침에 전직 지사로 영락해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안희정 씨를 정색하고 당당하게 비판할 처지는 솔직히 못 된다. 허나 안 전 지사가 속하는 86세대를 나무랄 입장은 꽤 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잘 아는 덕분에 있다.

나도 이미 꼰대이자 기성세대라는 기분 나쁜 사실을 말이다. “괘념치 말거라.” 안희정 전 지사가 그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JTBC 뉴스에서 폭로한 여비서와 텔레그램 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해 나눴다는 대화들 중에서 나는 유독 저 표현이 인상적으로 읽혔다.

잡코리아의 꼰대 테스트 포스터 표지 / 블로그 m.post.naver.com
잡코리아의 꼰대 테스트 포스터 표지 / 블로그 m.post.naver.com

“고개를 들라.” 사극을 시청하다 보면 먹잇감(?)을 찾아 대궐 이곳저곳을 샅샅이 탐색하고 다니는 조선왕조의 바람둥이 군왕들이 제 맘에 흡족히 드는 궁녀를 만났을 적에 거의 상투어로 나오는 요구다. 주상이 지엄한 목소리로 고개를 쳐들라고 분부하는데 이 명령을 감히 당돌하게 거부할 간 큰 궁인은 없다.

운 때만 잘 맞는다면 왕과 하룻밤 잠자리를 함께 한 대가로 신분이 내명부의 비빈으로 일거에 도약하는 조선판 신데렐라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장희빈이 그랬더랬다. 왕과 궁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남녀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주종관계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청년세대를 향한 옛 386세대(지금은 586세대라고도 한다. 이하 86세대)의 집요한 훈계와 지루한 완장질이 지속적으로 먹히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가 있다. 안 전 지사와 그의 정무비서의 관계가 남녀관계가 아닌 권력관계였듯이, 86세대와 청년세대의 관계 역시 관계의 근본 성격을 따지자면 적나라한 권력관계이다.

86세대의 논리가 21세기 한국 사회의 성격을 너무나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86세대의 회고담 또는 후일담이 현재의 청년세대에게 피와 살이 되는 귀중한 교훈으로 다가오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청년들이 소위 멘토를 자임하는 50대 아저씨들의 이른바 힐링을 빙자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썰렁한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박수를 쳐대는 것이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을 86세대의 구성원들은 더 늦기 전에 인정하고 직시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청년세대 분발 없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아

꼰대는 권력을 권위로 착각하는 순간 태어난다. “힘이 있고 없고”를, “계몽이 되고 안 되고”로 오해함을 계기로 만들어진다. 실상 오늘날의 86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일찍 권력을 맛보고 장악한 세대였다.

그들은 30대 초중반에 이미 언론권력과 학술권력과 문화예술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했고, 청와대와 국회가 쌍끌이하는 정치권력의 실질적 관리자로 부상했으며,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법을 습득한 첫 번째 세대라는 시대적 환경에 힘입어 경제권력의 실권을 손에 넣는 데도 마침내 성공했다.

86세대는 자신들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위로는 기성세대가, 아래로는 청년세대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목격하고서는 자기들이 권위가 있고, 계몽이 잘된 덕택으로 생각했다. 실상은 다른 세대들이 86세대의 막강한 힘과 인적 네트워크 앞에 억지로 굴복했거나 혹은 굴복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지금의 50대들이 30대에 진입했을 무렵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각종 후일담 소설들은 그들이 틀어쥔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권력이 선물해준 자신감과 승리감의 발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쯤에서 서술을 그친다면 나는 고건 전 국무총리에 버금가는 처세의 달인으로 칭송이 자자했을 법한다.

한데 어떡하나? 나는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고건이 아닌 터라 86세대의 갑질이, 꼰대질이, 임금질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책임을 가해자인 86세대에게만 물어서는 답이 전혀 나오지 않음을 역설하고픈 충동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걸. 나는 꼰대다. 하나마나한 말을 태연히 내뱉을 수 있는 것이 꼰대들이 누리는 특혜이다.

그래서 젊은 청년들에게 대놓고 “가르치노니” 86세대들의 기득권이 끄떡없이 요지부동으로 건재한 작금의 정체되고 암울한, 미래 없는 사회상황과 관련해 86세대들의 반성과 변화를 허구한 날 촉구해봐야 아무런 소용과 결과물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스로 알아서 순순히 물러나주는 권력은, 기득권은, 특권과 패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장강의 앞물이 왜 밀려나겠는가? 뒷물이 밀어내니 밀려나는 거다. 겨울이 왜 끝나겠는가? 봄이 오니 끝나는 거다. 어두운 밤이 왜 밝아지겠는가? 새아침의 해가 뜨니 밝아지는 거다.

청년들이 장강의 힘찬 뒷물이 되겠다는, 약동하는 새봄이 되겠다는, 어둠을 내쫓는 신새벽의 붉은 태양이 되겠다는 각오와 결의와 투쟁심을 독하게 품지 않으면 청년세대는 나이 80이 되어도 그때는 100살 전후에 다다를 현재의 86세대의 호구의, 몸종의, 식민지의 굴레를 결단코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다. 세대교체는 언제나 셀프다. 

공희준 델리크라시(www.delicracy.com) 수석 에디터
공희준 델리크라시(www.delicracy.com) 수석 에디터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