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영의 심리칼럼 - 폭식증 미연씨의 비밀스런 고백 ‘우울해서 먹는거에요’
송지영의 심리칼럼 - 폭식증 미연씨의 비밀스런 고백 ‘우울해서 먹는거에요’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0.03.24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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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회사원인 미연씨는 인생에 재미가 없다. 인생에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이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다닐 뿐이다. 재미난 취미 생활을 할 만큼 생활이 여유롭지도 않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지만 피상적일뿐 내 진짜 고민을 마음 놓고 터놓을 만한 친구는 없다.

오늘 회사에서 불같은 성격의 강팀장은 미연씨의 미흡한 일처리 부분에 화를 내며 몰아세웠다. “미연씨, 회사에 놀러 다녀? 그 고객사건 처리 하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못했어? 오늘까지 다 마무리하라고!” 미연씨는 속으로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회사에 놀러다니냐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매번 말을 저런 식으로 하는 강부장만 보면 분노가 치솟지만 대항할 자신이 없다. 속으로 화를 삭히며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자리에 돌아오니 괜스레 눈물이 난다. 일을 마친 그녀는, 동네 빵집에 들러 생크림과 기름진 빵을 잔뜩 샀다. 그리고 맞은편 보이는 분식포차에서 매콤해 보이는 떡복이와 순대, 튀김을 포장했다.

프럼미 에듀 대표 송지영
프럼미 에듀 대표 송지영

그리고 다시 마트에 들려 먹고 싶은 과자와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잔뜩 사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TV를 틀고 먹기 시작한다. 그녀의 유일한 낙이며,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다. 2시간에 걸쳐 사온 음식을 다 먹은 그녀는 터질 듯한 배를 붙잡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토하기 시작한다. 그런 자신이 너무 싫고 한심스런 그녀는 우울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에 컨디션은 제로다. 강부장을 볼 생각을 하니 죽을 만큼 회사에 가기 싫다.

미연씨는 현재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을 앓고 있다. 신경성 폭식증은 미국정신의학협회(APA)에서 발행한 DSM-5에서 분류한 섭식장애의 하나로 음식 섭취에 대해 통제력을 잃어 단시간 내에(약 2시간 이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는다. 그리고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음식물을 토해내거나 설사약, 이뇨제를 남용하며, 과도한 운동을 하기도 한다.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최근 들어 섭식장애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훨씬 많다. 거식증의 경우 90%이상이 여성이다. 이들은 주로 약 12-23세 사이에 발병하며, 치료시 50%가 회복을 보이지만 나머지는 재발과 장기적인 장애로 넘어간다. 폭식증 환자의 경우 거식증 환자처럼 말랐다거나 음식을 아예 거부하는 것이 아닌, 정상 체중의 범위에 있고 다른 이들과 식사할 때는 일정량을 먹기 때문에 주변에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폭식증의 경우 자신의 행위를 수치스러워 하기 때문에 드러내놓지 못하여 대부분 혼자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 10년 이상 장기 진행된 경우도 많이 있다. 폭식증 환자들의 특징은 한번 발동이 걸려 먹기 시작하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혼자 비밀리에 높은 칼로리의 음식을 먹고 살찔 것 같은 두려움에 인위적으로 구토를 한다. 그리고 곧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 수치심, 좌절감들을 경험한다.

한 토크쇼에서 아이유가 과거 자신의 폭식증을 고백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주변에 상당히 많은 20-30대 여성들이 폭식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섭식장애가 정신 질환의 하나인 줄도 모르고, 그냥 개인의 의지박약 문제로만 생각하기에 만성적 질병으로 가는 케이스가 다수이다.

그러면, 왜? 한참 행복해야 할 30대 초반의 미연씨는 폭식증에 걸리게 된 걸까? 폭식증 환자는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다. 배가 안고파도 먹고, 배가 불러도 먹는다. 이들이 먹는 이유는 정서적으로 허기가 졌기 때문이다. 뭔가 우울하고, 외로울 때, 억울하고 불안할 때 부정적 정서를 적절하게 다루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손쉽게 이런 감정들을 회피하기 위해 음식물을 사용한다. 음식은 식욕을 만족시키며 현재 나를 짓누르는 부정적 정서로부터 나를 끌어내준다.

미연씨의 경우 어렸을 적 이혼하신 부모님 사이에서 제대로 애착형성이 되지 않았고 방치된 양육환경에서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미연씨는 겉으로는 밝은 척 웃으며, 예쁘게 치장을 했지만 내면은 자존감이 낮았으며, 만성적 우울감이 있었다. 그러다 어떤 촉발적인 사건(예:강부장의 비난)이 터지면 심리적 에너지가 바닥이 나고, 부정적 정서로 압도당할 것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먹을 때뿐이며 곧 밀려드는 자기혐오와 수치심, 좌절감에 다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미연씨는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증세가 심할 경우 정신과에서 약물적 치료(항우울제)를 처방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폭식증의 최종 목표는 자존감의 회복이며 이는 스스로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자아상을 바로 잡아 가는 것이다. 폭식증 환자의 경우 먹는 것과 부정적 감정은 같이 간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 일기와 식사 일기를 작성해 보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 들 때, 자신이 폭식을 하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핵심 감정들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자주 반복적으로 느끼는 부정적 정서가 어떠한 것인지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감정이 느껴질 때 음식물로 손쉽게 대체해 버리려는 습관에서 다른 건강한 대체제로의 전환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보통 이들은 비용적인 부분 때문에, 상담을 안 받거나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의 음식비용을 1/3만 줄여도 할 수 있는 여가 생활들이 많다. 미리 적극적으로 준비해 놓지 않으면 이 질환을 제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단기간에 고치겠다는 생각도 내려놓아야 한다.

보통 4-6년 된 경우들이 많은데 적극적으로 진료를 받지 않는 이상 단번에 고치기는 어렵다. 매일하던 구토를 일주일에 3-4번만 해도 그런 자신을 칭찬하고 지지해야 한다. 긍정의 정서 에너지가 비축되어 있어야, 부정적 정서를 다룰 힘이 생긴다. 폭식증은 완치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적극적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용기를 내서 자신의 내면 탐색과 부정적 감정을 다룰 수 있는 합리적인 생각과 대체 행동을 마련해 보자. 행동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길은 열려있다.

송지영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커뮤니케이션 석사
현) 프럼미 에듀 대표
현) 한국교류분석상담 연구위원
현) 한국도형심리상담학회 이사
현) 한국시니어플래너지도사협회 이사

저서 : 도형으로 보는 성격 이야기 (공저,2019,도서출판지선), 나를 찾는 여행! 액티브 시니어! (공저,2017,밥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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