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조건] 공영방송의 2차 민주화 필요하다 
[변화의 조건] 공영방송의 2차 민주화 필요하다 
  • 황근  선문대 교수
  • 승인 2021.07.0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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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 임명 특별다수제는 ‘양두구육’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방송법 개정(안)들 대부분이 특별다수제를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다수제에 여·야의 속내는 동상이몽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야당은 공·수가 바뀌면서 180° 태도가 돌변해 2/3 특별다수제를 찬성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물론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특별다수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야당은 이사 숫자를 늘려 특별다수 즉, 여당 추천 이사 숫자가 2/3가 못 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허은아 의원 안). 심지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추천에서 여·야 비율을 7:6으로 하자는 (안)도 있다. 

반면 여당 의원(안) 들은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대신 이사 구성을 ‘1/2 이상 내부구성원, 시민단체 추천(정청래 의원 안)’ ‘방송통신위원회 이사추천위원회 구성(정필모 의원 안)’ 같은 사실상 이사 구성에 있어 여당에 절대 유리한 장치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마도 여당 입장에서는 야당 시절 제안했던 특별다수제를 정권을 잡았 다고 없던 일로 할 수 없으니 이사회 구성이나 사장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는 것 같다. 

결국 여·야 모두 공영방송 사장 임명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정파적 이익만 고려된 것이지 국민 입장에서는 어떤 실익도 없다. 지금 국회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특별다수제는 각 정파가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한 것이다. 특별 다수제 같은 예외적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환상이다.

이는 집권 여당이 내정했거나 정권 친화적 인사가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 집권 여당이 야당 시절 강하게 요구해 왔던 것이다. 

‘사회 대표성’이라는 환상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 KBS 이사회와 MBC 방송문화진흥회는 법적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혹은 암묵적으로) 여·야 추천(실질적으로는 비공식적 추천) 인사들을 안배해 구성한 것이다. 여·야 안배 형태의 이사회는 정치 지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공영 방송을 정쟁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몇 차례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점점 더 극심한 정치 대리전 공간으로 변질되어 왔다. 더구나 여·야간 분배 비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방송장악 혹은 방송통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야간 이사 구성에서의 불균형(KBS 7:4, MBC 6:3)으로 인해 과반수 참여와 동의로 결정되는 사장 추천 같은 중요한 결정 사안에 있어 정부 여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러다 보니 여·야 구성비를 변경시킬 수 없다면 야당 입장에서는 특별다수제 같은 제도를 통해 견제 혹은 통제력을 강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렇지만 집권 여당의 반대로 입법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 

공영방송 사장 임명 특별다수제는 일본 NHK 사장 선출 방식에서 차용해 온 것이다. 

제도 자체로만 보면 여·야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인사를 사장으로 선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특별다수제는 장점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에 반하는 것으로 공영방송 사장 선출이 헌법 개정이나 위헌 판단, 대통령 탄핵만큼 중대한 사안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2/3 이상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사장 선출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고 여·야간 갈등이 심할 경우 선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NHK의 특별다수제가 크게 논란되지 않는 이유는 NHK 이사 전원을 총무성에서 추천하고 총리가 임명하기 때문에 이사회 내의 정파간 갈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피·아 구분이 명확한 한국의 정치문화를 감안하면 ‘특별 다수제’를 통해 사장으로 선출될 수 있는 인물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할 수 있거나 아니면 무색무취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해 선출할 수 있는 인사를 발굴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여·야 갈등으로 사장을 선출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합의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특별다수제가 공영방송 이사회를 더 정치 지형화시키는 셈이다.

또 합의를 통해 선출된 인물은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아니라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을 무색무취한 인사일 가능성도 높다. 결국 특별다수제는 당초 취지와 달리 공영방송 내 정쟁을 도리어 심화시키고 경영 공백의 폐해만 야기할 수 있다.

결국 특별다수제는 취지와 달리 공영방송을 더 정치화시키고 경영 공백만 커질 가능성이 높고, 전문성이 부족한 인물이 추천될 경우 조직 논리와 종사자 이익에 매몰될 수도 있다. 

오래 전부터 각종 시민단체나 학계에서는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구성에서 사회 대표성 혹은 지역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실제로 독일의 공영방송 이사회(‘주 미디어청’ 혹은 ‘방송위원회’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다양한 조직이나 단체들을 법으로 지정해 추천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영국의 ‘BBC트러스트’ 모델을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BBC트러스트는 집권당이 임명하는 12명의 위원으로 임명되는데 사회 각계 대표, 지역대표 등을 고려하는 다양성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다원주의(pluralism) 정치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영역별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를 추천하거나 단체나 조직을 지정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BBC트러스트 구성의 다양성은 관행과 공존의 정치문화가 성숙된 영국에서 가능한 제도로서 우리처럼 후진적 정치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도리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정치적 성향이나 전문영역을 담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권교체가 자주 일어나는 의원내각제 특성상 특정 정파가 모든 자리를 독식하기 힘든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위원들의 임기를 보장해주고 후임자 선출 시 전문 영역이나 정치적 성향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BBC트러스트 모델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영국과 우리나라의 정치문화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주장이다. 집권 여당이 정부 혹은 정부 산하 기관들의 모든 자리를 독식할 수 있는 제왕적 정치 구도에서 다양한 영역의 인사들을 추천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정권 친화적인 인물들로 모두 채워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사회 대표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각 정파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하는 각계 인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외형만 사회 대표성이지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파적으로 양분되는 것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영방송 이사회는 집권 여당의 정치적 전리품으로 일종의 명사 집단으로 전락하거나 혹은 철저한 방송통제의 대리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현실적으로 국민 대표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국회 혹은 정당밖에 없다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영역별로 다양한 인사들을 추천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정당 추천 형식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다. 이 또한 정치권이 주도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방송법 개정(안)들 중에 정필모 의원(안)은 이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사회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100명의 ‘이사추천 국민위원회’를 3년 임기의 상설기구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우선 KBS와 MBC 같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기능만 하는 상설기구로 100명이라는 숫자와 3년의 임기는 그 역할에 비해 매우 과도한 측면이 있다. 정책목표나 대상에 비해 정책수단이 지나치게 큰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출된 100명의 위원 역시 방송통신위원회의 여·야 안배구조가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사후보 추천 국민위원회 또한 표면적으로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정치적 영향력이 배제될 수 없다.

반면 야당의 박성중 의원(안)이나 허은아 의원(안)처럼 국회 교섭단체가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법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방송통신위원회가 여·야간 내면 합의된 비율에 따라 각 정당이 내천(內遷)한 인사들을 이사로 추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당이 직접 추천한다고 해도 현행 방식과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정파간 추천 숫자가 법에 명시되지 않다는 점을 집권 여당이 악용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정당이 직접 추천하는 것은 시대 추세에 맞지도 않고 정치 예속화를 법으로 명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상파 최초 여성 메인앵커로 2019년 11월 25일부터 KBS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이소정 씨.
지상파 최초 여성 메인앵커로 2019년 11월 25일부터 KBS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이소정 씨.

공영방송의 2차 민주화를 위해

방송의 정치 예속화는 공영방송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정치(politics)와 정책(policy)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떻게 보면 정치고 어떻게 보면 정책이 될 수 있다. 정치와 정책의 혼돈 현상을 샤론 스트로버(Sharon Strover) 교수는 ‘미디어 정책을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디어 정책이 정치 논리에 의해 방향을 잃고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미디어 정책은 역설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정치 논리가 다른 모든 요인들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디어 정책은 곧 미디어 정치’인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접근과 정책적 접근의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책이 공익적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한 국가적 행위라면 정치는 권력을 획득·분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을 정치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공익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방송은 권력을 획득·유지하는 도구이자 권력을 쟁취한 집단이 전유하는 전리품이 될 수 있다. 

정부에서 내놓은 언론개혁, 미디어정책, 공영방송 거버넌스 같은 것들은 전리품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명분 쌓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 논리가 지배하게 되면 모든 정책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 공영방송 개혁이 나올 수 없다.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정치적 이해나 정치 논리로부터 벗어나는 탈정치화다. 그렇지만 지금의 정치구조와 정치문화를 감안하면 방송을 정치로부터 완전 분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방송 영역에서도 ‘2차 민주화가 필요한 이유다. 

독재권력으로부터 정치적 민주화를 획득하는 과정이 ‘1차 민주화’였다면 ‘2차 민주화’는 국가권력이 전유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 권력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2차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다양한 권력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방송 특히 공영방송도 여기에 해당된다.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있던 영역들이 자율성을 회복하려면 권력을 가진 자가 내놓을 때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또 방송의 탈정치화를 위해 오랜 정치적 풍랑 속에 스스로 정치화 되어 버린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탈정치화도 필요로 한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문화를 선도한다는 프론티어정신, ‘특이체질(idiosyncrasies)’로 무장해야 한다”는 레드베터(Redbetter)의 주장을 되새겨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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