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차별금지법의 역차별
[심층분석] 차별금지법의 역차별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07.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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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이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2007년 정의당에 의해 첫 발의되었으나 14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던 차별금지법은 이제 국회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물론 차별금지법에 10만 명의 청원동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반대 역시 그 숫자에서는 비슷했다.

그만큼 논쟁적 이슈가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국가권익위원회에는 차별과 관련해 골치 아픈 사건들이 접수된다. 지난해 접수된 한 사건을 보자.

모 주식회사 영업부서에서 근무하는 여자 직원인 진정인은 입사 12년차인데 자신과 입사 동기인 직원들 중 남성들은 적어도 대리, 빠른 사람은 과장까지 승진했는데 여성들은 대리로 승진한 사람도 전혀 없다고 하면서 회사가 여성 직원에 대한 차별을 한다고 진정했다.

회사는 업무 특성상 남성들의 실적이 좋아 그럴 수는 있으나 승진 관련 인사규정이나 회사의 인사 방침이 특별히 남성에게 유리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이 경우 남녀 간의 승진 차이는 차별행위인가?

이 진정 건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저촉이 된다. 하지만 어딘지 개운하지 않다. 우리의 법감정과 관습에 충돌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성별과 인종, 장애, 출신국가, 나이, 종교, 출신 지역, 용모, 성적지향, 학력, 혼인 여부, 성별정체성, 병력,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등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EU의 차별금지법으로 내부 갈등 높아지는 독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로는 헌법 제11조 제2문에서 천명하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상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서 법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반면, 이 법에 신중한 입장은 우리 헌법이 기본권에 대해 포괄적 보호를 이미 천명하고 있고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침해받지 않음을 표명하기에 열거주의가 중심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옥상옥이라는 것이다. 

서로 주장이 맞서다 보니 차별금지 찬성 측은 해외 선진국가들의 사례를 든다. 특히 유럽의 예를 많이 들게 된다. 물론, 이 법안의 시작이 된 곳은 유럽이다. 유럽은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나라들이 국경을 맞대고는 있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이리 저리 섞여 살다가 베르사이유조약으로 국민 주권 국가가 등장하자 종교적, 문화적 혼재 지역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졌다. 

그러한 갈등이 터진 것이 1, 2차 세계대전이었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전쟁의 집단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언제든 다시 나라와 나라들이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공포가 EU를 탄생시킨 원인이다. 문제는 여전히 유럽의 각 나라들이 EU라는 공동체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일하며 산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각국의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으로 발생하는 차별을 없애려는 ‘국제화’의 보편 추구로 EU 의회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회원국들의 의무 규범으로 삼았다. 결국 EU 회원국들은 EU 의회의 강제성에 복종해 각국마다 공통규약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독일이 가장 불만이었다. 독일의 경우 우리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기본법 제정 시, 독일 국민의 찬성률은 15%에 지나지 않았다. 메르켈의 기민당은 처음에 이 법에 반대했지만 EU의 경고로 인해 결국 사민당과 타협해 법률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고된다. 가령 신나치주의자에게 방을 임대주기를 거절한 주인이 고소되는가 하면, 나이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직장에서 정년퇴직 통고를 받은 이들의 소송으로 법원은 골머리를 앓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독일의 평등법이 선언한 ‘세계관’에 의한 차별금지가 정치적, 사상적 차별금지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중에 ‘사상으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을 어떻게 훼손하게 될지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념의 문제는 그렇다 쳐도 당장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안은 문제점은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차별금지법 검토의견에서 금지 대상 차별의 종류 가운데 ‘학력’을 제외하자는 수정 의견을 냈다.

교육부는 “학력은 성,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져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률로 규제하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차별이라는 주장이 차별금지법상 타당하다면 우리 사회는 열심히 공부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를 역차별하는 상황을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 

아울러 성평등을 이유로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전통과 관습의 문화로 가져온 이성혼을 역차별하는 것이 된다. 차별이 역차별을 부르는 사회는 정의로울까. 이러한 역차별은 우리가 자유를 위해 구습과 적폐와 싸워온 노력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독일의 경우 우리의 포괄적 파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기본법 제정 시, 독일 국민의 찬성율은 15%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의 경우 우리의 포괄적 파별금지법에 해당하는 평등기본법 제정 시, 독일 국민의 찬성율은 15%에 지나지 않았다.

역차별로 위협 받는 사적자치 원리, 자유는 어디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사적자치 원리와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적자치의 원리는 대한민국 민법의 기본원리로 사법상의 법률관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 책임 하에서 규율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하는 근대사법의 원칙을 뜻한다.

개인의 사적자치의 원칙, 법률행위 자유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 유언의 자유원칙이 이 사적자치의 원리 또는 원칙에 해당된다. 사적자치의 원칙(원리)은 동시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타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개인 책임의 원칙과 연관되어 있다. 사적자치의 원리는 당사자 간의 ‘사회적 관계’를 ‘자율적인 법률적 관계’로 창설할 수 있는 권한을 확인시켜준다. 

이러한 사적자치의 원칙과 함께 법적 작용을 하는 개념으로 보충성의 원리가 있다. 여기에서 보충성 원리란 사적자치의 원리로 그 책임이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 상위의 법체계가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사적자치 원리에 대한 보충성 원리를 구현하려는 것이라 일단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앞에서 소개한 인권위의 진정 접수 사건처럼 구체적 상황에 적용될 때 그 우선성에 대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보편적인 국가이성이나 법철학을 넘어 한 사회에 축적되고 진화된 관습과 문화의 정도가 법률과 동반되어야 한다는 특수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약하다. 그런 약한 공간에서 보충성의 원리가 사적자치 원리를 넘어서는 학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대세다.

이재희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자신의 논문 <사적 자치와 차별금지법>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현대국가에서 평등은 자유와 마찬가지로 중요성을 가지며, 형식적 평등뿐 아니라 실질적·사회적 평등의 보장이 함께 추구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사적 영역은 불가침, 불개입의 소극적 자유의 영역이 아니며,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에 대해서도 적극적 개입이 요청되게 되었다.

사회적 법치국가에서, 법으로 하여금, 사적 영역에 개입하지 않고 어떠한 규율도 하지 않고 소극적 중립을 지키게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사회세력에 의한 개인의 자유 침해·차별대우를 방관하고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재희 헌법연구관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가 과거의 지배적 통치기구에서 복지국가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협동기구로 변화해야 한다는 독일의 ‘사회적 국가(Sozial Staat)’론에 바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언급되는 것이 1928년 스웨덴 사민당 의장직을 맡은 페르 알빈 한손의 ‘국민의 집’ 국가론이다.

그는 당 대회에서 “국가는 모든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유명한 연설과 함께 ‘국민의 집’ 스웨덴 복지국가의 출범을 선포했다. ‘국민의 집’ 이념은 1996년 페르손 총리에 의해 ‘생태’의 가치가 통합된 ‘녹색 국민의 집’으로 발전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중국 공산당의 ‘국가 대가정(大家庭)’론과도 일치한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면 스웨덴의 ‘국민의 집’은 스웨덴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진화된 관습적 질서의 산물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우월함이나 우수함보다는 평등과 평준화를 선호하는 얀테라겐(Jantelagen) 문화라는 것이 체득되어 있는데, 이들은 공식적인 자리라도 상대의 직함이나 존칭을 붙이지 않는다. 동시에 구성원 전체의 참여를 중요시하게 여기는데, 여기에는 스웨덴 국민들이 사민주의 시절 이전에 축적한 고도의 자유주의적 경제 유산과 개인주의가 바탕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중국과 한국 같은 동아시아 유교 사회에서 축적된 문화적 관습과 질서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은 간과한다. 아울러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근대화 경험과 6·25를 통해 관습화된 사회적 질서는 타인에 대한 ‘불신’과 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인의 ‘타인 신뢰도’는 26.6%로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그만큼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부족한 상태에서 스웨덴이나 독일 수준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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