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NATO의 K-퍼스트 레이디
[포커스] NATO의 K-퍼스트 레이디
  • 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22.07.19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김건희 여사의 행보가 언론의 과다한 조명으로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고 있다. 그가 입었던 옷과 장신구가 삽시간에 완판이 되는가 하면, 모 언론은 죄수복을 입은 김 여사를 만평에 실어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았다.

SNS에서는 김 여사에 대한 검색량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등 가히 ‘김건희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일정 부분 활동은 당연한 것이다. 사진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앞서 김건희 여사와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대통령 부인으로서 일정 부분 활동은 당연한 것이다.
사진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앞서 김건희 여사와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는 역대 영부인 중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팬덤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거 모 방송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사적인 통화 내용이 공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건과 관련이 있다.

당초에 김 여사를 공격하기 위해 공개되었던 통화 녹음에서, 반전에 가까운 김 여사의 저음 목소리와 여장부 같은 털털한 성격,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시원한 말투가 드러나면서, 매력을 느낀 팬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후로 김건희 여사의 팬카페까지 등장하여 영부인에 지대한 관심과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김 여사 굿즈를 만들어 내고, 원더우먼에 김 여사 얼굴을 합성하여 만든 걸 크러시 같은 모습에 열광한다.

그렇지만 팬카페가 대통령 자택 앞에서 시위하는 단체를 고소 고발하여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되고, 또 다른 팬클럽의 회장이라고 하는 분이 본인의 비판에 욕설을 내뿜는 등 팬 모임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증가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활동이 당초에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약속했던 ‘아내로서의 조용한 내조’의 범위를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건희 신드롬과 논란들

일전에 김건희 여사는 봉화마을을 방문했다. 영부인으로서 전 영부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좋은 의미의 관례에 가까운 행사였다. 그렇지만 동행한 사람 중에 지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적인 행사에 사인을 대동한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최순실 프레임과 유사한 비선 실세로 간주하면서 김 여사를 공격하고 나섰다.

사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건희 여사처럼 인신공격의 표적이 되었던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통상적으로 선거에서는 대통령 후보 본인의 리스크가 제일 컸고, 다음은 자녀, 특히 아들의 병역 문제와 사생활이 도마에 올랐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지난 선거전에서 유독 김건희 여사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이 없었던 윤석열 대통령 부부로선 자연스럽게 타깃이 부인에게로 옮겨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여성을 쉽게 가십거리로 삼아 공격하고 조롱하는 우리 사회의 깊은 여성 혐오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당시 일부 유튜버는 나이 많은 남성의 몇십 년 전 기억에 의존하여 ‘줄리 설’ 같은 풍문을 퍼뜨렸고, 이를 지상파를 비롯한 각종 매체가 받아 보도하는 방식으로 사실을 편향 왜곡시켰다.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여성 혐오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혐오란 일반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일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여성 혐오는 일종의 사회 구조적인 멸시의 형태로 나타나며,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의 김건희 여사 모습./연합 공동취재단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의 김건희 여사 모습. 스페인 국왕 왕비와 유럽집행위원장./연합 공동취재단
김건희 여사와 질 바이든 여사
김건희 여사와 질 바이든 여사/연합 공동취재단
김건희 여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연합 공동취재단
김건희 여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인/연합 공동취재단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

우리나라의 여성 혐오는 유교의 영향으로 인한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와 관련이 깊다. 가부장제에서는 남성 우월주의와 성차별주의로 인해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인식한다. 여성은 길들여지고 억압되어야 사회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봤다.

따라서 가부장제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활동 영역을 가정으로 제한했고,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을 정상적인 여성으로서의 사회규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봤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같은 속담에서 보듯이, 여성의 활발한 활동과 자기 주장을 집안이 망할 정도의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의 개선과 함께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가부장제에서 조금씩 벗어나고는 있다. 그렇지만 여성 혐오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곳곳에 남아 있다.

2030세대 남성을 중심으로 ‘된장녀’, ‘김치녀’ 등의 여성 혐오적인 단어들이 생겨났다. ‘삼일한’처럼 여성은 사흘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신조어도 만들어 냈다. 특히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실업률이 높아짐에 따라, 2030세대 남성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성 혐오는 남성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에서는 여성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자기 멸시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며 여성 혐오를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남성이 강자일수록, 또 권위주의적일수록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성을 높게 보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은 강자인 남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른 여성과 경쟁을 벌이게 되며, 자신보다 더 우수하거나 더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여성은 견제한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하는 ‘여적여’란 단어는 어떻게 보면 약자인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게 되는 슬픈 경쟁이 가져온 사회 구조적 산물이라고 본다. 이러한 ‘여적여’ 현상은 경쟁심을 심하게 느끼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성에게 더 강하게 드러난다.

반면 세대 차가 많이 나는 여성에 대해서는 경쟁심은 적어지고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20~30대 여성은 당차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여성에 대해 오히려 열광하고 모델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난 우리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했던 그들에게 희망과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6%가 김건희 여사의 ‘조용한 내조’에 찬성해 많은 국민이 영부인에게 전통적인 여성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김 여사와 비슷한 연령대인 40대에서 ‘조용한 내조’에 대한 찬성이 가장 높았고(75.0%), 20대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30.0%).

또 호남지역을 비롯해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 더 개방적일 것 같은 진보층에서도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에 대해 더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이로 보아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에 대한 기대에는 정치적인 진영논리도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착오적인 조용한 내조

많은 국민이 기대하는 ‘조용한 내조’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조용한 내조’라는 말이 지니는 모호성 때문에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김 여사는 선거기간 동안 기자회견을 통한 사과문에서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지 ‘조용한 내조’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국민은 그 말을 ‘대통령 부인이 되면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고 조용히 지내겠다는 말’로 들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아내의 역할이 주로 집에서만 지내며, 외부활동은 조용하게 극소화하는 전통적인 여성 역할일까?

이미 셀럽이 되어버린 김 여사로서는 아무리 조용하게 외부 활동을 하고 싶어도 매스컴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언론에 노출되어 광폭 행보를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자아 실현과 활발한 사회 참 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영부인에게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만을 기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업가로서 회사를 운영했던 영부인에게 조용히 집에만 머물라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현재 우리나라의 위상에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국제적인 감각도 있으니 외교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또 역대 영부인보다 젊어 보이고 패션 감각도 있어 신세대 영부인으로서 젊은이와 소통에도 한 축을 담당할 수도 있다.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으로 사회의 그늘지고 힘든 사람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하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이상으로 보아 김건희 여사는 ‘조용한 내조’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영부인으로서 십분 활용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영부인이 사회 활동을 할 때는 철저하게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겸손하게 해야 덕을 쌓게 된다.

영부인은 선출직이 아니며 단지 아내라는 정체성을 통해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영부인의 활동이 공적인 영역을 벗어나 논란이 되거나 권력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면 좋아하던 국민도 금세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