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징병제의 딜레마
대한민국 징병제의 딜레마
  •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 승인 2022.07.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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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웹드라마 ‘D.P.’의 인기가 높다. 군무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것인데 탈영의 과정에서 묘사되는 병영 내 잔혹한 가혹행위가 화제다. D.P.는 2014년 강원도의 한 육군 헌병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군대 내 가혹행위가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실제로 예비역 남성들 사이에서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것 같다”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급기야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드라마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D.P.가 태국·베트남·영국 등 해외에도 방영되는 데다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까 우려되어서다.

국방부는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 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현재 바뀌어 가고 있다”며 D.P.가 현재의 병영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극화된 묘사라고 해명했다.

극 중에 “애초에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겠어요?”라는 대사가 있다. 징병제의 한계와 모병제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대선을 목전에 둔 선거의 계절을 맞아 여지없이 병역제도 논쟁이 뜨거웠다.

모병제에 관한 대선 후보들의 주장과 함께 이미 온라인에서는 ‘군대 꼭 가야 하나’, ‘군대 가고 싶은 사람만’, ‘나 군대 안 가도 돼’와 같은 영상이나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 군 정예화, 병영문화 혁신 등 모병제 장점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자칫 현실은 무시한 채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모병제 전환 문제는 간단치 않다.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과 형평성, 국가 인적자원의 활용, 국가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국가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과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잘못된 결정에 대한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인구절벽 상황은 모병제에 호의적이지 않다.

20세 남성 인구 추계에 따르면 당장 2025년부터 2022년의 병력 규모 감축 목표인 5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모병제 전환, 가능한가?

203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청년 모두가 군에 가도 병력을 채우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대상자 모두가 입대해도 병력 규모를 채울 수 없는데 지원으로 군 병력을 충원하는 모병제 주장은 위험하다.

모병제 주장의 핵심은 합당한 처우를 통해 입대자를 모집하고, 모집된 현역자원을 장기로 복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입영대상 규모를 줄일 수 있어 병역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장밋빛 환상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시대에 모병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규모, 군사적 위협, 군 복무 환경, 군인에 대한 사회적 위상 등 여러 면에서 우리보다 모병 여건이 좋은 해외에서도 모병은 갈수록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1963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모병제를 도입한 영국은 2019년부터 외국인에게까지 지원 대상을 넓히는 등 모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 20년이 지난 2011년에야 모병제를 시행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병력 부족을 겪고 있고 현재 징병제로의 환원을 검토하고 있다. 지원 부족으로 세 차례 연기 끝에 2018년에야 모병제를 시행한 대만의 지원병 충원율은 8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보도에 따르면 대만인의 66.6%는 다시 징병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찬성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자위대 충원율은 77% 수준이다. 낮은 충원율보다도 자위대 구성원의 질적 수준 하락이 더 큰 문제라는 인식도 크다.

우리의 모병 여건은 더 열악하다. 인구절벽 상황이 심각해서 적정 병역자원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7년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보고서는 한국에서 모병제를 하게 된다면 20세 남성 인구를 기준으로 ‘열 명 중 한 명(9.9%)이 입대’하여 ‘12년 이상의 장기복무’를 해야 겨우 30만 명의 병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수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군에 지원하는 비율의 두 배, 유럽 선진국의 서너 배 수준이다. 병력 규모를 현재의 50만 명에서 30만 명, 아니 20만 명으로 감축하더라도 모병제하에서는 충원이 어려울 수 있음을 연구는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징병제에 안주할 수는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징병제와 모병제의 이분법적 논의를 넘어 바람직한 병역제도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혁신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첫째, 징병제를 기반으로 병역제도의 변화와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 모병제가 갖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모병제는 남북한 간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해도 늦지 않다. 병력 규모를 대폭 감축하더라도 모병제로는 산술적으로 충원이 결코 쉽지 않다.

설사 충원이 되더라도 사회 빈곤층의 과다 지원과 병력의 질적 수준 저하는 첨단과학기술군으로의 지향과 적합하지 않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협이 상승하는 경우 모병으로 충원은 더 어렵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계기로 모병제를 폐지하고 징병제로 다시 환원한 우크라이나(2014년), 리투아니아(2015년), 노르웨이(2016년), 스웨덴(2018년) 국가의 사례가 주는 교훈이 크다.

둘째, 인구감소에 대한 대응과 첨단과학기술군으로의 전환의 맥락에서 상비 병력의 규모를 감축해야 한다. 군은 오래 전부터 국방개혁을 추진해 왔다. 국방개혁의 핵심은 ‘양적 군 구조’를 ‘질적 군 구조’로 전환하는 데 있다.

2005년 공표된 최초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인 ‘국방개혁 2020’은 ‘국방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업’인 이유로 ‘우리 군은 아직, 병력 위주의 대군(大軍)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문제 인식은 현재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15년 동안 국방개혁을 추진해 왔지만 한국의 군 구조는 여전히 양적 군 구조의 한계를 안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군(大軍, mass army) 체제에서 탈피해서 스마트 강군으로 전환하고 있다.

1975년 대비 2015년 병력은 미군이 63%, 독일 36%, 영국 46%, 프랑스 42% 수준이다. 감축 폭이 37%에서 73%에 이른다. 현재 우리 군은 2020년 상비병력 55만5000명을 2022년까지 50만 명으로 감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감소의 상황, 과학 기술군으로의 지향을 고려할 때 상비병력 감축 폭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작지만 강한 군’으로 선진화하려는 군의 주도적 노력이 절실하다.

과학화 전투훈련장(KCTC)에서 훈련 중인 신임 장교들.
과학화 전투훈련장(KCTC)에서 훈련 중인 신임 장교들.

제도혁신의 방향은?

셋째, 상비병력만이 아닌 국방인력의 관점에서 인력의 틀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이 점에서 징병제를 기반으로 하되 모병제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민간인력(군무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

2020년 말 기준 군무원 정원은 약 3.5만 명 수준으로 군인 정원 대비 약 6.5% 수준을 차지한다. 국방부는 향후 2024년까지 4.4만 명, 군인 정원 대비 8.8%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지만 주요국 수준에 비하면 한참이나 낮다.

주요국의 민간인력 비율은 미국 56%, 프랑스 30%, 영국 38% 수준이다. 여군의 비율도 높여가야 한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여군 비율은 전 세계 43개국 조사 대상국 평균 10.4%의 절반 수준인 5.5%로 전체 31위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기준 미국의 여군 비율은 16.9%, 프랑스는 16.1%, 영국은 10.9%에 달한다. 전 세계는 지금 여군 인력 활용이 강화되는 추세다. 전쟁 양상의 변화, 첨단과학기술군으로의 진화, 우수 인력의 충원과 활용, 군내 양성평등의 확장 등을 고려할 때 여군 인력의 활용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전체적으로 의무복무병 규모를 줄이고 간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2022년 기준 50만의 병력은 간부 20만(40%)과 병 30만(60%)으로 구성된다. 점진적으로 부사관 확대를 통해 간부의 비율을 더 높여 병(兵) 의존도를 낮추고 간부가 중심이 되는 국방인력체제로 바꿔나가야 한다.

넷째, 군 복무기간의 단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가 초래하는 ‘정해진 미래’의 문제가 심각하다.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합계출산율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고,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구 고령화의 속도도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다.

20년 후인 2041년에는 셋 중 한 명이 노인인 나라가 되고, 2048년에는 가장 나이 든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한국의 인구 변화는 경제위기의 근본이 되는 이른바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인구절벽이란 생산 가능한 인구인 15세에서 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일컫는다.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구매력이 낮은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 소비가 저조해지고 경제가 침체한다는 것이다. 인구절벽의 가속화는 필연적으로 징병제 하의 군 복무 기회비용의 증가를 초래한다.

2015년 경영자총연합회 연구에 의하면 복무기간 전후 학업 및 경력단절로 인해 발생하는 징병제 기회비용은 연간 11.5조 원에서 15.7조 원에 달한다. 지금 18~21개월의 복무기간이 갖는 기회비용과 향후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에 일할 사람이 부족한 인구절벽 시대에서의 동일한 복무기간이 초래하는 기회비용은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현재 육군 및 해병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의 복무 기간은 휴학과 복학 등 군 복무 전후의 준비, 적응 기간을 고려할 때 대략 2년간의 기회비용을 의미한다. 숙련된 장기복무 군무원과 부사관을 확대하고 국방인력을 정예화하는 한편 의무복무 병의 복무기간은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2030년을 목표 연도로 군 복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의무복무병의 규모를 30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10만 명 감축하더라도 2030년 기준 남성 인구가 24만 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의무복무병의 충원은 가능하다.

국민개병제의 헌법적 가치, 병역의무에 대한 국민적 일체감, 안보 상황,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복무 환경, 모병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모병제로의 전환은 시기상조다. 징병제를 근간으로 병역제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향후 병역제도는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국방인력의 정예화를 통해 첨단과학기술군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일자리 창출과 군 복무 부담 경감으로 국가 성장동력 유지에 기여하는 체제로 발전해야 한다. 인구감소 시대, 병역제도 혁신을 기회와 도전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징병제 병영문화 개혁 외국은 어떻게?

 

독일 연방군대에는 군인 참여가 제도화 돼 있다. 하사관과 병사 그리고 장교는 각각의 직역에서 각 1명의 중개위원(Vertrauensmann)을 선출한다. 이들 중개위원들은 부대 내 일상적인 부대 운영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권한 혹은 역할 중 특히 중요한 부분은 자신들을 중개위원으로 선발해준 장병들과 상급자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독일 군인법 제354).

예를 들어 부대의 장은 장병에게 상훈(賞勳)을 수여하거나 징계조치를 취하려면 반드시 그 전에 중개위원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중개위원 제도는 중대급 이상의 모든 단위부대에서 실시되고 있다. 네덜란드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는 병영 내 일탈과 비리를 조사하는 시민 옴부즈만제도를 시행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제로 한다. 우리 군에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윤일병 사건과 같은 병리적 병영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안보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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