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에게 패배하는 한국의 페미니즘
‘개딸’에게 패배하는 한국의 페미니즘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2.07.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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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개딸’들의 등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개딸이란 개와 딸이 합쳐진 합성어.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천방지축인 딸을 애칭으로 일컬어 “개같은 성격의 딸”을 줄여 ‘개딸’이라고 한 것이 유래다.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2030대 여성들이 ‘개혁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재발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 개딸이 극렬적인 정치 팬덤현상을 보이면서 더불어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을 비롯, 폭력에 가까운 사회적 테러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재명을 ‘아빠’라고 부르며 이재명을 지지하는 송영길 전 대표를 ‘영길 삼촌’이라 부른다.

6월 18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 공연장 앞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같이 걸을까’행사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재명 의원. 정치적 팬덤은 이제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6월 18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 공연장 앞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같이 걸을까’행사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재명 의원.
정치적 팬덤은 이제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설훈 의원은 최근 “소위 말하는 ‘개딸’(개혁의딸)들,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의 등쌀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쉽게 얘기하기를 꺼리는데, 이런 현상을 타파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딸 현상이 2030여성들의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느냐는 것이다. 진보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여성운동가 출신 작가 오세라비는 “교집합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개딸 현상은 페미니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페미니즘을 업고 민주당에 스타로 등장했던 박지현 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과 개딸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청년 여성의 정치적 진영에서 일어나는 파시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페미니즘이 자신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실망과 좌절이 2030 청년 남성에게 경도되는 국민의힘에 분노해 반발하는 결집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진보 페미니즘이 진보적 2030 여성들에게 마저 실패하고 있다는 시그널인 것이다.

페미니즘과 개딸의 교집합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혜성같이 등장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고전을 하는 가운데 이준석 당대표와 불화를 정리하고 ‘여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자 이재명 민주당 캠프는 ‘N번방 불꽃 추적단’ 단장이었던 젊은 페미니스트 27세 박지현을 전면에 내세웠다. 박지현을 이재명에게 소개한 이는 교차 페미니즘의 리더인 권인숙 의원이었다.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의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으로 합류한 박지현은 더불어민주당 및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2030 여성들의 의견을 수렴해 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젠더 친화적 행보에 힘을 더할 것”이라 했다.

국민의힘 및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열감시법 시행 사태 주장은 많은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준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갈등과 분열을 일으켜 특정 표심을 자극하는 정치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2030 페미니즘 진영이 이재명 후보와 손잡는 양상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2030 여성 표심은 응답자 특성상 각종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아왔다.

이 점을 가장 정확하게 본 이는 유시민 전 의원이었는데, 그는 대선 직전, 한 방송사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론조사가 놓치고 있는 2030 여성 표심이 득표율과 상당한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유시민 전 의원의 관측은 적중했다. 20대 여성 58.0%가 이재명 후보를 찍었다. 윤석열 후보는 33.8%. 30대 여성도 윤석열 후보(43.8%)보다 이재명 후보(49.7%)를 더 지지했다. 윤석열 후보의 득표율이 사전여론조사보다 떨어지면서 박빙의 결과가 빚어진 결정적 배경이다.

박지현은 권인숙 의원의 지론인 ‘86운동권 남성 정치인들의 퇴장’을 줄곧 주장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짤짤이’론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최강욱 의원에 대한 징계 요구였다. 이 문제에 대해 여의도 관측통들은 정의당을 지지했던 페미니즘 진영이 박지현을 매개로 민주당을 장악하는 시나리오에 들어갔다고 전망했다.

특히 교차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의당 출신들과 10만 여성 당원들이 민주당에 본격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박지현은 진보 진영과 민주당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는 것. 그런데 이러한 모멘텀이 개딸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여의도 관측통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이러한 민주당의 개딸 현상이 다름 아닌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2030 청년 남성들을 집결시키기 위해 젠더 갈라치기 전략에 대한 반동 현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개딸 현상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은 대선 다음날 팬카페를 열자마자 몰려들었다. 한 달만에 회원 17만 명을 넘기더니 민주당 입당 러시를 이뤘다. 1주일 만에 11만 명의 당원이 늘었는데 서울시당의 경우 온라인 입당의 80%가 여성이었다.

이들은 이재명 후보를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속칭 좌표를 찍고 문자폭탄을 날리다가 이재명 후보가 ‘자제’를 호소하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방식으로 행동을 바꾸는 전략적인 태도마저 보였다.

문제는 박지현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지지가 이재명 팬덤인 개딸들과 충돌하면서 박지현의 정치적 몰락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진보 페미니즘 진영이 정의당에서 실패하고 이어서 대안적으로 민주당 원정에도 실패하고 있다는 관측을 불러온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24일 팬덤정치와의 결별을 약속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 연합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24일 팬덤정치와의 결별을 약속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 연합

페미니즘은 왜 개딸에 패배하고 있나

박지현의 586 운동권 남성 정치인들의 퇴장 요청은 분명히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맞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은 조국 사태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많은 중도 시민들과 보수, 그리고 합리적 진보의 공감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스트 박지현의 주장은 민주당을 관통하지 못할까. 여기에는 한국의 진보 페미니즘이 과거 호주제 폐지와 같은 양성평등을 모토로 한 여성운동의 시민적 보편성과 건강성을 잃었던 원인 외에는 달리 설명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자신의 모태였던 여성의 참정권, 소유권과 같은 자유주의로서 보편성의 소구력을 잃었다는 의미다. 그러한 점에서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출발선과 분기, 그리고 일탈을 회고해 보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페미니즘이란 성별에 근거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권리와 평등 실현을 목표로 하는 사상이나 운동이다. 페미니즘의 기원은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보통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서구 유럽과 북미 대륙에 등장한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주장들을 일컫는다.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남성 지배적 사회 속에서 성차별과 불평등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에 의하면 여성이 불행한 이유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게 된 근본적인 요인은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이고, 그 차이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 냈으며, 이로 인해 여성이 억압당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다는 것이다.

3·8 여성의 날은 1909년 2월 28일 미국 작업장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는 시위로 시작되었다. 이 시위를 계기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여성의 생존권과 참정권 보장을 위한 시위 및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다 1917년 3월 8일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이 3월 8일로 바뀌게 되었다. 1975년 유엔이 ‘여성의 날’을 공식 지정한 이후로 세계 많은 나라들이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2018년 ‘양성평등기본법’ 개정과 함께 ‘여성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서구유럽과 미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한 지 100년 남짓 지났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위기를 넘어 눈부시게 성장해 온 위대한 발자취에는 여성과 가정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 헌신적인 노력 끝에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었고 남녀평등이 상당 수준 실현되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게 되었으며 여성이 경제, 정치권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사회적 지위가 크게 향상되는 등 여성은 상당한 권리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 여성운동은 초기 ‘여성의 날’의 정신이 변질되어 개인의 존엄한 보편적 인권을 추구하며 남성과 여성을 동반자 관계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대립과 분열로 이끌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이익이 충돌하고 양립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남성과 여성을 편 가르고 건전한 남녀관계와 가정을 무너뜨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외치는 비혼, 비출산, 낙태가 진정 그들이 추구하는 여성의 권익 신장과 남녀평등에 대한 해결책이냐는 비판에 페미니스트들은 귀를 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페미니즘의 성정체성의 정치가 파시즘에 가까운 개딸들의 ‘내 멋대로’에 적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독일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나치 파시즘에 무기력했던 점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된다.

집단주의와 집단주의 대결이라면 결국 더 괴랄한 성격의 집단주의 파쇼 진영이 승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이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와 결합해서 스스로의 정치경제적 이념의 주류성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자기 모순에 결박하는 상황은 중도적 시민들 뿐만 아니라 2030 여성들에게도 실망을 주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교육과 직업 선택에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20대 여성들이 동년의 남성들 못지않게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고 합리적인 사회적 규범을 지지한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 페미니즘은 여전히 사회 경제적 토대면에서는 마르크시즘에 포획되어 있는 상황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여성을 형식적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대했지만 어떤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여성의 정치, 경제적 위상은 남성과 동등하지 못했다.

옛 소련이 그랬고 중공이 그랬으며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본의 가치를 부정하고 노동가치를 본원적 요소로 삼는 사회주의 경제가 노동집약적 산업을 넘어 성장하기 어렵고 당연히 그러한 사회주의 방식의 경제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높은 남성이 모든 생산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여권이 크게 신장된 원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대가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에 눈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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