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학원 안다니면 ‘킬러문항’ 못푼다
 [심층분석] 학원 안다니면 ‘킬러문항’ 못푼다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3.07.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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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수능에서 킬러문항 출제를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교육부가 움직이자 소위 ‘일타강사’라는 유명 강사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좌파 매체를 제외한 다수의 여론은 일타강사들의 주장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일타강사들은 사교육 시장의 스타로 연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을 번다. 이들은 ‘수능 킬러문항’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자랑한다. 학생들은 여기에 매달려 월 수백만 원씩을 쓴다. 사교육 시장을 지금처럼 만든 것을 두고 “운동권 출신들이 만든 사교육 업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교육개혁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은 막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며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 편인 거냐”고 지적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이 삼위일체가 돼 혁신해야 한다”고 교육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대통령실과 교육부, 언론에서는 ‘사교육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교육부는 22일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열고 문제가 있는 사교육 업체나 강사에 대한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29일 오후 6시까지 165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사교육 업체와 수능 출제 관계자 간의 유착 의심 29건 ▲끼워 팔기식 교재 구매 강요 19건 ▲교습비 등 초과 징수 16건 ▲허위·과장 광고 31건이 접수됐다. 기타 문제도 96건이었다. 

교육부가 공개한 신고 가운데는 “대형 수능학원 강사가 수능 출제 관계자와 만났다”거나 “사교육업체 모의고사 문제를 만드는 데 수능 출제진이 참여했다”, “개형 수능학원이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자료까지 구매하라고 강요했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보다 앞서 19일에는 국세청이 메가스터디·대성학원·종로학원·시대인재 등 대형 사교육 업체에 대한 비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국세청은 입시 컨설팅 업체와 초고소득 일타강사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허위·과대광고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6월 29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수능 킬러문항 판별 기준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
6월 29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수능 킬러문항 판별 기준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

킬러문항으로 사교육비 급증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따라 정부가 움직이는 것은 현재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가 소위 ‘수능 킬러문항’ 때문이라고 봐서다. 수능 변별력을 높인다며 공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실상 풀 수 없는 킬러문항을 수능 시험에다 출제하고, 사교육 업체들은 이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며 돈벌이를 하며 사교육 시장을 점점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시각이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초·중·고교 사교육비는 약 26조 원으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다. 학생 1인당으로 계산하면 월 41만 원이나 된다. 2007년 사교육 시장을 조사한 이래 사상 최고치였다. 2021년 사교육비 또한 사상 최고치였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자녀가 있는 가정의 가계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수도권에서 그렇다. 

지난 6월 26일 교육부는 22개의 킬러 문항을 공개했다. 그 중 몇 개를 살펴보면 이렇다. 

2022년 수능 국어 8번 문항

“<보기>는 헤겔과 (나)의 글쓴이가 나누는 가상의 대화의 일부이다. ㉮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3점) 
헤겔: 괴테와 실러의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놓치지 않아야 할 점이 있네. 이 두 천재도 인생의 완숙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최고의 지성적 통찰을 진정한 예술미로 승화시킬 수 있었네. 그에 비해 초기의 작품들은 미적으로 세련되지 못해 결코 수준급이라 할 수 없었는데, 이는 그들이 아직 지적으로 미성숙했기 때문이네. 
(나)의 글쓴이: 방금 그 말씀과 선생님의 기본 논증 방법을 연결하면 [ ㉮ ]는 말이 됩니다.
① 이론에서는 대립적 범주들의 종합을 이루어야 하는 세 번째 단계가 현실에서는 그 범주들을 중화한다.
② 이론에서는 외면성에 대응하는 예술이 현실에서는 내면성을 바탕으로 하는 절대정신일 수 있다. 
③ 이론에서는 반정립 단계에 위치하는 예술이 현실에서는 정립 단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④ 이론에서는 객관성을 본질로 하는 예술이 현실에서는 객관성이 사라진 주관성을 지닌다.
⑤ 이론에서는 절대정신으로 규정되는 예술이 현실에서는 진리의 인식을 수행할 수 없다.“ 

2022년 수능 국어 15번 문항

㉠~㉢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에서 광각 카메라를 이용하여 확보한 시야각은 ㉡에서는 작아지겠군.
② ㉡에서는 ㉠과 마찬가지로 렌즈와 격자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격자판이 작아 보이겠군.
③ ㉡에서는 ㉠에서 렌즈와 격자판 사이의 거리에 따른 렌즈의 곡률 변화로 생긴 휘어짐이 보정되었겠군.
④ ㉡과 실세계 격자판을 비교하여   격자판의 위치 변화를 보정한 ㉢은 카메라의 기울어짐에 의한 왜곡을 바로잡은 것이겠군.
⑤ ㉡에서 렌즈에 의한 상의 왜곡 때문에 격자판의 윗부분으로 갈수록 격자 크기가 더 작아 보이던 것이 ㉢에 의해 보정되었겠군.

해당 문제들은 고교 과정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깊은 수준의 철학 공부를 해야 하거나 사진 촬영과 관련한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교육만 받는 학생들에게 이런 문제는 풀기기 쉽지 않다는 것은 사교육 업체 강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일부 일타강사들은 킬러 문항 배제에 강하게 반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 등으로 사교육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2일 BC카드 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학원 매출은 5년간 연평균 4.4%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 연합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 등으로 사교육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2일 BC카드 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학원 매출은 5년간 연평균 4.4%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 연합

일부 일타강사 SNS서 尹 대통령 비판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배제’ 이야기가 전해진 뒤 일부 일타강사들은 SNS 등을 통해 불평을 해댔다. 수학 강사인 현우진 씨는 관련 보도를 SNS에 공유한 뒤 “애들만 불쌍하다”고 주장했다.

현 씨는 “9월 모의평가하고 수능은 어떻게 간다는 건가. 지금 수능은 국수영탐 어떤 과목도 만만치 않고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혼란인데 정확한 지침을 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비판적 사고는 중요하지만 적어도 시험에서는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다는 非비판적인 사고로 마음을 여시길”이라고 윤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국어 강사인 이원준 씨는 “더 좋은 대안이 없다면 섣부른 개입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역사 강사인 이다지 씨는 “학교마다 교사마다 가르치는 게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개설되지 않는 과목도 있는데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수능을 칠 수 있게 하라’는 메시지”라며 “9월 모의평가가 어떨지 수능이 어떨지 더욱 더 미지수”라고 주장했다. 

사회·문화 분야 강사 윤성훈 씨는 “‘누구나 쉽게 맞출 수 있게’와 ‘공정한 변별’의 조화가 쉬운 일이라면 여태 왜 안 했겠냐”라며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대통령 즉흥 발언으로 모두가 멘붕 상태다. 대통령의 발언은 신중하고 최종적이어야 한다”고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런 일타강사만 있는 건 아니다. EBS에서 17년째 국어를 가르치는 현직 고교 교사 윤혜정 씨는 SNS에 글을 올려 “흔들릴 필요 없다. 하던 대로 하면 된다”며 수험생들을 다독였다. 
윤혜정 씨는 “EBS에서 (수능) 강의를 시작한 2007년부터, 특히 EBS 연계가 시작된 2010년부터 항상 강조해온 건 수능 정책이 어떻게 달라지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본이 탄탄한 국어 공부를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씨는 “(수능 출제 문항이 바뀌어도) 기본과 개념은 달라지지 않는다. 연계에 무작정 기대는 공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올바른 국어 공부를 하면서 연계는 덤으로 활용하면 되는 거다. 연계 정책을 올바르게, 그리고 똑똑하게 활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사교육 업체를 대기업으로 키운 사람은 킬러 문항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현재 정책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27일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회장은 KBS 2TV ‘더 라이브’에 출연해 “킬러문항이 문제가 되는 건 사실이며, 이것을 배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건 동의한다”고 밝혔다. 

손주은 회장은 이어 “하지만 사교육과 일타강사들 때문에 킬러문항이 생겼고 심화됐다는 건 오해”라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그러면서 “킬러문항하고 사교육을 연계시키는데, 킬러문항을 만든 건 교육당국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라며 “거기에 사교육이 대응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EBS와 (수능 시험 문항 출제) 연계율을 70%까지 지나치게 올리면서 지문이 그대로 나오니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킬러문항이 등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수능 시험의 변별력 문제보다 앞서 대입시험을 근본적으로 왜곡한 ‘수시모집’ 문제는 지적하지 않았다. 입학사정관 제도를 골자로 하는 대입 수시모집은 노무현 정부에서 강력히 추진,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시작했다. 경제 활성화에 주력하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고, 이후 대입에서 수시모집 비율이 수능 성적에 따라 지원하는 정시모집 비율보다 커지면서 동시에 사교육 시장도 급속히 팽창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교육 시장 팽창과 수능 시험 킬러문항 문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운동권 출신들이 사교육 시장을 키운 탓”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현재 연봉 200억~400억 원에 이르는 일타강사들은 운동권 출신이 거의 없지만 대입 수시모집과 킬러 문항이 확산한 데는 운동권 출신 사교육 업체 설립자들의 영향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2005년 10월 주간한국과 2019년 9월 중앙일보는 운동권 출신 사교육 재벌과 일타강사에 대해 보도했다. 박영재 (서울대 84학번) 청산학원 중등부 대표, 논술 분야 일타강사였던 조동기(고려대 85학번) 국어논술전문학원 대표, 손주은(서울대 81학번) 메가스터디 대표, 메가스터디의 일타강사 안상종(연세대 83학번), 안성용(서울대 81학번) 다산학원 대표, 채광석(성균관대 85학번) 학림학원 대표, 정청래(건국대 85학원) 마포 길잡이 학원 설립자, 정봉주(한국외대 80학번) 외대어학원 설립자, 구논회(충남대 80학번) 대전 대학학원 이사장 등이 있다.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인 이현 스카이에듀 대표, 웅진그룹에서 씽크빅 등 교육 분야를 키웠던 김준희(서울대 76학번), 현무진(서울대 77학번), 박인순(서울대 78학번), 최정순(이화여대 75학번) 등도 운동권 출신이다. 

학림학원 이사장을 지낸 채광석 헥사곤 미디어 CFO 겸 부사장은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마이맥에서 일타강사로 유명한 한석원 수학강사는 서울대 83학번으로 운동권 활동을 하다 실형을 살았다고 한다. 같은 학원에 있었던 김찬휘 영어강사는 서울대 84학번으로 녹색당 공동대표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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