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정율성 우상화’…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호남 유권자에게
[심층분석] ‘정율성 우상화’…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호남 유권자에게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4.01.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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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가 추진하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이 국민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소위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던 광주에서도 시민들은 물론 5·18 단체까지 정율성 역사공원에 반대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수세에 몰렸다.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이 불거진 것은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공원을 연내 완공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기사가 지난 8월 11일 나온 뒤부터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부터 계획했던 정율성 역사공원 건설을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는 단신이었다. 하지만 새만금 잼버리로 인해 불거진 호남 정치권의 ‘세금 빼먹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비판이 거세지던 시기 언론은 정율성 역사공원에도 많은 세금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의심했다. 

9월 2일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미망인회 회원들이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9월 2일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에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미망인회 회원들이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확인 결과 정율성 역사공원을 짓는 데 48억 원이 소요되고, 이뿐만 아니라 광주와 전남 화순군 등에서는 정율성을 테마로 한 각종 기념시설과 공원을 짓고 있음이 드러났다. 정율성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일제시대 중국 공산당에 입당을 했고, 해방 이후에는 소련군 괴뢰 집단과 함께 공산 점령군 행세를 했으며, 6·25전쟁 때는 중국에 돌아갔다 중공군의 일원으로 다시 한반도에 들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자를 ‘독립운동가’라며 수십억 원을 들여 기념사업을 벌이는 광주광역시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했던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국민들의 비판에 “광주는 뛰어난 음악가 정율성에 투자를 한 것”이라며 “당당하게 정율성 기념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국민들의 비판은 더 커졌다. 
이런 와중에 광주광역시가 지난 10년 동안 ‘정율성’을 테마로 한 사업에 117억 원 이상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광주광역시와 전남 화순군, ‘정율성’ 테마로 100억 원 넘는 혈세 사용

지난 8월 30일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광주광역시와 남구, 전남 화순군이 지난 10년 간 정율성 관련 사업에 투입한 예산 내역을 받아 공개했다. 
광주광역시는 102억3770만 원, 광주 남구는 2억1806만 원, 전남 화순군은 12억3488만 원을 사용했다. 광주시가 쓴 돈 중에 가장 큰 비중은 역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에 들어간 48억 원이었다. 광주 남구는 정율성 기념 다큐멘터리 제작 비용 지원, 광주 MBC의 동요제 홍보 방송 비용, 영화 상영비, 정율성 거리 유지 보수비에 돈을 썼다. 전남 화순군은 정율성이 어릴 적 살았다는 집을 ‘생가’라며 공원으로 만드는 데 들인 12억 원이었다.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공원 이외에 돈을 쓴 곳은 정율성 음악축제 사업에 33억9120만 원, 정율성 관련 전통문화 교류 사업비 5억6000만 원, 정율성 동요 경연대회 7억2800만 원, 정율성 생가 정비에 2019년 한 해 동안 5억 원 등을 사용했다. 특히 정율성 동요대회는 광주 MBC가 개최했는데, 대회에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정율성 브랜드 홍보 등 ‘중국과 친해지기 사업’, 정율성이 작곡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디지털 노래비 유지 관리, 정율성 항일독립운동 행적 고증 조사, 생가 정비 자문회의 비용 등으로 8150만 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광주광역시와 전남 소속 공무원들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정율성을 앞세워 53번이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새만금 잼버리와 관련해 90번 이상 해외출장이랍시고 여행을 즐기고 온 전북 지자체 공무원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반면 광주광역시는 지역 출신 6·25전쟁 학도병, 항일운동가와 같은 ‘진짜 국가유공자’ 선양 사업이나 관련 사업비 등으로 연 10억 원 가량만 썼다. 6·25전쟁에 자진해 참전했다 산화한 영웅적인 학도병은 광주에서만 46명이나 된다. 항일 의병장 중에서도 김태원, 심남일 같은 광주 출신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위해 쓴 돈이 정율성 기념사업에 들인 돈보다 적었다는 것이다.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 거세지자 4·19단체와 5·18단체까지도 비판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보훈단체 회원들이 광주광역시로 달려가 강기정 시장을 비롯한 지역 내 민주당 의원들을 규탄하고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8월 30일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특수임무유공자회,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4·19혁명회, 4·19희생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등 13개 보훈단체 회원 1600여 명이 광주광역시청 앞에 모여 강기정 시장에게 대국민 사과와 정율성 기념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보훈단체 회원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민주화 성지라고 부르는 광주에 중공과 북한의 영웅인 정율성 역사공원을 만드는 광주시장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인가를 묻고 싶다”며 “학살자를 찬양하고 옹호하는 강기정 시장은 국민께 사죄하라”고 주장하며 광주광역시청을 항의 방문했다. 특전사동지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강 시장이 계속) 정율성 역사공원을 추진하면 주민소환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집회와 공동성명 발표를 두고 강기정 시장과 일부 좌파 매체가 “보훈부가 시켜서 저러는 것”이라고 주장하자 보훈단체 회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항의 집회에 참석한 이화종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장은 “오늘 집회는 우리 스스로 일평생 한 것처럼 앞으로도 이 나라를 지키는 데 일조하기 위해 왔다”며 “보훈부 요청으로 오늘 집회를 열었다고 말한 강 시장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8월 28일에는 광주일보가 정율성 기념사업을 비판하는 5·18 단체들의 발표를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공법단체인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와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는 4·19혁명 관련 단체들과 함께 3개 중앙일간지에 의견 광고를 실었다. 

정율성 기념사업 찬반 논란이 이어진 8월 28일 광주 남구 정율성로에서 시민이 길거리 전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
정율성 기념사업 찬반 논란이 이어진 8월 28일 광주 남구 정율성로에서 시민이 길거리 전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

광고에서 5·18단체들은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4·19와 5·18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자 우롱하는 처사”라며 “‘조선인민군 행진곡’과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회장은 “광주시는 5·18 공법단체들의 사무실을 확장·개편해 달라는 요청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해 왔는데, 정작 논란이 있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수십억 예산을 들여가며 서두르고 있다”며 “광주시가 논란에 휩싸인 사업을 강행하기보다 5·18 유공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더 늘리라는 취지에서 동참했다”고 광고를 한 이유를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광주 시민들 “중국 귀화했는데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념해야 하나”

강기정 광주시장과 민주당 측은 보훈단체들의 이 같은 비판에도 정율성 기념사업을 두고 한중관계 발전과 독립유공자 선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의 반응도 보훈단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지역 매체 무등일보는 지난 8월 24일 이런 시민들의 반응을 소개했다. 

신문은 정율성 거리 등 기념사업과 관련해 “실제로 주변 상인과 주민들도 조성된 지 14년이 지난 정율성 거리전시관은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잊혀진 지 오래”라며 현재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한 주민은 “전시 내용을 읽어봤지만 아무리 봐도 정율성 선생이 광주가 나서서 기념할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 의문이 든다”며 “내용이 아쉽기도 하고 최근에 보수를 하기는 했지만 관리가 미흡했던 점도 사람들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근에 정율성 선생 생가가 있는데 그냥 설명하는 내용만 집 앞에 있을 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있는 것들부터 잘 관리하고 개발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근 상인은 “광주 주민이라고 해도 정율성 선생을 모르거나 생가를 물어봐도 답변해 주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가끔가다 아이들이 전시물을 읽는 건 봤어도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 상인은 그러면서 “코로나 전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와 보고 가곤 했지만, 최근에는 못 봤다”면서 “중국으로 귀화해서 인정받았는데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사공원까지 만들면서 기념해야 하나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런 광주 시민들 반응은 주제는 전혀 다르지만 새만금 잼버리 파행 당시 전북 도민들이 보인 반응과 유사하다. 지난 8월 8일 경향신문은 새만금 잼버리 파행과 관련해 전북 도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전북 부안군의 한 주민은 “경제 특수는 커녕 지역 이미지만 나빠지고 있다”며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뻘 밭에서 (잼버리 같은) 행사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능력 없는 정부와 조직위원회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비난을 왜 주민들이 들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새만금 잼버리 파행 전북 도민 반응, 정율성 관련 광주 시민 반응과 유사

새만금 잼버리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는 전북 주민은 “참가한 청소년들에 간식 등을 나눠줬는데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라면서 “열악한 환경에 자식 같은 아이들을 내몬 것 같아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율성 기념사업과 관련해 자기 지역만 생각하는 듯한 광주 시민과 마찬가지로 전북 도민들도 누구 때문에 새만금 잼버리 파행이 벌어졌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전북 도민이 망신을 당했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한 도민은 신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으로 빚어진 사태에 왜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더 책임이 있는지, 윤석열 정부에 더 책임이 있는지 등은 중요하지 않다”라며 “명확한 사실은 정부가 주관한 행사가 준비 부족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광주 시민과 전북 도민의 이런 반응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자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이익에만 관심을 갖는 저런 태도 때문에 민주당과 좌파가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문제에 호남 유권자들을 이용해 먹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발전 이익도 중요하지만 호남 유권자들이 국가라는 공동체의 공동 가치와 이익을 보다 많이 생각하고, 판단의 염두에 둔다면 정율성 역사공원이나 새만금 잼버리와 같은 문제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비공식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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