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사법부 장기 공백, 법치가 흔들린다 
[심층분석] 사법부 장기 공백, 법치가 흔들린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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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사법계 전체에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한 가운데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민주당의 부결에 부딪혀 대법원장 공석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신임 대법관 임명도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연쇄적으로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의 후임자 제청 절차도 지연될 전망이다. 대법관 인선 절차는 천거와 검증, 제청까지 약 3개월이 소요된다. 사안에 따라서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시스템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사청문회와 국회 본회의 일정까지 감안할 경우 올 11월까지 공백이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로 사법리스크를 미뤄라

민주당은 이러한 사법부 인사 파장에 대해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기소와 진행 중인 재판, 그리고 민주당 인사들이 연루된 돈봉투 사건 재판 등이 총선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중요한 정치인들에 대한 재판의 최종심이 대선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들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재명 대표와 자당 의원들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법원내 진보적 성향의 판사들은 김명수 체제에서 주요 법원장 자리를 법관 추천제로 장악한 상황이다.
법원내 진보적 성향의 판사들은 김명수 체제에서 주요 법원장 자리를 법관 추천제로 장악한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는 듯,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송영길 전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영장심사에서 불구속 재판이 되도록 최대한 힘을 모을 때”라며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100% 부결시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사법 리스크 회피 계산은 대법원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종료가 오는 11월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5:4로 각하했다. 한 장관은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사들은 청구인 자격은 있지만 헌법상 권한을 침해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유남석 헌재소장이 퇴임전 검수완박 본안에 대한 위헌 심판이 열리게 되면, 그 결과는 예단할 수 없으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유남석 소장 후임으로 보수 헌재소장이 임명될 경우, 검수완박 본안 헌재 판결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칫 국가 사법기능이 마비 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원 내부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신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가 그동안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 날선 비판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소위 김명수 대법원장 이후에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욱 추락했다”며 지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또 이 후보는 2021년 대전고법원장에 취임하면서는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 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당시에도 김 대법원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이러한 비판이 인사청문회에서 부담이 되었던 듯, 대법원은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대법원은 김명수 체제를 계승할 것’이라는 60페이지 분량의 설명문을 배포해 논란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법원내 진보적 성향의 판사들은 김명수 체제에서 주요 법원장 자리를 법관 추천제로 장악한 상황이다. 유창훈 판사 역시 김명수 전 대법원장 때 부장판사를 거쳐 영장전담 판사가 됐다. 법원 요직에 여전히 김명수 키즈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들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추진할 사법부 개혁에 어떻게든 저항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의 정치 판결

그러한 징후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고 있다. 통상 벌금형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명예훼손 사건에 징역형을 선고한 것을 두고 “담당 판사의 정치 성향이 반영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것.

이 사건의 판사인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판사는 고교, 대학 시절뿐 아니라 법관 임용 후에도 친야(親野)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글들을 페이스북에 다수 올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의 정치 성향이 형량과 연결됐다는 비판을 뒷받침하는 박 판사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법원 일각에서는 심각하게 보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 대법원도 뒤늦게 진상 파악에 나섰다. 

이 밖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오현석 부장판사는 2017년 8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한 직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이란 제목의 글에서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해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미리 부장판사는 2020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의 1심 재판장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검찰 개혁을 시도한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반격이라 보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고 발언해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김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이례적으로 4년간 근무하면서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전 정부 관련 사건들을 심리했다. 김 부장판사도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 최창석 부장판사(현 변호사)는 2020년 4월 법률신문에 ‘사법 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에 대한 1심 무죄 선고를 비판하며 “향후 재판에서 정의와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결론이 도출되길 희망한다”는 글을 올려 법원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최한돈 부장판사(현 변호사)가 2020년 8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을 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변호사)의 명예훼손 사건 2심 재판장을 맡아 1심 무죄 판결을 깨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후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최 판사도 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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