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보는 세상] R&D 예산 축소하면 국가 성장동력 유지 어렵다 
[데이터로 보는 세상] R&D 예산 축소하면 국가 성장동력 유지 어렵다 
  • 박성현 미래한국 편집위원·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1.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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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연구개발(R&D)비는 그 나라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모두 R&D의 투자, 정책, 전략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EU 등 글로벌 주요 국가의 중장기 연구개발비 동향은 모두 연구개발비의 급속한 확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의 자료에 의하면 2019년 주요국의 R&D 투자는 미국(6575억 달러), 중국(5257억 달러), 일본(1733억 달러), 독일(1475억 달러), 한국(1025억 달러)의 순으로 미국이 단연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의 연구개발비 연평균 증가율은 중국(15.7%), 한국(9.43%), 독일(5.44%), 미국(4.81%), 일본(3.0%)의 순으로, 중국이 미국을 바짝 따라가고 있다. 한국은 2000년 이후 매년 높은 수준의 R&D 투자 증가가 있어 왔고, 지난 5년간에도 연평균 10.9%의 증가가 있었다. 

10월 20일 대전 유성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기술사업화 박람회 및 우수 성과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
10월 20일 대전 유성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기술사업화 박람회 및 우수 성과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

1996년부터 2020년까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을 비교해 보겠다. 여기서 R&D 투자는 정부 예산만이 아니고 민간(사기업) 투자까지 포함한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이 5.44%로 1위이고, 한국이 4.81%로 2위이다. 즉, 한국은 전 세계에서 GDP 대비 R&D 투자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다. 3, 4위는 스웨덴, 벨기에이다.

미국은 5위, 일본은 6위, 프랑스는 13위다. 그러나 2000년 이전에는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한국이 전 세계 평균 정도로,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스웨덴보다 낮다. 등수로 따지면 10위 정도로 프랑스와 비슷하다. 2020년 현재 한국의 R&D 투자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2000년 이후 국가적으로 R&D 투자를 꾸준히 늘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 한국만큼 21세기에 R&D 투자 비율을 높인 나라는 없다. 

한국은 2000년에 R&D 투자 비율이 2.23%였던 것이 2020년에는 4.81%로 2.58%포인트 높였다. 전 세계 1위이다. 2위는 벨기에로 1.54%포인트에 불과하고, 3위는 중국으로 1.51%이다. 한국 정부의 R&D 투자에 대한 높은 의지를 볼 수 있다. 이는 모든 분야 발전의 원동력이 R&D 투자라는 인식을 한국의 역대 정권에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과학기술력이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최근 세계 주요국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R&D 투자를 하는 분야는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적극적인 첨단 신기술 개발의 추진이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반도체, 빅데이터, 6G, 로봇, 우주 등 관련 첨단 신기술 분야는 미래산업의 핵심으로,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요소로도 간주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들 첨단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 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 강화이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 기술 개발 및 투자는 모든 나라에 필수적인 사항이며, 국제사회는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애플, 구글, BMW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도 100% 재생에너지 전력만을 사용하겠다는 RE100 선언에 참여하고 있으며, 2021년 11월 현재 세계 342개 기업이 동참 중이다. 탄소중립 기술 연구는 모든 국가의 필수적인 연구 과제이다. 

셋째,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가속화이다. 지금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이며, 디지털 전환 기술에서 앞서가지 않으면 선진국을 유지하기 어렵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런 점을 인식하고 디지털 경제에 필수적인 기술들(인공지능, 빅데이터, 양자 컴퓨터, 초고속망, 통신 기술 등)을 위한 R&D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넷째, 감염병 신속 대응체계 구축이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할 주기적 감염병 대응을 위해 보건·방역 시스템 고도화 및 예측 기반의 신속 대응체계 구축 연구에 R&D 비중을 높이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현재와 미래 감염병 대응을 위해 감염병 감시체계 통합, 디지털 기술 활용, 개도국 지원, 지속적인 투자 및 자금조달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도 위와 같은 주요국들의 연구개발 전략 방향을 공유하면서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연구개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는 중기적 관점에서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새롭게 구축되고 있는 미래 신기술 기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의 방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설계, 소재, 부품, 생산 그리고 시장으로 연결되는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향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할을 고려하고 R&D 전략을 통해 이를 준비해야 한다. 

첨단 신기술·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 주력해야

현재 우리는 부품과 생산 영역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향후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설계, 소재 영역에 속하는 가치사슬의 상위 영역으로 우리의 역할을 이동시켜야 한다.

현재 설계 영역은 미국, 소재 영역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신기술의 확산과 함께 신산업이 출현되는 시기에 우리의 역할을 설계와 소재 영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국가의 R&D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미래 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소재의 개발과 함께 설계 영역 관련 기술개발과 인력 양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R&D 투입이 가장 큰 동력이다.

정부는 지난 8월 29일 국회에 제출하는 내년 총지출 예산이 올해에 비하여 2.8% 늘어난 656조9000억 원이라고 밝히고, 이 중 정부 R&D 예산은 올해 31조1000억 원보다 5조2000억 원 감축시킨 25조9000억 원으로, 16.6%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올해의 물가상승률  (약 4% 예상)을 감안하면 20%가 넘는 수준의 감축이다. 정부 R&D 예산이 감축되는 것은 199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내년 예산이 2.8% 늘어난 것에 비교하면 R&D 예산은 국가재정순위에서 한참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내년 정부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는 소식을 듣고 원로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 놀라운 심정을 금할 길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나라 살림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과학 입국, 기술 자립’을 주창한 이후 과학기술인들은 똘똘 뭉쳐 정부의 R&D 지원을 받아 과학기술 연구에 몰두하여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문턱에 올려놓았다고 자부하고 있다. 과학기술인들은 국가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은 R&D 이며, 국가 재정 사정이 어렵더라도 R&D 예산은 계속 조금씩이라도 증가하리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현 정부에 들어와 무너지게 되었다. 

내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대폭 삭감된 배경에는 비효율적인 R&D 집행, 가식적인 연구 결과 발표, 예산 나눠 먹기,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연구개발비가 뿌려지기와 같은 부정적 사례가 만연한다는 문제의식이 작용하였다고 한다. 민간 R&D는 비교적 효율적으로 운영되지만, 정부 R&D 지원에 의한 공공 R&D에서는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유사·중복 과제들이 예산지원을 받았거나, 기업 보조금의 형태로 예산이 사용되었거나, 예산을 배정받기에만 급급하여 내실이 없는 연구를 하거나, 시일이 소요되는 연구인데도 연구 예산 집행기관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해 연구자가 보고서 작성에만 급급하여 제대로 된 연구가 안 된다거나, 실질적인 산학연계가 필수적이나 겉으로만 산학연계를 하는 척하는 사례 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문제점들이 부각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R&D 이권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언급하면서 대폭적인 R&D 예산 삭감 방안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2024년 예산안을 자세히 보면 2023년과 비교하여 내년 예산이 줄어든 분야는 R&D(-16.6%) 25.9조 원, 교육(-6.9%) 89.7조 원, 일반·지방행정(-0.8%) 111.3조 원으로 세 분야뿐이다. <그림 1>을 보면 기타 모든 분야는 예산이 증액되었고, 가장 높은 증가는 외교·통일(19.5%) 분야이고, 그다음은 보건·복지·고용이다. 

정부의 내년 R&D 예산이 25.9조 원으로 올해보다 16.6% 삭감되었고, 그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학기술 R&D 예산(‘국가 연구개발 사업’ 예산이라고도 부름)은 21조5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13.9% 줄었다. 이 안은 국무회의(8월 29일)에서 총괄적인 각 분야별 예산안 발표 이전에 이미 8월 2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내년 과학기술 R&D 예산을 총액 21조5000억 원으로 의결한 것이다. 

과학기술 R&D 예산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림 2>와 같다. ‘유사·중복 사업, 관행적·나눠주기식 사업, 기업 보조금 성격 예산’을 대폭 감소(76.2% 감축)한 것은 이해가 된다. R&D 예산 사용의 대표적인 비효율적 사례라고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보다 내년에 기초연구비가 6.2% 감축되고, 출연연 지원 예산도 10.8% 감축된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예산 삭감이라고 판단된다. 내년 기초연구비는 2조4000억 원으로 총액(21조5000억 원) 대비 11.2%에 해당한다. 

선진국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연구개발 미래 전략은 인공지능을 비롯하여 모든 첨단기술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비중의 증가이다. 기초연구를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개가 가능할 때 돌파 기술(breakthrough-tech) 개발의 확률이 더 높아질 수 있으므로,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특히, 기초연구의 역사가 짧고 관련 기반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탈추격형(Post-Catchup), 즉 새로운 창의적 결과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의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진국들이 하는 것을 벤치마킹하여 향후 정부 연구개발 투자 중 최소 30% 이상은 기초연구에 투입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기초연구는 우수 인재 양성과 연계되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기초연구비의 삭감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기초연구자들의 연구 의욕을 상당 부분을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출연연 예산을 10.8% 삭감한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출연연 연구자들의 사기를 꺾는 예산 기획이다. 그러나 <그림 2>에서 보면 과학기술 R&D 예산 중에 핵심 기술들인 첨단 바이오, 우주, 반도체, 양자 등에서 예산이 많이 증액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에서 30%는 기초연구에 투자가 바람직

현 정부는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2023∼2027)’을 지난 2월 2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확정하면서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국민 삶의 질 향상, 정부 R&D의 지속적인 확대’ 등의 비전을 밝혔다. 매우 의욕적이고 바람직한 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을 선포한 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정부 R&D 예산을 작년 대비 16.6% 삭감한 것은 중장기 투자전략 차원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면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2023∼2027)’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정부 R&D의 지속적인 확대’를 발표한 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은 어디로 갔는가? 

정부가 내년 R&D 예산을 당초 계획보다 대폭 삭감하는 과정에서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10월 29일 공개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분석’에서 과기정통부가 R&D 예산 감액 과정에서 과학기술기본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기본법 제12조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주요 국가 R&D 사업 예산을 배분·조정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6월 30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이보다 약 2개월 늦은 8월 22일 내년 R&D 예산 배분·조정안을 확정해 결국 관련 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배분·조정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률에 정해진 기한을 넘겨 제출된 안건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예산정책처는 예산안 총괄분석에서 “R&D 예산이 상당 부분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감액 편성됐다”고 평가하면서 “국회는 이번 예산안 심의에서 정상 추진 중임에도 일괄 감액된 사업에 관한 투자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특히 기초연구비의 감축은 대학의 연구 환경을 황폐화할 가능성이 있고, 출연연 지원 예산 감축은 출연연의 연구 의지를 꺾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산간을 태우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업이든 국가이든 간에 한 조직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인 R&D 예산은 ‘후퇴 금지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이러한 원동력을 막게 되면 그 즉시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높다.

마치 달리는 자전거의 속도를 갑자기 낮추면 자전거가 쓰러질 위험성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곧 예산 심의에 들어가는 국회는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국가의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정부 R&D 예산을 최소한 총지출 예산 증가율(2.8%)만큼 증액시켜 주기를 촉구한다. 세수 부족 등으로 증액이 어렵다면 작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동결시켜도 좋을 것이며,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부 R&D 사용에 큰 경종을 울리는 효과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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