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탐방] “내 가족과 이웃은 내가 지켜야죠”
[현장 탐방] “내 가족과 이웃은 내가 지켜야죠”
  • 인터뷰·정리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4.01.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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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자율방범대

인터뷰·정리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사진 권도한  미래한국 기자

우리나라에서 5대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 5위는 용인시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매년 공표하는 ‘지역안전지수’ 자료에 따르면 용인시의 범죄지수는 구별로 다르지만, 기흥구와 처인구의 범죄지수는 동일한 68.30이며, 수지구만 범죄지수 71.70으로 조금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지구의 범죄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수일 뿐, 전국 기준으로 상당히 낮은 지수이기 때문에 용인시 전체가 50대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용인시의 안전지수는 올해 만이 아니라, 2015년 조사가 실시된 이래 수위를 계속 차지해 왔다. 이러한 배경에 용인시의 자율방범대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기자는 먼저 용인자율방범대의 태동과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김종학 전 자율방범대연합회 회장이자 현 고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그게 85년이죠. 그때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율방범대 기동대를 만들었어요. 그때는 용인 지역들에 파출소 인력도 거의 없었어요. 순찰 경찰이 자전거 타고 다닐 때 우리는 오토바이로 순찰 기동대를 만들었던 거죠.” 

김종학 용인시 자율방범대연합회 고문의 말이다. 50년 넘게 용인시 처인구에서 양복점을 해 온 그는 용인시 자율방범대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전국 최초로 자율방범대 조직에 매뉴얼을 갖추고 회원들을 교육하고 시스템을 갖췄다. 

“우리에 맞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우리에 맞는 시스템을 가지고 운영을 했던 거지. 그걸 가지고 용인자율방범대연합장을 4대까지 맡아 했어요. 12년 동안 하면서 경기도 31개 시군 부대장을 4년 했는데...그때 회원 심사와 교육, 운영 제도를 만들어 경찰청장, 국무총리, 대통령 표창까지 내리 3년을 우리 용인이 받았지요.” 

김종학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 고문 / 전 연합회장
김종학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 고문 / 전 연합회장

최초로 매뉴얼을 가졌던 용인자율방범대

김종학 연합회 고문은 군인으로 내무반을 이끌 때의 경험을 살렸다고 한다. 

“우리는 순찰시 점호를 했어요. 무전기로 점호를 취했어요. 부대에서 일지 쓰듯이 시간별로 일지에 써서 근거를 남겼죠. 누가 오더라도 딱 보면 6하원칙에 의해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고 순찰도 회원이 참여했는지를 점호로 파악했던 거예요. 그런데 무전기로 점호할 때 군대처럼 음어를 사용했어요. 그러니 회원들 간에 결속력도 높아지고 정말로 뭔가를 한다는 그런 긴장감도 생기는 것이죠. 지금도 후배 대원이 나더러 ‘형님 그 음어 안 잊어버렸어요?’라고 물어요. 그래서 ‘야 인마 30년도 더 됐는데 다 잊어버렸지, 그걸 어떻게 외우고 있냐?’라고 했더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아유 그걸 잊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라는 거예요.(웃음) 그렇게들 진지하고 의미 있게 했던 것이죠.” 

김종학 고문은 12년간 용인시자율방범대를 이끌게 된 동기를 전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향심의 발로였다고 말한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용인은 도농복합 도시였음에도 개발되지 않은 전형적인 농촌 구조를 가진 지역들이 광범위하게 있었다. 그러한 지역에서 문제는 치안보다 환자가 발생하는 응급 상황이나 화재, 교통사고에 대응하는 문제들이 사실 더 중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종학 고문은 자율방범대에 처음으로 응급환자에 대한 처치 교육을 했다. 

“소방서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역마다 도로를 다 알잖아요. 의용소방대가 있어도 불만 끌 줄 알았지 어디로 가야 막히지 않고 길이 끊어지지 않는지, 그런 라인을 잘 몰라요. 그런데 우리 순찰 하는 친구들은 동네 어디가 좁고 어디가 넓은지 길을 다 알잖아요. 그래서 동네에서 불이 났다고 하면 먼저 우리가 출동해서 소방차 안내를 했어요. 해놓고 또 응급환자 생기면 우리가 먼저 심폐 소생하고 그랬죠. 그때 우리가 119 역할도 한 거죠.”

김 고문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탁월한 협상가였다. 용인의 자율방범대가 민간 신분이라는 점을 활용해 경찰과 군, 그리고 군과 민간 사이의 갈등을 절묘하게 풀어내고 상호 협조하게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던 것.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

“그때는 군인들과 민간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조정할 마땅한 주체가 없었어요. 경찰이 무턱대고 끼어들 수도 없고, 군인들 기물이나 시설에 민간인 불편이 생겨 갈등이 벌어지면 분위기가 험악해지죠. 휴가 나온 군인들과 주민들 사이에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 넓은 용인에 파출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런 상황을 누가 조정할 수 있겠어요. 그때 우리 자율방범대원들이 조정 역할을 했어요. 우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군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초기에 함께 열심히 활동한 멤버들 가운데 헌병 출신들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부대장하고 협상을 했죠. ‘우리가 군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데, 대신 조건이 있다. 우리 자율방범대 회원들 가운데 장사하고 일당 벌어 살며 봉사하는 회원들에 대해 예비군 소집 훈련을 제외할 수 있도록 해달라’ 사실 당연한 것 아니에요? 지역에서 경찰을 대신해서 심야에도 봉사하는 이들은 그런 혜택 정도는 줄 수 있잖아요. 당시 예비군 훈련 대상자는 불참자를 고려해 2배수 정도 여유 있게 소집했는데 군에서 대상자 사정을 봐 융통성이 있었던 때였어요. 부대장이 흔쾌히 승낙하더라고요. 그게 서로를 위해 윈-윈하는 것이었으니까.” 

김 고문의 이러한 중재 역할은 당시 군과 경찰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주민들에게는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때 우리 용인자율방범대가 처음으로 회원 모집할 때 신원조회를 했어요. 제가 제안했던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경찰을 보조하는 회원이 폭력이나 반사회 범죄 경력을 갖고 있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게다가 당시만 해도 용인은 서로 잘 아는 지역사회라서 그런 범죄 경력을 가진 이가 자율방범대가 되면 주민들이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경찰에 이를 건의했더니 서장님도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우리는 용인자율방범대는 믿을 수 있는 회원들로 구성된다는 믿음을 주민들에게 준 것이죠. 우리의 이런 관리 원칙이 전국 기준이 된 겁니다.” 

마지막으로 김 고문은 기억에 남는 용인자율방범대 활동을 이야기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아시죠? 용인이 화성에서 가깝잖아요. 그때 전국이 난리였는데 제가 건의를 했어요. 우리 용인자율방범대가 화성과 경계지역에서 들어오는 모든 외부 차량을 검문하겠다고. 그랬더니 서장님이 ‘그걸 해서 뭐하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차트를 만들어 참석자 모두에게 브리핑을 했어요. ‘용인에서 외부 차량이 들어올 때 검문을 하면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한다. 그러면 용의자 뿐만 아니라 모방 범죄자들은 용인시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만일 화성연쇄살인범이나 모방범죄범이 용인에 들어와 살인 사건을 만들면 어떻게 되겠나. 이 설명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죠. 서장님이 ’야! 당장 시행해!‘ 이러시더라고. 그런데 성과가 엉뚱하게 났는데, 차량 검문으로 탈세범, 기소중지자, 수배자들이 엄청 잡힌 거예요.(웃음)” 

김종학 용인자율방범대 고문은 자신이 양복점을 한 것이 그런 봉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자율방범대 회장을 할 때 새로 부임하는 경찰서장이나 과장들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무슨 일을 하느냐는 거였어요. 그래서 양복점하고 있다고 하니 ‘그래요?’ 그러면서 ‘나중에  옷 한 벌 맞추러 가야겠네’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놀리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이런 일을 하는 제가 무슨 이익을 볼 만한 사업이나 정치나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신뢰를 보였던 것이죠. 사실 저도 당당했고요. 실제로는 경찰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아무도 안 왔어요. 나중에 이임하고 나서 오는 이가 있더라고.(웃음)" 

김광열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장
김광열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장

시민과 소통이 핵심

김종학 고문과 인터뷰를 마치고 김광열 현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장을 찾아갔다. 현재 용인방범대의 상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용인시자율방범연합대(연합대장 김광열)는 경기도 용인시 신갈, 양지지대 등 30개 지대에 임원을 합하여 총 1000명의 대원으로 조직되어 내 지역은 내가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지역 순찰을 펼치고 있다.

대원들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낮에는 여성대원이,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1개조에 4~5명씩 편성해 매일순번제로 남자대원이 야간순찰을 실시하며 특히 취객들이 많고 절도 및 강도사건들이 발생되는 지역을 중점으로 기흥구와 수지 지역에 유흥업소가 많은 취약지역과 청소년들에게 불건전한 장소로 제공되는 폐교 등 주민생활안전을 위해 방범순찰 하고 있다. 

경찰과의 유기적 활동으로 지역 안정에 크게 기여하는 등 수능일에 수험생 수송과 음주자 자택 귀환, 더 나아가 현행범 검거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용인자율방범대원들은 그 지역의 주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어디가 취약지역인지 경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어 명절이나 피서 철이 오면 빈집털이가 많아 예방순찰을 더 강화하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가 발대식을 가졌다. 사진 용인시청 제공
지난 11월 21일 용인시자율방범대연합회가 발대식을 가졌다. 사진 용인시청 제공

또한 야간 순찰 및 지역자생활동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선행도 실천하고 있다. 한 예로 대원들 노래자랑, 윷놀이 등 행사에서 성금을 마련하여 장학금 전달과 20kg들이 쌀을 매년 지속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05년 10월 발대식 후 용인자율방범대는 그동안 용인경찰서장으로부터 포상을 받을 만한 방범 공로대원들에게 감사장을 직접 받는 등 모범적인 자율방범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김광열 연합회장과 전화로 약속 장소를 연합회 사무실로 잡았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컨테이너로 된 가건물이었다. 올해 자율방범대가 법정단체가 되었지만 여전히 초소와 같은 시설물 예산이 지원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 연합회장은 기자를 반갑게 만나줬다. 

“거슬러 올라가면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2005년 새롭게 자율방범대를 발족을 했어요. 11개 지대로 시작하면서 용인시 전체에 33개까지 늘려갔지요 한 1200명 운영을 했습니다. 2005년부터 제가 7년 동안 연합대장을 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다른 후임자한테 물려주고 나갔다가 2019년 다시 요청이 와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김광열 연합회장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자율방범대 조직과 문화도 변화해야 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뜻이 맞고 서로를 잘 아는 지역의 선후배들이 중심을 이뤘다면 이제 늘어난 인구와 다양해진 세대들에 맞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원들 간에 친목이 중요하게 등장했다. 

용인시자율방범대는 치안과 범죄 예방 외에도 각종 주민봉사 활동에 나선다. 사진 용인시청 제공
용인시자율방범대는 치안과 범죄 예방 외에도 각종 주민봉사 활동에 나선다. 사진 용인시청 제공

“다시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로 인해서 굉장히 위축이 됐어요. 매우 힘들었지만 정부에서도, 경찰서, 경찰청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 줬습니다. 이제 다시 뒷정리를 하고 새롭게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그전에는 1년에 두 번씩 체육대회를 크게 열어 33개 지대와 파출소, 지구대가 연합을 해서 음식 만들어 와 가족단위로 엄청 크게 친목 교류를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서 참 많이 어려웠지요.” 

그런 용인자율방범지구대의 운영 노하우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차원으로 발전했다. 

“각 지대의 대장을 중심으로 대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봉사의 길을 잘 다져놨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용인경찰서자율방범대 활동을 배우러 오고는 합니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순수한 봉사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자율방범대를 만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 가족과 내 이웃은 내가 지킨다는 용인자율방범대의 모토는 주민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장이다. 과거처럼 관이 주도하지 않고 민이 주도함으로써  효율을 높이고 참여를 통한 시민들 간의 우정과 공동체 정신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갈등과 분열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에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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