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
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
  • 미래한국
  • 승인 200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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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박사의 전략이야기
▲ 이춘근 박사

행인이 산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다고 하자. 어떤 행인은 곰을 보았을 때 총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행인은 작은 칼 하나 밖에 없었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두 행인이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총을 가지고 있는 행인은 달려드는 곰에게 총을 쏠 것이고, 칼 밖에 없거나 혹은 비무장인 행인은 도망가는 방법 밖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같은 사람일 경우라도 그가 총을 들고 있을 경우와 칼을 들고 있을 경우 곰을 만났을 때 행동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이 글은 9·11 이후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리스트 세력에 대한 대응 방안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의 천국과 권력의 세계에 관하여(Of Paradise and Power) 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케이건은 지금 유럽은 전쟁과 갈등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천국과 같은 곳이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미국이 살고 있는 세계는 아직도 권력과 힘의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세계관이 다를 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힘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대처 방법이 다르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케이건은 과거 미국이 허약하고 유럽이 강대했던 시절 국제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태도는 지금과 정반대였다고 설명한다. 유럽은 막강하던 시절 국제문제가 발발하면 이를 정면 돌파해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지만 미국은 문제를 회피하는 식의 해결 방안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능력이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르게 만든다는 사실은 국제정치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정치의 주류 이론인 현실주의 이론 중 제3세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적 학자인 미어셰이머(John Mearsheimer)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국제정치의 논리가 다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어셰이머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모두 권력과 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세계 정치 전체가 권력과 힘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며 유럽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유럽 국가들이 비교적 평화적인 국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의 힘이 유럽지역에 확실하게 개입된 결과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미어셰이머 교수는 미국이 유럽에서 손을 뗀 상황을 가정해 보라고 말한다. 그 경우 영국과 프랑스,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독일이 오늘같이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서 미어셰이머 교수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그리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지도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었다는 사례를 예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힘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미국이 독일 통일 이후 유럽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독일의 통일은 가능했다는 논리다.

한국인 정치학자 중 독일 대학 사회과학계열 교수로서 임명된 최초 교수라는 박성조 교수는 독일 통일 요인을 서독인의 의지와 결단력, 서독의 경제력, 미국의 지지 등 3가지로 보는데 그 중 독일 통일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요소는 미국의 지지였다고 분석한다.

외교 및 국제정치 관련 자료들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유럽 국가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에 관한 비밀문서들이 최근 공개됐다.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된 바는 유럽도 역시 권력과 힘이 작동하는 국제정치의 영역이며, 미어셰이머 교수의 주장이 증명되는 것 같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서방은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지만 그걸 우리가 막기를 바라고 있소. 우리와 서독 간의 충돌을 유발해서 장래에 우리와 독일이 ‘작당’할 가능성을 없애려 하는 겁니다.” 정말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일부 학자들이 말하는 프랑스, 영국, 독일은 전쟁을 할 가능성이 없는 세계로 접어 들었다는 말은 완전히 허구일 뿐이다.

유럽지도자들은 당시 입으로는 ‘독일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앵무새처럼 말했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자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레이건 대통령의 소련 붕괴 전략을 적극 지지했던 대처 영국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 2개월 전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나 “독일 통일은 영국이나 서유럽에 이롭지 않아요. 나토의 공식 발표와 다르게 들리시겠지만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독일 통일은 전후 국경선에 변화를 가져와 전세계의 안정을 뒤집고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습니다. 독일 통일을 막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당시 러시아 관료들은 서유럽은 한결같이 독일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으며 특히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 통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자연재해 대비 합동 군사협력’으로 위장한 프랑스-러시아 군사동맹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올릴 정도였다. 독일의 통일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 군사동맹이라도 체결하려 했던 것이 프랑스의 속마음이라는 것은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이 이미 잘 가르쳐 주는 바와 다를 것이 없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세계적 지성인 자크 아탈리는 당시 미테랑의 보좌관이었는데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을 만나 “독일 통일을 눈앞에 두고도 소련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걸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다그쳤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기 약 반 년 전인 1990년 4월 아탈리는 미테랑 대통령에게 “만약 이런 일(독일 통일)이 일어나면 나는 화성에 가서 살겠다”라고 말했다 한다.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자인 중도 좌파 계열의 아탈리의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의 보장으로 독일은 통일을 이룩했고, 미국의 군사적인 보장으로 유럽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셰퍼드라는 맹견(?犬)으로 상징되는 나라다. 미국이 독일이라는 셰퍼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조건으로 유럽은 할 수 없이 독일의 통일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런 유럽을 평화가 완성된 곳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한반도의 통일도 마찬가지다. 주변국들은 통일된 한반도를 속으로는 전혀 바라지 않는다. 중국,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와 현상유지’를 강조하는데 그것을 권력 정치적 용어로 말한다면 ‘통일 반대’라고 해석해도 될 것이다. 우리가 소원이라고 노래하는 ‘통일’은 지난 60여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타파를 통해서 이룩되는 일이다. 그래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가져야만 한다.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역할은 한반도 통일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반대하는 주변 강대국을 설득하고, 강제하고 그들의 원하는 것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나라가 현재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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