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진 주사위’ 세종시 수정안은?
‘던져진 주사위’ 세종시 수정안은?
  • 미래한국
  • 승인 200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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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리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 정운찬 국무총리가 11월 4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세종시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기본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 뉴시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세종시가 아주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원안대로 다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9월 3일,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말이다. 이 같은 발언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 선언’으로 여겨졌고, 정치권은 연일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세종시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4년 전 통과된 법안이 재거론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더욱이 이번 논란은 정부 대 야권의 구도를 넘어, 여당 내부에서도 계판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백년대계를 위한 국책사업이지만,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은 총리 뒤에 숨었고, 한나라당은 청와대 눈치만 살피며 친이-친박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야당 또한 여론수렴은 뒷전이고, 정부여당에 무조건 반대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일명 행복도시의 공식 명칭은 세종특별자치시다. 세종시 관련 기본 법(안)은 두 가지다.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행복도시건설법)과 ▲세종특별자치시설치법(세종시법)안이 그것이다.

세종시 건설의 기본 방향과 정부 부처 등의 이전 계획을 규정하고 있는 ‘행복도시건설법’은 2005년 3월 제정돼 현재 시행 중이다. 세종시의 법적 지위와 관할구역 등을 규정하는 ‘세종시법’안은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치권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행복도시건설법’이다. 즉, 흔히들 혼동해서 얘기하는 ‘세종시법’의 처리 지연은 정부기관 이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안이다.

세종시, 수도이전보다 더 나쁜 결과 우려

국토 균형발전을 모토로 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은 충남 연기군 일대 7,291만㎡에 중앙행정기관과 첨단 지식기반산업을 유치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정운찬 국무총리는 세종시 원안 추진의 핵심인 정부부처 이전을 행정 비효율이라고 지적했다. 9부 2처 2청이 내려가도 인구 유입과 고용 창출이 없으면, 당초 기대했던 복합도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족도가 6~7%밖에 되지 않아 ‘유령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행복도시건설 논란의 불씨는 16대 대선에서 지펴졌다. 이를 국론분열로 타오르게 한 것은 노무현 정부다. 2002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충청지역 주민의 표를 공략한 그의 발언은 민심을 흔들었고, 이는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로드맵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었다. 1년여 만인 2004년 1월,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본 법안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는다.

수도 이전에 제동이 걸린 노무현 정부는 후속 조치로 ‘행정특별시건설안’ 추진을 발표했다. 동시에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2005년 2월, 당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원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대표 발의한다. 수도이전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강행 처리된 것이다.

“광복 이후 최대의 포퓰리즘”

‘모양만 바꾼 수도이전법’이라는 비난 여론 속에 법안 논의과정은 더욱 격렬해졌다. 현 경기도지사인 김문수 의원과 국민권익위원장인 이재오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결사저지에 나섰다. 법사위 회의실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못질을 한 뒤, 17시간 동안 점거하기도 했다.

이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당내 논쟁 끝에 ‘행복도시건설법’을 권고적 당론으로 찬성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행복도시건설법’은 2005년 3월, 여야합의(?)로 통과됐다. 이는 지금까지도 충청 표심을 의식한 ‘원칙 없는 합의’로 여겨지고 있다. 재적 과반수도 안 되는 찬성 표결(46:37, 재적 120명)에 의한 당론결정이었고, 교섭단체 소속 의원 중 단 8명만 찬성한 법률(반대12, 기권2, 불참98)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 또한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충청도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였다는 후문도 나오고 있다.

당시 ‘행복도시건설법’ 통과에 반대하며, 의원직(한나라당 비례대표)까지 내놓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특정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깊은 생각 없이 수도이전을 공약함으로 시작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종시는 광복 이후 최대의 포퓰리즘”이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업을 결정하는 법안이 2005년 2월 5일 발의되어, 3월 2일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도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설 연휴와 3·1절, 주말 휴일 등을 제외한 실근무일로 따지면, 사실상 14일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정책토의와 여론수렴 과정의 부실을 방증한다.

행복도시건설법이 통과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이란 글을 통해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 분이 행정수도 이전을 시도한 것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가지고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본인도 같은 마음임을 전했다.

이 글에 대해 정면으로 맞선 사람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서울시장 시절 이 대통령은 ‘행정수도에 대해 저 이명박이 말씀드립니다’라는 답장 형식의 글을 발표했다. “수도분할을 중지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전한 그는 “행정도시건설은 수도이전보다 더 나쁘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행정도시가 들어설 연기·공주 지역을 중부권의 경제·교육·과학 도시로 육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17대 대선 전후와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행복도시 원안 추진을 여러 차례 약속한다. 이 역시 표를 의식한 정치적 행보였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제라도 본인의 소신을 지켜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도 곳곳에서 나온다.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세종시 건설을 처음부터 반대했다는 것도 다수의 견해다. 정운찬 총리가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 “행정부처 보다 기업이나 대학이 가는 게 맞다”고 한 배경도 이 대통령의 의중일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시 골격 어느 정도 마련’얘기 나와

이처럼 세종시 건설은 지난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정치적으로만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에 휩싸인 논쟁이 아닌 건설적 토론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의 자문과 실무기구인 ‘세종시추진정부지원단’을 통해 수정안을 마련 중이다. 이르면 오는 12월 중순쯤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뒤, 여론수렴을 거쳐 내년 2월 임시국회까지는 관련법 정비 작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 정부는 기존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의 명칭과 내용 개정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세종시 수정의 기본 골격은 어느 정도 마련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기존에 알려졌던 기업중심도시가 아닌 교육과학중심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이미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은 정부 부처 이전의 백지화를 담은 개정안을 내놓았다. 임동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을 살펴보면, 도시건설의 기본방향을 행정중심도시가 아닌 ‘녹색성장첨단복합도시’로 변경했다. 또한 현행법에서 정부 부처 이전과 관련해 규정한 조항(16조)은 삭제했다. 이는 세종시의 향후 구상과 관련해 법으로나마 다양한 가능성을 미리 열어두기 위함이란 분석이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 부처의 이전을 통한 행정중심도시 건설이라는 기본 골격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국무총리실 등 이전 대상 부처를 고시가 아닌 법으로 직접 규정해 2012~2014년 이전 완료를 강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세종시로 옮겨갈 정부 부처에 대한 고시를 미루고 있는 현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며 원안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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