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유화적 제스처는 없다”
“北 유화적 제스처는 없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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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신년사설 대남비방 생략·평화협정 제안은 내부위기 반영"

2010년 새해를 맞이하여 남북관계의 변화와 진전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본격적인 남북협력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시사했는가 하면,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북한이 지난 1월 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당사국들에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제의한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유화적 제스처라는 분석도 있었다. <미래한국>은 북한 전문가인 유호열 고려대 교수를 만나 올해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과 분석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1월 15일 북한이 ‘보복성전’을 다짐하는 강도 높은 대남성명을 발표하기 이전인 12일 이뤄졌다. 협박성명을 두고 보자면 북한의 변화와 진정성을 일축한 인터뷰 내용은 적중했다고 할 수 있다.)

김범수 편집위원 bskim@futurekorea.co.kr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남비방을 이례적으로 생략했고 연이어 평화협정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두고 적지 않은 우리 언론들이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와 분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신년 공동사설에서 미국과 비핵화 관련 문제가 두 문단으로 나오는데 평화체제 그 다음에 비핵화, 이렇게 순서를 정해놨어요. 그것을 보면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평화협정 체결 문제는 핵문제보다 더욱 오랜 시간 공방을 벌여왔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이 달라지기 전에는 비슷한 공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신년 공동사설에서 짧게 얘기했지만 이는 상당히 많은 갈등을 내포한 표현이고, 실제로 금년에 북한은 대외관계,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개선보다는 내부적인 문제에 역량을 쏟아야 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술적인 입장표명으로 봐야죠. 2009년 중반 이후 보였던 ‘대화’의 모습들은 북한이 더욱 강경하게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하는 일종의 관리 차원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북한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며 회담을 제의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동안 해왔던 주장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70년대까지 남북 평화협정을 얘기하다가 70년대 중반이후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주장했어요. 96년에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핵을 동결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남·북한, 미국, 중국이 4자회담을 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요구해 미국과 북한이 협상의 주가 되고, 남한과 중국이 보조적인 참여자가 됐습니다. 여기서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나오다 보니 흐지부지 되다가 회담이 끝났죠. 앞으로 평화체제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다면 북한이 과거와 다른 입장으로 나올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해서 핵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6자회담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시간을 버는 전략으로 나올 것인지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 북한의 평화협정 제의가 ‘정전협정 당사국’을 대상으로 했는데, 한국이 전쟁당시 휴전을 거부하면서 정전협정에 직접 사인을 하지 않은 것을 북한이 악용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일단 한국이 논의에 포함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과만 얘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회담이 한국을 포함한 4자회담식으로 가더라도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분과위원회를 만들게 됩니다. 협정을 체결하는 분과가 있고, 또 협정을 체결하려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같은 경계선을 설정하는 분과도 있고, 평화협정 체결 관리와 감시 문제들이 논의되는 분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해 경계선을 정하는 문제 하나만 해도 팽팽히 입장이 맞서 있기 때문에 4자회담식으로 반복하면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 미 국무부는 북한의 평화협정 제의 직후 곧바로 거부하는 발표를 했더군요.

“지난해 말 보즈워스 특사가 북한에 갔을 때에도 같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9·19 비핵화 조치 이행이 모든 논의에 우선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비핵화 결정과 이행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평화체제도 그때 가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북한은 평화체제를 먼저 하고 비핵화를 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9·19공동성명에도 맞지 않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그동안까지는 비핵화를 안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화체제 논의 성과 없을 것

- 북한이 지난해 중반부터 일견 자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성과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MB정부의 성과라고 하면 비교적 원칙을 지켰다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원칙을 지켜 북한이 남북대화를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하나의 통로로 간주하지 않게 하고, 남북대화를 추진해가면서 6자회담이나 비핵화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북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의 성과입니다. 북한이 우리 정부가 과거처럼 회담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을 정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자산이죠. 또 미국과 일본, 중국과 한반도 문제를 상호조율해가면서 해결하는 외교적 네트워크를 강화한 것도 이명박 정부의 업적입니다. 그런 것들이 결국 북한을 종전과 다른 입장으로 나오게 한 것입니다.”


-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또 대북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없다’, ‘전략이나 비전이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상황자체가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은 3차 핵실험도 할 수 있지만, 우리 쪽에서는 백의 하나만 위험이 있어도 어떤 계획도 실행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선택의 제약이 있는 셈이죠.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다는 것은 북한을 끌어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거나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책을 편 것은 아닙니다. 북한이라는 아주 특이한 집단이 존재하는 것, 한반도라는 작은 지역에서 핵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 지정학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제약하는 부분 등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죠.

컨트롤 타워도 마찬가지에요. 노무현 정부 때는 비교적 청와대내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스텝들도 많았고 노 전 대통령이 이종석 전 장관에게 컨트롤 타워의 역할도 부여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어느 한 사람한테 그러한 역할을 줄 상황도 아닙니다. 외무부나 국정원, 통일부가 협의체를 통해서 대북문제를 조율해 나가고 있으니까 굳이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을 가지고 비난하기보다는 어떤 이슈가 나타났을 때 조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조율을 못했던 것 중의 하나는 지난번 북한이 미사일 발사했을 때 ‘PSI가입’을 지체 한 겁니다. 강력하게 대통령 다음으로 입장을 표출할 수 있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맞는 지적이지만, 지금의 협의체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직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 이명박 정부에서도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난 두 차례의 잘못된 경험이 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정황을 정부가 밝히지 않으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난 10월 중순에 우리 정부 고위직 인사가 싱가포르에서 북한을 비밀 접촉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회담을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고, 특사를 파견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를 만들어 놓은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면에서 성급한 측면이 있어요. 비밀접촉이 한번으로 끝나고 그 이후에는 공식 라인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은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정상회담은 필요하지만 정상회담 자체를 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통령의 업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제 버려야죠. 정상회담은 정상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한 회담으로 만들고, 방식이나 형식도 보다 투명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업적 쌓기 보다 제도적 기반 다져야

- 정상회담 장소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장소는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대신에 의제나 회담을 이루어가는 형식은 과거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비핵화를 정상회담의 주 의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잘한 겁니다. 북한도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의사 표명을 하고 있고, 6자회담에 나온다는 것은 비핵화 포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평화체제 문제까지 나오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굳이 의제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먼저 평화구상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랜드 바겐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겁니다.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도 예전 고이즈미 총리처럼 납치범을 데려오는 이벤트로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질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이나 비료지원은 인도적 차원에서 정상회담의 인센티브로서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제대로 하면 됩니다.”

-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물론 포함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UN인권이사회 이사국이고, UN총회에서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내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정상회담에서 제기 못할 이유는 없죠.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봐요. 정상회담을 단순히 정치적인 자산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을 통해서 북측에 줄 수 있는 임팩트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 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상시 대화기구 설치 등도 얘기했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괜찮다고 봐요. 연락사무소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얘기했던 부분입니다. 정부에서 파견했던 개성의 회담기구를 다 철수한 상태인데 이를 복구해서 협의체를 복원하는 것도 방법이고, 조금 더 진전이 되면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국군 유해 발굴을 추진하겠다는 것도 저는 진전된 제안이라고 봅니다.”

- 올해 북한의 내부사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 문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당장 급한 일입니다.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고, 환율 문제도 그렇고 예측 못할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럴수록 북한의 도발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카드니까요.”

- 최근 북한 붕괴론도 부쩍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만 보면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국가나 체제를 유지하는 기본틀은 크게 타격을 안 받고 있습니다. 당은 아직도 작동을 하고 있고, 군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서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건강이상이나 아니면 김정은 후계 구도가 안착되지 않을 경우 보안부서, 군, 당, 핵심부서가 혼란스럽게 되면 근본적인 체제변혁이나 붕괴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몇 백만이 죽어도 걱정하지 않고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각 부서에서 활동하고 있어 당분간은 북한 체제가 유지된다고 봐요.”

- 대북문제에서 이명박 정부가 반드시 처리해야할 과제가 무엇일까요.

“남북관계가 몇 년 안에 획기적인 진전을 보인다거나 핵 문제가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처리돼야 한다는 기대를 가지기 보다는 기반을 다져놓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여당이 북한인권법이나 전시납북자 관련 법안 등을 상정해 놓고 있는데 이와 같은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또 핵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 주변국가들과의 공조체제를 지금 잘하고 있다고 보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체제를 지금보다 훨씬 개방되고 융통성이 있는 체제로 바꾸는 데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안인 핵문제, 대북지원이나 이산가족문제는 이미 통일부가 해왔던 것입니다. 이 문제들을 앞으로도 북한과 교섭을 통해서 해나갈 수 있지만, 근본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은 차기 정부나 그 다음 정부를 위해서도 이명박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 북한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많은 국민들이 피곤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더욱 그런 것 같은데, 그들이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할 방안은 없을까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얘기할 정도로 북한 문제를 피곤해하기도하고 기피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통일이 된다고 해도 절름발이 통일 밖에 될 수 없습니다. 북한 문제는 남북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통일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통일이 10년 후 혹은 20년 후에 된다고 하면 통일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부담을 짊어질 세대가 바로 지금 젊은 세대들입니다. 통일의 수혜자도 젊은 세대들이고요. 젊은 사람들이 북한문제나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부에서 올해 북한 교육에 대한 예산도 늘리고, 탈북민 정책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런 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


유호열 고려대 북학한과 교수는...
시시각각 변하는 남북관계에 정통한 북한 전문가로 각종 언론과 세미나 등에서 섭외 일순위로 꼽히고 있다. 현재 민주평통 기획조정분과위원장, 통일부 자문위원, KBS객원해설위원, 국회 외통위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이사 등 시민단체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주립대학교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는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과 좌절(2004)’, ‘북한의 재외동포정책(2002)’, ‘남북화해와 민족통일(2001)’, ‘현대북한체제론(20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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