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정국(統一政局)’에 대비하자
‘통일정국(統一政局)’에 대비하자
  • 미래한국
  • 승인 201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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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전략이야기]
▲ 이춘근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대표


2010년 1월 1일 북한이 발표한 신년공동 사설은 특이했다. 그동안 해마다 발표됐던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이 예외 없이 남한 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격렬하게 비난했던 것과는 달리, 대남 비방과 대미 비방이 전혀 없는 놀라운 것이었다. 군사를 강조하는 대신 경공업 발전과 주민의 생활에 관심을 집중시키겠다는 논조였고 대화를 통해 남북한 문제를 풀어가자는 투였다. 2010년 신년 공동사설은 간만의 대남 평화공세였고, 이 같은 예외적인 공동사설을 본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은 2010년은 무엇인가 남북관계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 평화공세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초여름에 있었던 북한의 평화공세야말로 북한의 대남 평화공세 역사의 백미(白眉)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의 전략과 전술은 언제라도 극도의 유연성을 보이면서 자유자재로 바뀔 수 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신정(神政)적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전략 전술을 180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국전선 신년사설’ 함께 봐야

북한은 남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신년 공동사설을 발표한 바로 그날, 신년 공동사설보다 오히려 북한의 대남전략을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2010년 반제민전 구국전선 신년사설’도 함께 발표했다. 반제민전 구국전선 신년사설은 북한 대남전략의 더욱 구체적인 표현이며, 북한의 대남전략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문건이다.

2010년 반제민전 구국전선 신년사설은 “지난해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부정하고 6·15시대를 파탄 내려는 내외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었다. 미국은 자주통일에로 나아가는 우리 겨레의 힘찬 전진을 가로 막으려고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소동을 더욱 발광적으로 벌이면서 한반도 정세를 최악의 상태에로 몰아갔다”라고 정세 판단을 한 후, 금년을 “반전평화수호투쟁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룩해야 하는 해”라고 규정했다. 금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계 민중은 전쟁의 항시적인 근원으로 되고 있는 주한미군을 하루 빨리 몰아내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더욱 과감히 투쟁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동족을 ‘주적’으로 삼고 ‘선제 타격’ 망발을 줴치며 북침 전쟁 책동에 혈안이 되어 날뛰는 친미 호전 세력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북한이 진정 변했는가는 북한의 ‘국가 목표’가 변했는가의 여부로 판단되어야 한다. 북한의 국가 목표란 우선 김정일이 통치하는 국가를 튼튼하게 유지하고 나아가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불변의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은 대화도 하고 무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2010년 1월 1일 북한이 발표한 문건 어디에도 북한의 ‘국가 목표’가 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북한은 1월 1일 전혀 상반되는 두 개의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후 1월 하순에 이르는 짧은 기간 동안 거의 갈팡질팡, 우왕좌왕 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대남정책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신년 공동사설에 대해 남한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1월 7일 북한 탱크부대는 남한을 공격하는 가상훈련을 전개했다. 북한은 남한 깊숙한 곳의 지명이 쓰인 팻말 옆을 지나가는 북한군 장갑 차량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우리를 위협했다. 그러더니 11일 북한은 김일성의 유훈인 인민에게 “흰쌀밥과 고깃국을 먹이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회담을 개시하자고 제의했다. 2010년이 시작된 후 열흘 동안 냉탕 온탕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발끈한 북한은 15일 ‘성전(聖戰)’을 벌이겠다며 흥분했다. 17일에는 김정일이 육해공군 합동훈련을 참관했다며 240mm 방사포 사진을 공개했다.

대한민국 국방장관은 20일 북한이 핵공격 징후를 보이면 선제 타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놀랍게도 북한은 1월 23일 김영남의 이름으로 6자회담에 참가하는 데 필요한 3가지 조건을 제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다음날인 1월 24일에야 비로소 북한은 한국 국방장관의 선제 타격 계획을 ‘선전포고’ 라고 간주하며 “남한의 주요 대상을 송두리째 들어내겠다”고 큰 소리쳤다. 남한의 주요 대상을 들어내겠다고 말한 바로 그 다음날인 25일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통지문을 보냈다. 바로 그 다음날인 26일 북한은 해상금지구역을 선포하고 27, 28일 북방 한계선을 넘지 않는 수역 내에 100발 이상의 대포를 발사했다. 28일 대포를 발사하면서 북한은 미국에 유해 발굴을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조급해진 김정일 정권

이처럼 북한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되는 평가가 있다. 북한이 냉탕 온탕을 끊임없이 오락가락 하는 것은 북한의 전통적인 화전(和戰) 양면 정책이며, 북한의 정책 결정 구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에 무엇인가 문제가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북한과 같은 일당 독재 국가의 대외정책은 모두 수령의 재가를 받고 이루어지는 것일진대 그토록 빨리 냉온 주기가 바뀌는 것은 무엇인가 정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엄청나게 몸과 마음이 조급한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자신이 없는 모습이다.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북한 당국자들은 화폐개혁을 했다가 진정 충격적인 일에 당면했다. 북한은 국민을 완벽하게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제를 보유한 전체주의 독재국가(Totalitarian Autocracy)의 전형이었다. 국민의 행동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감시할 수 있음은 물론, 국민의 사상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나라였다. 국민들은 누구나 북한 정권이 하는 모든 일에 절대 찬성이라며 소리 높이 외쳐야만 하는 완전 통제의 병영국가였다.

그러던 나라의 아주머니들이 국가보위부 군관들에게 삿대질과 욕질을 하며 덤벼드는 나라로 돌변했다는 사실은 김정일 정권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북한은 급격히 갈팡질팡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 같은 모습을 보면 드디어 한반도에 통일정국의 시대가 다가왔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어느 날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해방이 된 후 정말 혼란스럽고 우여곡절의 긴 과정, 즉 해방정국(解放政局)을 3년이나 겪은 후, 우리는 겨우 반쪽자리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해방정국에 대한 우리 민족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북한은 종말을 향한 여로를 시작했고,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는 필연적으로 변동의 와중으로 빠져들 것이다. 흔히들 말해왔던 ‘급변사태’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시대는 불안정과 혼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우리는 다가오는 시대를 통일정국(統一政局)으로 규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잘 준비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통일정국의 시기는 대폭 단축되고 평화통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한반도는 장기적인 내란의 와중으로 빠져들 수도 있고, 주변 외세의 작동 결과에 따라 영구분단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가장 소망스런 결과인 한반도의 자유 민주 평화통일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다가오는 시기를 통일정국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政博·이화여대 겸임교수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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