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단체를 찾아서⑥ 국민행동본부
애국단체를 찾아서⑥ 국민행동본부
  • 미래한국
  • 승인 201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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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우파운동의 원조 / 애국투쟁의 길 10년
▲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지난 1월 12일 저녁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을 가득 메운 연세대 총동문회 신년모임에서 이른바 ‘수구꼴통’으로 알려진 인물이 ‘2010 자랑스러운 연세인상’을 수상하여 학내가 발칵 뒤집혔다.

김모임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동건 전 아나운서와 함께 이날 상을 수상한 사람은 바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71)이었다.

서 본부장의 수상이 결정된 직후 연세대 총학생회는 “서 씨는 지난해 6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덕수궁 시민분향소의 집기를 훼손하는 등 그동안 반민주, 반통일, 반인륜적 행태를 저질렀다”며 총동문회의 수상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반박성명이 발표되고 수상을 취소하라는 신문광고까지 나왔다. 그러나 연세대 총동문회는 서 본부장이 6·25전쟁시 전사자기록 찾기 운동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며 수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식 다음날인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국민행동본부 애국투쟁기, 법을 지키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다’의 출판기념회가 개최됐다. 이날 기념식은 국민행동본부의 지난 10년의 업적을 결산하며 축하하는 자리였다. 서 본부장의 주장대로 이 행사는 보수단체의 단결과 화합의 장이자 ‘화해와 용서’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정갑 본부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2004년 10월 4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지금도 국민행동본부는 투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애국투쟁기 머리말에서 “헌법과 진실과 국가이익의 파수꾼이 되어온 국민행동본부는 국가적 기억장치와 피아의 식별기능이 마비되어가는 세태를 걱정하면서 앞으로 한국의 미래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1995년 대령연합회로 시작

국민행동본부의 출범은 예비역대령연합회와 연관돼 있다. 1995년 4월 17일 대령연합회가 창립된 시기는 김영삼 정부 때 율곡비리사건으로 장성들이 줄줄이 구속될 무렵이다.

예비역 대령들이 일하던 군사문제연구위원회 소속 163명의 각 군 대령들은 “추락된 군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군 전투력의 핵심인 대령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뜻을 모아 ‘예비역대령연합회’를 조직했던 것이다.

연합회가 펼친 첫 운동은 6·25전쟁 때 이름도 없이 죽어간 3만여 명의 무명용사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낸 ‘전사자 기록 찾기 운동’이었다. 매년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되는 대령연합회 송년모임에는 600여 명의 회원들이 모일 만큼 대단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예비역대령연합회가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다녀온 뒤 김정일의 서울 답방설이 나돌 무렵이다. 그해 12월 서 본부장은 연합회 회장의 자격으로 “국민의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그 정체성을 밝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본 전우신문의 편집국장이 1면에 전5단 광고를 무료로 게재해주겠다고 연락했다. 2001년 1월 16일의 전우신문 광고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가 되었다. 청와대는 물론 국방부, 기무사, 재향군인회 등이 발칵 뒤집혔다. “이 단체가 뭘 하는 곳인가? 해체시켜라” 등 온갖 압력이 내려왔다.

당시 광고를 본 독자들이 “대령 아닌 사람들은 참가할 수 없느냐?”며 문의 전화가 잇달아 나왔고 이에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애국운동이라는 의미에서 ‘국민행동본부’라는 명칭을 병행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비역 대령들의 애국심 차원을 벗어나 보수민주주의라는 확고한 이념에 기초한 애국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국민의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2001년 1월 말 국민행동본부가 출범됐다.

지난 10년간 국민행동본부의 애국투쟁 기록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애국투쟁기에 따르면 2001년부터 작년까지 국민행동본부는 일간지에 273번의 전5단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비만 거의 30여억 원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또 기자회견과 각종 집회 등이 전국에 걸쳐 무려 133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시민들만 해도 200만 명이 넘는다.

서정갑 본부장은 “국민행동본부가 보여준 열정적이고 집요한 애국의 노력이 결국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라는 결실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줄기찬 광고 게재와 국민대회 개최

 

이런 사실은 작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자신의 책 ‘박정희의 나라, 김대중의 나라 그리고 노무현의 나라’에서 “17대 대선의 진정한 승리의 주역은 ‘양갑(兩甲)’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강조되기도 했다.

‘양갑’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발행인과 서정갑 본부장을 말한다. 이 책은 “굿판에서 조갑제 씨는 축문을 만들어 읽었고 서정갑 씨는 헌 칼을 휘두르는 춤사위꾼 역할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 본부장은 “애국운동은 직업이 되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잃으면 국민의 호응이 바로 감소된다는 것이다. 국민행동본부 사이트를 통해 등록된 회원은 모두 1만5,000여 명에 달하지만 인터넷을 하지 못하는 회원들까지 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행동본부가 일하는 양식은 선명하다. 첫째는 국가적 이슈를 선정하는 일, 둘째로 이슈를 성명으로 작성하고 광고하는 일, 셋째 국민대회와 강연 등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 등이다. 이 과정은 ‘타임’이 생명이다.

적절한 타임에 성명이 발표되고 국민대회가 개최되어야 한다. 이슈가 등장하면 즉각 결정하고 즉각 행동에 옮기는 신속성이 국민행동본부의 특징이다.

이명박 보수정권을 만들어낸 국민행동본부의 다음 목표는 ‘2012년까지 북한정권 무너뜨리기’라고 한다. 2012년이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완성의 해이며 전작권 환수가 이루어지는 위기의 시기임을 주목하여 김정일 정권을 해체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으로 풍선 삐라를 뿌리고 탈북민들을 도우며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한다. ‘김정일은 대한민국에 귀순하라’는 성명 발표도 이러한 목표의 일환이다.

2004년 7월 2일 주요 보수 일간지들의 1면 톱에 대통령직속 기구인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가 남파간첩들과 빨치산 출신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했다는 뉴스가 차지했다. 또 얼마 후 국보법 위반 혐의로 4년형을 받은 간첩전과자 출신의 의문사위 조사관이 별 넷의 현직 장군인 1군사령관과 그 휘하 고급장교들을 심문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그 무렵 정부와 여당은 국보법 폐기를 여론화시키면서 대통령까지 나서 “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라”며 국민을 선동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도 연일 국보법 폐기의 당위론을 들이댔고 MBC, KBS 등 공영방송은 노무현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다.

당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5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던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이제 우리가 믿을 곳은 국군 밖에 없다”며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10월 4일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수만 명이 운집한 서울광장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국보법 사수에 나섰다.

그러자 경찰은 이 집회를 추진한 서정갑 본부장을 비롯하여 최인식 사무총장, 신혜식 대변인 등을 내란선동죄로 소환하겠다며 통보해 왔다. 서 본부장은 간첩을 심문하는 곳이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인 악명 높은 양천구 대공분실로 연행돼 갔다. 당시 서 본부장은 전투복을 입고 조사에 응했다. “전투복은 군인에게는 그대로 수의가 되기 때문에 명예로운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다.

서 본부장은 “이 말은 꼭 해야겠다”면서 “당시 아무도 도울 사람이 나서지 않았을 때 미래한국 발행인 김상철 변호사가 직접 대공분실을 찾아와 하루 종일 모든 조사과정에 참관했다. 김 회장의 용기와 의리는 지금도 보수 지도자의 표상으로 기억된다”고 회고했다.

서정갑 본부장은 애국활동을 하면서 기적과 같은 도움의 손길을 체험하기도 했다. 2005년 7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는 좌파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우파인사 20여 명이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일이 있었다.

당시 500여 명의 동상철거 세력들이 기자회견장을 둘러싸고 있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서 본부장은 “30분 내 철수하지 않으면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5분, 6분, 7분”하며 카운트를 시작했다. 참으로 대담한 외침이었지만 과연 어찌될 것인가, 모두 주시하는 가운데 갑자기 일단의 사람들이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좌파 행동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2008년 6월 10일에는 좌파세력이 광화문 촛불시위의 여세를 몰아 6·10항쟁사건기념일을 기점으로 100만 군중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국민행동본부는 6월 10일 서울광장 집회를 먼저 신청하고 ‘서울광장으로 모여라’ 라는 신문광고를 냈다.

그러나 당시 일부 우파단체들이 오후 6시 ‘대학로로 모여라’는 어긋난 정보를 냈고 서울광장 집회는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집회 30분전까지도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10분전부터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서울광장은 시민들로 가득했고 그날 집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살아나야 나라가 산다

작년부터 국민행동본부는 거리에서의 국민대회 행사보다는 전국 도시를 다니며 시국을 알리는 강연회를 실시해왔다. 국민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극우보수’의 이미지를 벗고 있다고 한다.

서 본부장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지금까지 펼쳐온 국정 운영의 모양새를 볼 때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정책이 측근의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중도실용은 이 나라 경제를 회복시키고 서민과 중산층을 살리는 정책으로 제시된 것인데 이것을 이념적으로 역이용하여 중도실용을 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북 대치 상황에까지 중도실용을 적용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외교무대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느끼게 할 만큼 자랑스러웠다는 교민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이런 대통령을 우리가 도와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MB라는 강력한 로켓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참여라는 열성적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이 에너지가 한 마음으로 모이면 대한민국 로켓은 멋지게 떠오를 것입니다.” 

김창범 편집위원 cbkim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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