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잘 나가는 대한민국
[이슈] 잘 나가는 대한민국
  • 미래한국
  • 승인 2010.03.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풍당당! 세계를 놀라게 한 ‘88둥이’ 선수들
▲ 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오- 놀라워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은 금빛신화를 창조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 정상권 선수인 이규혁 선수(32·서울시청)조차 넘지 못한 올림픽 메달 획득의 높은 벽을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한 순간에 뛰어넘은 것이다.

특히 빙상에서 잇단 쾌거를 이룬 우리는 종합순위 5위(금6·은6·동2)를 기록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외신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연일 “서프라이즈 코리아”를 외쳤다. 물론 지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를 차지한 한국이지만 모두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 이룬 성과였다.

하지만 이번엔 젊은 선수들의 선전으로 한국이 쇼트트랙뿐 아니라 장·단거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도 강자임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총점 228.56 신기록을 수립,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동계올림픽에 거센 한류 열풍이 불었다.

우리 국민들도 밴쿠버에서 들려오는 올림픽 신기록 수립과 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네티즌 조동현 씨(ID:adr*****21)는 “쇼트트랙 메달도 참 귀하지만 이제껏 한 번도 우승해보지 못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의 우승은 정말 감격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박성종 씨(ID:sjp***12)도 “인구 5000만의 작은 나라가 이런 저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은 정말 대단하다”고 뿌듯해 했다. 또한 많은 국민들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며 기쁨의 눈물을 함께 흘렸고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자랑스럽다’며 진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이에 다양한 성공 요인 분석을 내놓은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신세대 선수들의 사고방식에 주목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혹은 누군가에 강요에 의해 운동을 선택했던 선배들과 출발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김병준 인하대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운동인 만큼 동기부여가 훨씬 잘 된다”며 “좋아서 하는 일이니 미친 듯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달에 대한 중압감으로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경기 자체를 즐긴다는 얘기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가난의 한풀이가 아니라 자기실현의 활주로를 자유롭게 이륙하는 젊은 세대의 당돌한 도약정신이 일궈낸 승전보”라고 평했다.

▲ 이상화 선수
한국의 동계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이들은 ‘88올림픽 베이비(88둥이)’라 불린다.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건 모태범·이상화 선수를 비롯해 쇼트트랙 2관왕에 빛나는 이정수 선수는 21세 동갑내기로 89년생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0m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추가한 이승훈 선수가 88년,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90년생이다.

여자골프의 ‘세리키즈’인 신지애(22)와 미셸 위(21), 축구대표팀 이청용(22)과 영국 프로축구리그에 진출한 기성용(21) 선수는 물론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용대(22·배드민턴)와 박태환(21·수영) 선수도 모두 ‘88둥이’다.

애국가와 함께 태극기가 올라가면 고된 훈련을 떠올리며 펑펑 울었던 이전 선수들과 달리 요즘 선수들은 살짝 눈물만 비치며 금이든 은이든 쿨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미리 준비한 자신만의 우승 세레모니로 국민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하며 ‘신세대식 조국 사랑’을 보여준다.

원영신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의 사회·문화 및 경제적 역사를 바꿔놓은 전환점이었다”며 “당시를 기점으로 의식구조와 전반적인 삶의 질이 변화되어 왔다”고 전했다. 원 교수는 “이번 겨울 올림픽의 주역들은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태어난 올림픽 베이비”라며 “소위 G(글로벌)세대로 개인적 성취욕구가 강하고 세계 어디를 가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강한 집념으로 똘똘 뭉친 G세대 스포츠 선수들의 열정은 지옥 훈련도 이겨내는 원동력이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이어진다.

왼쪽 귓불에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모양의 피어싱을 한 모태범 선수는 클럽에서 노는 것도 즐기지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훈련 스케줄 만큼은 엄격히 지킨다고 한다.

이정수 선수도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양 발목에 1.5㎏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 5㎏ 무게의 납 조끼를 입은 채 링크를 50~60바퀴씩 도는 강훈련을 하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땀을 흘려온 이들의 노력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빙상에 한 획을 그은 것이란 평가다.

“세계는 ‘기적’이라 부르고 우리는 ‘결실’이라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선전했던 종목은 헝그리 정신을 바탕으로 한 복싱과 레슬링 등의 격투기였다. 하지만 점차 나라 살림이 나아지고 국력이 향상되면서 스포츠 분야도 함께 진화했다. 경제 발전 속에 선수들의 체격과 체력도 급성장한 것이다. 이에 축구와 야구 같은 구기를 넘어 선진국형 종목인 골프·수영·피겨 스케이팅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

모태범 선수(177㎝, 72㎏)의 경우 남자 5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캐나다의 제레미 워더스푼 선수보다 12㎝나 작았지만 타고난 순발력과 스케이팅 기술로 체격의 격차를 넘어섰다. 동양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부문의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선 것이다. 이는 이승훈 선수도 마찬가지다. 과거 어느 올림픽에서도 동양인이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메달을 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승훈 선수는 5000m 은메달과 10000m 금메달 획득으로 기성세대의 ‘화이트 콤플렉스(서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와 모든 편견들을 깨뜨렸다.

그 배경엔 대대적인 자본 투자와 첨단 스포츠 과학이 한 몫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래 전부터 ‘밴쿠버 프로젝트’를 준비해온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006년 토리노 겨울 올림픽 이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밴쿠버 프로젝트’는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 등 빙상 3대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에서 출발한 계획이다. 이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실제 삼성은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14년 동안 빙상경기연맹에 약 120억 원 가량을 지원해왔다.

빙상연맹은 삼성의 후원금을 활용해 국내 빙상대회를 활성화했고 해외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적극 파견했다. 빙상 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한 꿈나무 발굴과 육성에도 힘을 쏟았으며 상금과 장학금을 내걸고 꿈나무 대회를 신설해 체계적인 유망주 키우기에 들어갔다. 김연아 선수가 바로 이 대회 입상자다. 김연아는 꿈나무 대회에서 3회 연속 우승했고 이후 2003 국제 주니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한국 피겨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또한 대한빙상연맹은 개별 선수의 체력과 반응도를 분석하도록 스포츠과학연구소에 의뢰했다. 분석 결과가 나오면 각 선수들은 보다 목표 지향적이고 개별화된 훈련을 통해 스스로의 약점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전원은 일찌감치 캐나다 캘거리와 밴쿠버로 이동해 현지 적응과 더불어 빙질 분석에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 경기장의 빙질과 온도에 맞추어 스케이트 날을 가는 전문가까지 투입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 선수들은 현지 환경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국가가 주도해온 소수 정예의 엘리트체육정책도 주목받고 있다. 1980년대 우리나라는 엘리트체육정책과 생활체육정책을 병행해 추진해왔다. 한국인 신체능력에 적합하며 가능성이 높은 비인기 스포츠 9개 종목과 올림픽 효자종목 등을 활성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특수 전문성을 지닌 체육특기 교사와 학교 전임코치들의 영입이 적극 추진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88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4위에 올랐다. 이는 경제도약과 더불어 전 세계에 한국인의 의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심엔 선수들의 역량 집중을 위해 장기적인 합숙시스템으로 올림픽을 준비하는 태릉선수촌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태릉선수촌의 모습과 지금의 태릉선수촌의 모습은 또 다르다. 성봉주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과거에는 강한 훈련 방법을 자주하는 것을 중시했다면 최근엔 훈련강도와 빈도·형태 등에서 훈련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관규 스피드 스케이팅 감독은 “신세대 선수들에게 자율성을 주면서 훈련의 효과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며 “각각의 특성에 맞게 운동량을 정해주는 1대1 맞춤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종목별 전문화를 위한 ‘1인자 전략’이다. 김 감독은 “기본 훈련을 같이 하고 나면 각자에게 숙제를 내 주고 개인 훈련을 시켰다”고 말했다. 이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120%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낳았다.

겨울 스포츠 강국을 향한 도전은 지금부터다

겨울 스포츠 관련 운동기구나 장비 등은 거의 대부분 고가의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환경에서 선수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승훈 선수와 이상화 선수처럼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배려와 희생으로 정상에 우뚝 서기도 한다.

또한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박미희 씨(51)와 같이 하루 24시간을 딸과 함께 하며 뒷바라지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원영신 교수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희생적인 교육열이 개별 종목의 붐을 앞으로 더 많이 이끌어내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우리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이뤄낸 ‘겨울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향후 빙상 강국들의 ‘한국 따라잡기’ 현상이 나올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미국의 스포츠전문 웹진 ‘블리처리포트’는 “밴쿠버에서 한국이 거둔 성공은 다른 경쟁 국가들로부터 스포츠과학연구에 보다 비중 있는 투자를 하도록 자극할 것 같다”며 “한국팀을 따라잡기 위해 전 세계가 한국빙상팀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국내 스피드 스케이팅 전문가들은 ‘모태범·이승훈 효과’가 나타나길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 박태환·김연아의 성공으로 수영과 피겨 기대주들이 대거 등장한 것처럼 스피드 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는 국가브랜드 가치의 제고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연아 선수의 경우처럼 갈수록 인물로 인해 생기는 글로벌 파워가 커질 것”이라며 “이를테면 타임지에 ‘올해의 인물’로 뽑히는 경우 등”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대와 전망 속에 정작 김관규 감독은 2018년이 걱정이라고 한다. “상화, 태범, 승훈이가 아직 어리니까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2018년을 생각하면 정말 답이 없다”고 밝힌 그는 2월 23일(한국시간) 국내 한 일간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표 선수와 일반 실업 선수 간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며 “바닥으로 내려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평창이 2018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해도 정작 뛸 선수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겨울 올림픽 종목의 지원과 인프라가 매우 빈약하다. 아이스링크가 전국에 총 35곳 밖에 안 되며 그나마도 경인지역에 절반 이상 몰려 있다. 국제스케이트장도 지난 2000년에서야 겨우 하나 만들어졌다. 선수층도 얇아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초등학생부터 일반 동호회까지 모두 합쳐도 총 1151명(2008년 기준) 밖에 되지 않는다.

원영신 교수도 “여전히 소외 종목으로 남아 있는 크로스컨트리·바이애슬론·스키점프 등의 설상 종목과 루지·봅슬레이·스켈레톤 등의 썰매 종목은 국내에 훈련 장소 조차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빙상에서 눈부신 선전을 했지만 설상 종목과 썰매 종목은 너무나 취약해 세계무대에 명함 조차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란 것이다.

정부의 꾸준한 지원을 당부한 원 교수는 “스포츠산업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통해 한국 체육의 틀을 다져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김미희 기자 elikim@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