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주의 모델로 다가선 이라크
중동 민주주의 모델로 다가선 이라크
  • 미래한국
  • 승인 201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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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압박·중동 민주화 도미노가능


수니·시아·쿠르드, 이라크 3대 분파 모두 선거 참여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며 이라크가 ‘중동 민주주의’ 모델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근거는 지난 3월 7일 치러진 총선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라크인들은 예전처럼 투표소에 가지 못하게 하려는 알 카에다와 수니·시아파 극단세력의 폭탄 공격과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투표소를 찾아갔다.

전국 투표 참여율 62%. 2005년 총선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그 때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이번 선거에 나타났다. 바로 수니파 이라크인들의 투표 참여다.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지배층이던 수니파 이라크인들은 2003년 이라크전으로 권력에서 쫓겨난 후 반군세력으로 돌변, 미군과 시아파 다수 이라크 정부에 저항해 왔다. 2005년에는 총선을 보이콧하며 수니파 이라크들은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타난 것. 알 카에다와 수니파 무장세력들의 근거지였던 팔루자, 라마디 등의 도시가 있는 안바르주는 2005년 당시 선거참여율이 2%였는데 이번에는 61%였다. 다른 수니파 밀집지역인 디얄라, 살라헤딘은 70%, 니느웨는 67%로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이제는 폭탄이 아니라 정치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다. 이라크 전문가들이 높게 평가하는 획기적인 변화다.

수니파 이라크인들의 정치 참여는 이라크전 후 가장 큰 문제인 수니·시아·쿠르드 등 이라크 3대 분파 간 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였다. 골 깊은 분파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전 후 소외된 소수 수니파 이라크인들과 새롭게 지배세력이 된 다수 시아파 이라크인들 간 화해가 선결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2007년 이들 간의 심각한 유혈 충돌로 이라크 내전 우려가 나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부시 행정부가 선택한 것이 미군 증원이었다.

미국은 그 때부터 수니파 무장세력들이 알 카에다를 소탕하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수니파의 정치 참여와 시아파 정부와의 화해 주선에 주력해 왔다. 저항으로 일관하던 수니파도 동조하면서 미군 증원 후 치안이 급격히 개선되었고 이번 선거에 많은 수니파 이라크인들이 참여한 것이다.

데이빗 이그나티우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는 지난 14일자에서 수니파 이라크인들의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지난해 12월 안바르 주지사인 카심 모하마드 파다위를 만났는데 파다위 주지사의 관심은 미국의 안바르주 투자였다고 밝혔다. 파다위 주지사는 12월 30일 자살폭탄 테러를 당해 한 팔을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았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라다미로 돌아와 동료 수니파들에게 투표에 참여하라고 독려했다.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것은 이라크 치안 병력의 능력 강화와 반군세력의 약화였다. 반군세력들은 이번 선거 방해를 위해 전국적으로 100여건의 공격을 감행했다. 특히,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 집중되었는데 주목할 것은 그들의 공격방식이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이뤄진 차량에 폭탄을 가득 싣고 달려가 폭파하는 것이나 개인자살폭탄 공격이 없었고 대부분 원거리에서 감행하는 박격포, 로켓 발사였다. 그만큼 치안이 강화되어 투표소로 접근 자체를 못한 것이다. 현재 이라크 도심 치안은 미군이 도시 외곽으로 빠지면서 이라크 경찰과 군인들이 맡고 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이라크 치안 병력은 곳곳에 검문소를 두고 철저히 통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이라크의 달라진 모습으로 그동안 이라크전쟁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온 진보성향의 뉴욕타임스도 이라크 찬가성 기사와 논평을 내고 있다.

지난 3월 8일자에서 신문은 “이번 선거는 식민지배, 독재, 전쟁으로 얼룩진 이라크 역사상 가장 투명하고 경쟁적인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또 “이라크 반군들은 잘 훈련된 경찰과 군인들이 가득한 강력한 이라크 정부와 부딪혔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폭력적 저항에 동조하지 않는 이라크인들을 만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9일자에서 이라크에서 선거가 끝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선거 결과가 나오고 있고 일부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는 등 이라크에서 보지 못한 생소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놀라워했다.

저명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만은 10일 ‘이제 이라크인들에 달려 있다. 행운이 있기를’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선거 자체가 민주주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지만 이번 선거는 이라크인들이 분파 간 분쟁 극복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프리드만은 방법에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 지역에 민주주의를 만들 필요가 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 옳았다”고까지 했다.

이번 선거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이라크 정부 구성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치된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의 표는 시아파의 누리 알 말리키 현 총리 세력과 아야드 알라위 전 총리 세력, 수니파 및 쿠르드 등으로 갈라져 어떤 세력도 325석의 의회에서 과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분파 간 협력의 가능성을 높게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라크 정치인들이 분파 간 권력 배분을 잘 하고 이후 국가 재건, 법의 지배 등이 자리를 잡아가면 이라크는 ‘중동 민주주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민주 이라크’의 출현은 이웃 국가인 이란에 대한 억지와 압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미국 내에서 가장 크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을 억제해 왔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킴으로써 이란의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란처럼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가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를 잡으면 그 옆의 이란은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민주 이라크’ 출범은 또 내년 말로 예정된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정상대로 진행시켜 미군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성과를 미국에 안겨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라크전쟁을 감행한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은 그동안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개전의 직접적 이유였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 폭정 종식과 중동 민주화도 전쟁의 중요한 명분이었지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한 것은 부시 행정부에는 치명적인 아킬렌스건이 되어왔다.

결과적으로 민주 이라크 출범과 그로 인한 중동 민주화라는 결과를 낳으면 부시 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아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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