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몰락론의 오류
미국 몰락론의 오류
  • 미래한국
  • 승인 2010.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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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국제정치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혹은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는 말이 함께 존재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 나타난 것은 이미 1960년대의 일이니 미국 몰락론의 역사는 50년도 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미국 몰락론이 처음 나타난 것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재임 중이던 시절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태어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약 240년의 역사 중에서 ‘몰락론’ 이라는 우울한 주장에 휩싸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이상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처음 읽었던 미국 몰락론에 관한 책은 코넬대 교수인 앤드류 해커가 1968년에 초판을 출간했던 ‘미국 시대의 종말’이었다. 1987년 출간된 폴 케네디 교수의 ‘강대국의 흥망’은 출간 직후 일반 시민들 조차 너도나도 사서 읽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몰락론을 학자들의 논쟁거리로부터 일반 시민의 대화 영역으로 확대한 명저가 되었다. 

 이후 필자가 읽었거나 소장하고 있는 미국 몰락론에 관한 책은 2010년 출간된 딜립 히로의 ‘제국 이후’(After Empire)에 이르기까지 수 십 권이 넘는다. 우리말로 출간된, 미국 몰락 관련 도서도 어디서나 쉽게 구해 읽을 정도로 많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부분은 미국 몰락론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앤드류 해커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미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폴 케네디 교수는 레이건 대통령의 군비확장 정책이야말로 패권국이 몰락하는 역사적 과정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케네디 교수는 레이건 당시의 미국이 국제적 개입과 군비를 축소하는 것이 유일한 살 길인데 오히려 군비 증강을 시도했고 그 결과 제국의 과다팽창 현상이 나타날 것이며, 결국 미국은 몰락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몰락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고 특히 케네디 교수가 차세대 패권국이라고 지목한 일본은 지금 영 볼품없는 나라인 것처럼 취급 받고 있다. 미국은 몰락하기는 커녕 1990년대 10년 동안 선진국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그가 편집한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미국은 탈냉전 시대 10년 동안 누구도 맞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로 성장했다. 2000년대를 맞이한 미국은 보통의 초강대국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기 때문에 극초강대국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들 조차 제기되었다. 독일의 요세프 요페는 미국을 Uber Power 라고 불렀고, 프랑스의 외무장관 유베르 베드렌은 미국을 하이퍼 퓌쌍스 (Hyper Pu issance) 라고 불렀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버코비츠 박사는 2004년 간행된 저서에서 미국의 국방비는 세계 전체 국방비의 50% 이상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의 국방비가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국가들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의 평균치인 3.5%보다도 낮은 3.2%라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느라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미국이 현재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각각 해당 시기의 미국 경제력을 기준으로 할 때 2차 대전의 1/9, 한국 전쟁의 1/3, 월남 전쟁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현재 7,000억 달러가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GDP의 4%에 해당하는 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국방비는 GDP의 35-40%에 육박했고, 한국전쟁 당시 미 국방비는 GDP의 12.8%, 월남전쟁 당시는 8.9% 까지 올랐었다.

2001년 미국이 테러 공격을 당하고, 세계적인 반 테러전쟁의 일환으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한 이후 미국 몰락론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몰락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근거 중 하나는 ‘지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중요한 근거는 2008년 가을 야기된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와 이로 인한 미국 경제력의 파탄 현상이다.

미국 몰락론자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미국이 이 전쟁들에서 승리한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은 미국의 전쟁 목적이 아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도 솔직히 말해서 미국의 구체적이고 실질적 전쟁 목표는 아니다. 미국인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는 전쟁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목표는 미국 시민들이 더 이상 9·11과 같은 테러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미국이 벌이고 있는 반테러 전쟁에서 승리와 패배를 가름하는 기준은 미국 시민들이 테러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다.

반 테러전쟁은 시작도 끝도 없고 승리와 패배의 기준도 없는 전쟁이다.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하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 본토에서 행해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 공격과 이로 인한 미국인 희생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미국의 경제가 몰락하고 있다는 주장도 ‘느낌’ 혹은 ‘감’ 으로 하는 말이지 정확한 자료에 근거한 말이 아니다. 미국의 몰락을 주장하는 학자들 중 그 누구도 정확한 통계자료를 제시한 것을 보지 못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단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었다. 미국의 GDP는 계속 상승했고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

1945년 미국의 GDP는 세계의 50% 정도였다. 그러나 그 시점은 비정상적인 시점이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 모두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잿더미 위에 누워 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등 강대국들이 2차 대전의 전화(戰禍)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을 대략 1970년대 초중반 무렵으로 삼는데 1975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GDP가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불변적으로 22~25% 선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몰락하고 있다는 주장도 정확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조셉 나이 교수는 한 나라가 세계 경제력의 40%를 차지하는 것을 패권국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구 역사상 패권국의 지위에 올랐던 나라는 오직 미국 하나 뿐이며, 시기적으로는 1945년 직후 몇 년 간의 짧은 기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영국은 단 한 번도 세계 전체 경제력의 40%에 이른 적이 없었다. 만약 기준을 완화해서 패권국을 ‘세계 경제력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2위보다 2배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 라고 정의한다면 미국은 1945년 이래 2010년인 지금까지 패권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나라다.

국제정치 현상을 느낌이나 감 혹은 희망사항으로 분석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야 올바른 분석이 가능하고 이렇게 될 때 올바른 대외정책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제정치의 변동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할 경우 특히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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