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하루이틀된 것도 아니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은 다시 한번 명실상부한 구걸정당의 길로 나섰다. 당은 지킬 가치와 지향할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감투싸움만 보여주었다. 이제 국민은 한나라당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일만 보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드라마의 끝은 버림받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지지받으면 뭘하겠다는 것인지를 누구에게도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180석에 달하는 절대의석을 갖고도 안하거나 못하는데 무얼 기대한단 말인가?
오히려 한나라당 대다수가 지향하는 대학등록금 반값이나 대북지원 확대, 그리고 대기업 때리기와 무상복지 확대 등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민노당이나 민주당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더 잘할 수 있는 정치세력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이 맞고 민노당 제3중대인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편법과 시위 없이, 그리고 도움 받는 것 자체를 창피하게 여기며 살아온 착한 사람에겐 애초부터 의지할 정당도 없었다. 가만히 돌아보면 보험 타는 일이나 기웃거리고 각종 공짜 혜택에 앞장서는 사람을 보호할 정당은 많았지만 새벽부터 출근해 정신없이 일만하는 근로자가 의지할 정당은 없었다.
대학나와 놀고있는 두 아들을 지원하겠다는 정당은 많지만 그 아들을 먹여 살리느라 병원도 못가고 뼈빠져라 일하는 엄마를 보호할 정당은 없었다. 정부자금 받으려고 과대포장에 나서는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당은 많지만 상품개발해 전세계를 떠돌며 팔고 다니는 사업을 일구는 기업을 존중하는 정당은 없었다. 헛돈 쓰며 허송세월하는 대학생에 아부하는 정당은 많지만 고등학교 나와 전문직업의 길을 열어가는 기술인을 키워내는 정당은 없었다.
바르게 사는 사람에겐 정당도 사치다. 세금을 나눠먹자는 세력에게 휘둘리는 정당은 많지만 세금 내는 사람의 빠듯한 주머니를 지키는 정당은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등록금 반값을 선창하며 대기업하면 ‘착취’가 떠오른다는 한나라당에 더 뜯기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한나라당은 자기 스스로 존재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민노당이나 민주당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매우 강했고 옳건 그르건 간에 가고자 하는 방향도 명확했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한나라당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정당과 자기가 만든 정부를 욕하는 데 선수였다.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자가당착이라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자기 정당과 자기 정부만을 탓하고 욕했다.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지 사실 그것이 한나라당 본질이다. 지난 선거에서 그들을 선택한 것이 부끄럽고 한탄스러울 뿐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국민이 준 표와 신뢰를 촛불세력과 시위세력에게 온전히 갖다 바친 바 있다. 국민이 왜 그렇게 압도적으로 선택하고 지지했는지를 망각했고 진지하게 헤아리지도 않았다. 단지 공격받으면 무릎 꿇고 빌었다. 결국 한나라당은 자신에게 맡겨진 정치적 대표성을 포기하고 민노당과 민주당에 위임하고 갖다 바친 것이다.
이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지지에 대한 배신을 응징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믿음에 대한 배신행위도 못깨닫더니 한 술 더 떠서 다시 구걸행위에 나서고 있다. 다시 보니 살려달라는 말은 국회의원이나 각종 정무직 같은 자기 직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구직 청탁이었을 뿐이다.
지금 국민은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구직 청탁을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구차하게 구걸하지 마라. 국민이 바보도 아니고 이젠 속을 국민도 없다. 살아온 길이 비겁했으면 죽을 때라도 장엄해야하는 것 아닌가. 차라리 장렬하게 전사하면 밉지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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