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左 - 右 개념이 아니라 헌정 수호 개념”
“보수는 左 - 右 개념이 아니라 헌정 수호 개념”
  • 미래한국
  • 승인 2012.01.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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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작가 복거일

 
한나라당이 보수강령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비대위의 보수강령 삭제 요구에 당내외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발이 일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일단 제동을 걸었지만 문제는 가라앉기 보다는 보수진영으로부터 한나라당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심화되고 있다. 이에 최근 보수 정체성 논의에 관한 책‘보수는 무엇을 보수하는가’를 출간한 복거일 작가로부터 이 논쟁의 의미를 짚어봤다. 

- 최근 보수 용어 삭제를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보수가 잘못된 건가요? 아니면 한나라당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요?
어느 사회든 보수는 현 체제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현실의 모습을 변호해야 하는 과제까지 안고 있죠. 반대 쪽에서는 현실과 비교한 청사진을 제공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니 보수는 늘 불리하죠.

하지만 한나라당이 ‘보수’라는 용어를 유지하며 지켜온 역사를 돌아볼 때 저는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어요. 사회가 타락하고 정치적 수준도 따라주지 않는다면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표출되는 것은 당연한데 그 원인을 한나라당에 돌리며 ‘무력한 정당’ 혹은 ‘웰빙 정당’이라고 비판만 가하는 것은 억지스럽습니다. 여당과 함께 야당의 행위도 동시에 봐야 하죠. 야당이 국회에서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았는데 이때 여당인 보수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더 문제는 야당의 행동을 올바로 인도하지 않고 달래기만 한다는 것인데요. 정당정치, 대의정치라는 기본적인 틀을 부수고 거리로 나가 시민단체와 합류해서 시민단체처럼 행동할 때 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에요. 결론은 한나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 그렇다면 보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보수는 보수주의나 보수주의자가 아니에요. 보수는 한 사회에서 정설 아래 정착한 이념과 체제에요. 보수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한 기본질서인 자유민주주의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의 보수라면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지하는 사람이고, 헌법을 폐기하고 고치려 한다면 그것은 보수를 반대하는 대체세력이라고 일목요연하게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보수강령 삭제 시도는 反헌법적

- 선생님께서 정의하신 보수 개념이 광범위한데, 헌정질서 내에서 움직인다면 모두 보수로 받아 들 일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하지만 그 안에서 좌우가 또 나뉘겠죠. 보수 내의 보수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고 생각의 편차가 넓고 스펙트럼이 넓은 개념이 될 거에요. 현재 미국이 이런 체제로 정치를 운영하는데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보수적 입장을 수호해요. 공산당과 같은 경우는 다르겠지만 말이죠. 한국도 이런 체제였는데 민노당이라는 정당이 출현하면서 이런 틀이 깨졌어요. 즉, 헌정질서에 반대하는 입장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을 ‘그놈의 헌법’이라고 평가하며 헌법 조항을 무시했는데 이런 면에서 노 대통령은 보수가 아니었다고 판단할 수 있죠.

- 그렇다면 최근 한나라당에서 ‘보수’ 용어 삭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보수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일어난 일이죠. 보수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용어가 아니에요. 바로 헌법을 수용하는 여부인 것이죠. 김종인 씨가 보수 용어를 삭제하자고 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 깔려 있는 거고 이로 볼 때 생각이 짧았던 거에요. 아주 끔찍한 일입니다. 기본 틀 자체를 바꾸는 건데 그런 일을 할 때는 깊이 생각하고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잘 해야 하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라니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보수진영에서 정치적 운동은 많은데 문화 분야에는 거의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지식계를 장악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보수진영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유주의이념을 소리 내지 못하고 있고, 20대는 자유와 보수 가치에 무관심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반기는 수준이에요. “386세대 보다는 좌편향이 안 됐으니 걱정 말라”고 위안을 삼으니 처량하기 까지 하죠. 문화·연예·교육 등 지식인 사회를 모두 좌파가 장악했어요. 생각을 전파하는 게 문화인데 그 사람들이 전파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죠. 대략 1970년대 후반부터 그랬는데 거기에 세뇌된 사람들이 지금 사회의 중추를 맡고 있어요. 사법부를 사회운동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교육은 전교조가 장악했죠. 한국사회의 지식 생산 및 확산이 좌경화돼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도 문화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보수개념에 대한 부재가 혼란의 원인

- 진보진영에서는 문학·예술 분야 등의 지원이 많은데 자유진영에는 지원이 저조한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자유진영도 비슷한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대중성과 시장을 의식하는 기업들은 인기 없는 자유주의나 보수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를 꺼려 하죠.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소설의 영향력이 컸는데 지금 청년세대에는 많이 줄어들었어요. 예전에는 소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지만 이제는 문학 구독률이 줄어 영화가 영향을 많이 끼칠 것 같아요.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대한민국의 헌법 원리인데 이 두 근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어요. 국민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서의 자유가 올바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사실 깔끔한 정리는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시장은 다양하고 단편적이며 하나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에요. 자유경제학자들이 모여 얘기할 때도 의견이 많이 엇갈려요. 시장이라는 것은 쉽게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재산권이 확립돼야 시장이 존재할 수 있는데, 누구의 소유인가 하는 문제와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법적개념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을 바탕으로 해야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죠. 이 바탕 위에 시장이 잘 움직이도록 하는 책무가 정부에 있고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고 시장은 본질적으로 사회가 만든 법질서 안에서 움직이거든요. 그러면 법질서를 어떻게 만드느냐, 그것이 얼마나 세세하게 시장을 규제하느냐는 기준은 없어요. 결국 정부와 시장 싸움의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지형이 없어요. 다시 말해 어디서부터가 시장 몫이고 어디까지가 정부의 몫인지를 가늠하는 경계가 없다는 이야기죠. 상황마다 구성원들의 판단이 다변화하는 사회 상황에 맞춰 그때마다 다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논란이 나올 수 밖에 없죠.

- 복지문제가 얘기가 됩니다만 가능한 한 정부의 영향 개입을 줄이고 민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면 1920년부터 사회주의가 실시됐잖아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실제로 사회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 건 1920년대 후반부터인데 그때 해보니까 안 된다 그런 얘기에요. 그건 왜그러냐, 시장이라는 것을 아주 위축 시키면 경제가 안돌아 가더라, 그 이유를 따져보면 이러저런 역사적인 이유가 나와요.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몫을 늘려야 한다, 규제를 풀고 정부가 세금 덜 가져가고 개인의 시장권을 확립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인 번영과 정치적인 자유를 함께 보장한다고 외치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러니깐 이것은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뚜렷한 경계가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는 끊임없이 시장을 지켜야 한다고 얘길 해야 되겠지요. 불행하게도 추세는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정부는 점점 커지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돌릴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에요. 왜냐하면 그리스의 비극적 사태에서 보듯이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거에요. 비관적이죠. 그렇다면 질문을 하시겠죠. 대안이 뭐냐고. 사실 없어요. 시원한 해결책이 없어요. 그냥 외치는 것 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모두 바보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세월이 지나면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달아 알게 되고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 마지막 질문입니다만, 여·야 모두 대선에서 선거 공략으로 복지를 말할텐데 복지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이 문제를 경제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자리 만드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나라당은 시민들이 원하면 따라갈 수 밖에 없어요. 국민들이 원하니까요. (미래한국)
인터뷰 /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사진·정리 / 곽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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