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침묵’ 중인 여성단체들
‘닥치고 침묵’ 중인 여성단체들
  • 미래한국
  • 승인 2012.02.0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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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꼼수의 막말이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자질구레한 논란을 제외하면 나꼼수 멤버 중 한 명인 정봉주 전 의원이 ‘BBK 사건’과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된 것이 첫 번째 대형사고였다.

이어서 정봉주 전 의원 팬들이 구명운동을 펼치는 동안 두 번째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한 젊은 여성이 비키니로 드러낸 가슴에 ‘가슴이 터질 듯이 나와라 정봉주!!’를 셀카로 찍어 구명운동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이를 보고 흉내내며 자신의 노출 사진을 찍어 올리는 네티즌들도 생겨났다. 여기까지는 파격의 문제로 볼 수 있었다. 신세대의 대담한 정치 참여활동이자 사회적 금기를 깬 문화현상이라고 읽어줄 수도 있다.

문제는 나꼼수 출연진들과 여성단체의 반응이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는 ‘나꼼수- 봉주 3회’ 방송에서 “정봉주 의원은 현재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고 같은 멤버 주진우 씨는 정봉주 전 의원에게 보낸 ‘가슴 응원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는 글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이에 대해 언론은 물론 나꼼수 청취자들까지 비난의 화살을 던지자 ‘원래 그런 방송이었다’는 식으로 나오며 ‘해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들이 ‘원래 그랬다. 배째라’며 막말을 다시 막말로 변명하고 있는데 그 막나가는 근성은 이들이 줄기차게 비판해온 기성권력의 마초 이미지와 닮아 있었다. 평소 나꼼수를 지지해 온 공지영씨조차 트위터에 “나꼼수의 가슴 시위 사건은 매우 불쾌하며 당연히 사과를 기다린다”며 ‘마초들의 불쾌한 성희롱적 멘션에 경악한다’는 장문의 비평글을 남겼다. 이번 일로 나꼼수 멤버들에게는 ‘마초 진보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은 셈이다.

이에 대해 김용민 씨는 “비키니 발언이 성희롱이 되려면 권력관계나 불쾌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청취자와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나꼼수의 청취자가 모두 남자들이라고 가정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그의 주장이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내린 결론임은 SNS에 올라와 있는 항의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김 씨는 비키니 여인의 자발적인 행동이므로 피해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입에 오르내린 특정 신체부위와 이에 대한 감상은 모든 여자들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일종의 상징이자 사회적 기호로 작용했다.

“성적 약자인 여성들이 예민해하는 것은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성희롱 할 생각은 없었고 성희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발언하겠지만 해명이나 사과는 아니다”는 발언 또한 논란거리가 다분하다. 본래 성희롱은 가해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끼면 성립되는 범죄다. 이제까지 수많은 가해자들이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한 후 그 화살을 예민한 피해자에게 돌려왔다.

방송 분위기를 핑계로 대던 나꼼수 멤버들은 ‘예민한’ 여성 청취자 및 네티즌에게 은근슬쩍 책임을 전가하더니 결국 일이 커지자 다음 방송분에서 여성 비하 논란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기로 했다. 말은 바뀔지 몰라도 생각까지 바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꼼수 못지않게 논란이 된 단체는 지나치게 냉담한 반응을 보인 진보좌파 여성단체들이었다. 한나라당 출신인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서는 성명서를 제출하고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한편, 한나라당을 ‘성희롱당’이라고 불렀던 단체들이다. 특히 여덟 차례나 성명을 냈던 진보좌파 여성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 전 의원의 석방에 동의하나 여성이 성적으로 동원되는 방식, 반인권적 시각으로 콘텐츠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방식에 반대한다’고 가볍게 언급해주고 넘어갔을 뿐이다.

진보적인 줄 알았던 이들은 마초였고 여성의 인권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정치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인권과 진보, 그 둘이 내편이라고 믿고 있던 여성들은 이제 ‘닥치고 침묵’이나 해야 할 때인가. 닥치고 앉아 성추행의 불쾌함이 사라지길 기다리기보다는 ‘나는 여자다’를 신설해 마초들의 횡포를 속 시원히 비방해줘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미래한국)

조진명 기자/ 중앙대 문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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