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제학 교수의 웃기는 자의식
어느 경제학 교수의 웃기는 자의식
  • 이원우
  • 승인 2012.04.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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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칼럼니스트

고약한 농담 같은 기사를 읽었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돌연 책의 절판을 선언했다. “책을 읽고도 청년들이 싸우지 않아 실망했다”며 그는 “청춘이여, 정신 좀 차리라”는 훈계도 잊지 않았다. 자의식 과잉도 이 정도면 국보급이다. 그 책이 <공산당 선언>쯤이라도 되는 줄 알았단 말인가? 공저자의 동의조차도 구하지 않았는지 함께 책을 쓴 박권일 기자는 유감을 표명했다.

<88만원 세대>는 애초부터 20대를 완전히 오판하고 있는 책이었다.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주장하는 이 책에는 2030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배려심이 칼로 파낸 듯이 결여돼 있다. 저자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2030을 선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수많은 정치인들, 그리고 멘토임을 자칭하는 유명 인사들이 본인들의 세력 확장을 위해 2030을 피사체로 삼는 한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30세대는 정치적 선동에 넘어가지 않아

그들은 하나같이 판단을 잘못하고 있다. 야당 계열 후보들에게 관대하다고 해서 2030이 평등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한 마디로 천만의 말씀이며 그 반대가 진실이다. 2030은 건국 이래로 ‘불평등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인 것이다. K-POP 열풍으로 대표되는 연예인 비즈니스의 고도성장이 그 대표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불평등의 결정체인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2030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무대 위에 서서 자신에게 환호하는 대중들에게 여유 있는 표정으로 화답하는 불평등의 궁극을 한 번쯤은 상상했던 것이 지금의 2030이다.

‘가시적 평등’을 지향하는 2030의 정치적 행보는 자신을 예외로 한다는 ‘암시적 불평등’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 나를 제외한 세계는 공정하고 평등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그 위에서 마음 놓고 꿈을 펼칠 수 있으니까. 삼성 공화국을 비판하면서도 자기보다 먼저 삼성전자에 취업한 친구에 대해서는 질투와 분발의 감정을 함께 갖는 것이 2030의 입체적인 속마음이다. 짱돌과 바리케이트의 절차 따위는 2030의 논리구조에 아예 입력조차 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혼자 결론을 내고 혼자 실망하는가?

이제 막 세상으로 나아가는 2030들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소모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비극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축구 열풍이 불자 온 국민이 축구평론가가 됐던 것을 기억하는가? 10년이 지난 2012년, 선거 두 번을 치르고 나면 2030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정치 공학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다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여야 어느 한 쪽의 진영 논리에 가담해서 각자의 정치적 레토릭을 분석하고 상대방이 이기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듯이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런다고 우리의 인생이 정말 변화할까? 그렇다면 정권 교체가 반복되는 동안에는 왜 우리의 인생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한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각자의 자유로운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일 뿐이다. 특정 정치세력 때문에 자기 삶이 열악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당파적인 입장에 서 있는 ‘이해당사자’이거나, 우석훈 교수 수준의 자의식 과잉이거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이명박이 당신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정치인들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 뿐, 정치가와 평범한 국민의 삶은 생각만큼 가깝지 않다.

우리의 삶이 고달파졌다면 그건 아마 우리 개개인의 삶이 이전보다 높은 책임과 의무 속으로 포섭됐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밖에 몰랐던 청년은 가정을 꾸리게 됐고, 어리바리 개념 없던 신입사원은 간부급 관리자가 돼 보다 무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힘들어졌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정치가 그 주범은 아니다. 자원은 희소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인생의 진리만이 그나마 지목할 수 있는 이유일 뿐. 애먼 데다 화풀이하면 곤란하다.

정치인들, 청년세대 이해하려는 노력 부족

선배들이 판단을 잘못하면 후배들이 혼란을 겪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지금 한국의 2030들은 정치의 본질을 알기도 전에 정치논리와 정치공학부터 먼저 배우고 있다. 당선자가 국회에 입성해서 하는 일이 뭔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이 각 정당의 지지율에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 심각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구도 이 주객전도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지 각 정당은 세상이 뭔지도 모르는 청년 후보들을 정치의 전면으로 앞다퉈 내세우고 있다. 정당이 청년 후보를 내세우면 2030들이 이해받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 당을 지지하게 될까?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쟤는 누군데 정치를 하겠다는 거지? 네가 나보다 잘난 게 뭔데?’라고 묻고 싶은 게 지금 2030의 솔직한 속마음인 까닭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는 것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렇게까지 유권자의 마음을 못 읽어서야 뭘 어쩌겠다는 걸까.

지금의 2030들도 시간이 흐르면 기성세대가 돼 그 무렵의 2030에게 인생이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말할 날들이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깨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젊음에 진정으로 자극이 됐던 존재는 2012년을 전후로 우후죽순 쏟아졌던 일군의 자칭 멘토가 결코 아니었음을. 화려하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나가기 위해 묵묵히 땀 흘렸던 ‘이름 없는 전사’들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진짜 선생님들이었음을. 작금의 혼란과 사이비 멘토들은 결국 준엄하게 흐르는 시간을 대가로 응분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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