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의 권리 어디까지 인정되나
범죄자의 권리 어디까지 인정되나
  • 이원우
  • 승인 2013.10.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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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독일. 당시 27세였던 프랑크푸르트의 법대생 마그누스 게프겐은 여자 친구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하고 싶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떠올린 방법은 유괴였다. 1674년 창립돼 독일 최고(最古) 은행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메츨러 방크의 프리드리히 폰 메츨러 회장의 열한 살짜리 아들 야콥 폰 메츨러가 그의 제물로 선택됐다.

9월 27일 게프겐은 하굣길의 야콥을 유괴한 뒤 메츨러 가(家)에 100만 유로(약 12억 원)를 요구했다. 메츨러 회장은 게프겐에게 금액의 일부를 전달했다. 하지만 게프겐은 곧 검거됐다. 다음 문제는 야콥을 구출하는 일이었다. 게프겐은 경찰에 두 차례 아이의 소재를 진술했지만 모두 거짓이었고 이후부터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아이가 유괴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프랑크푸르트 경찰국 부국장이었던 볼프강 다슈너는 부하 경찰관 엔니히카이트에게 신체적 고문을 명하는 서면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엔니히카이트는 게프겐에게 “아이의 소재를 진술하지 않으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을 고통을 겪을 것이며 이 고문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프겐은 협박 10분 만에 야콥의 소재를 진술했다. 하지만 소년은 프랑크푸르트 서북쪽 호수에서 넝마 조각에 싸인 시체로 발견됐다. 유괴 직후에 살해됐던 것이다.

게프겐은 법원에서 유괴살해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독일은 1949년 사형제를 폐지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게프겐이 고문 협박을 받아 자백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재심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경찰은 다슈너 부국장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지만 법학자, 언론, 인권단체는 반대편에 섰다. 다슈너는 “시간이 없었으며 다만 아이를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독일 언론이 국민들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다슈너는 6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2004년 12월 프랑크푸르트 법원은 다슈너와 엔니히카이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각각 1만800유로와 3600유로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다만 법원은 벌금형에 대한 집행유예를 선고해 형법적 대응을 최소화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2005년 4월 다슈너에 대한 징계 절차는 중단됐다. 다슈너는 2008년 5월 정년을 채우고 공직에서 은퇴했다.

한편 유괴범 게프겐은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했다. 자신은 고문협박에 의한 자백을 했으므로 그 자백에 의해 찾아낸 아이의 사체와 그 사체에 기초한 과학적 증거들 모두 증거능력이 없어 ‘무죄’라는 것이었다. 결국 법원은 당초 유죄의 증거로 삼았던 게프겐의 진술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른 증거에 의해서 유죄를 인정해 다시 종신형을 선고했다.

게프겐은 계속 반발하며 자서전을 출간하며 저항했다. 이 사건은 긴박한 상황 속에 놓인 수사관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범법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또한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첨예한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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