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식물 국회 주범인가
국회선진화법, 식물 국회 주범인가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10.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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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 왜곡 vs 타협정치 위해 필요
 

지난해 5월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식물 국회’의 주범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있더라도 야당이 합의해 주지 않으면 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당초 취지는 여당의 법안 강행통과와 야당의 물리적 저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사태 등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들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여야는 제18대 국회의 임기만료 4일을 앞두고 지난해 5월 12일에 국회법을 개정한 바 있다. 개정된 국회법의 조항은 제85조(심사기간)와 제85조의2(안건의 신속처리) 조항이 대표적이다.

국회법 제85조는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으나 개정된 법률에서는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에만 직권상정이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상대 정당에서 동의해 주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 혼자서 직권 상정하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제85조의2 제1항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을 제2항에 따른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경우’인데 동조 후단에서 ‘이 경우 의장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위원장은 지체 없이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를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재적의원 5분의3 이상 또는 안건의 소관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개정한 부분도 논란의 대상이다.

원내 특정 정당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을 확보하지 않으면 상대당의 동의 없이는 특정 정당 혼자의 힘으로 법률안이 소관위원회에서 본회의로 상정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여야가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선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 단상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자 박관용 국회의장은 결국 경호권을 발동했고,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거듭됐던 국회 폭력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고, 열린우리당은 이듬해인 2005년 12월(사학법 개정안)과 2007년 1월(부동산 관련 법안)에 각각 법안 강행통과를 시키며 비난을 받았다. 제17대 대선을 사흘 앞둔 2007년 12월 16일에 이명박 당시 후보에 대한 특검안을 통과시킬 때에도 국회에서는 극심한 몸싸움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2008년 12월 예산 통과 과정과 2009년 7월 언론법 통과 당시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이로 인해 여야 관계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뿐만 아니라 2011년 11월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될 당시에는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트리는 사상 초유의 테러행위를 하기도 했다.

과반의석 만들어준 총선 민의 왜곡?

그러나 이는 선거를 통해 결정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서 다수당이 됐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과반수에 달하는 권한을 그 정당에게 준 것인데 소수 야당의 동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은 과반수의 지지를 보내준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위헌 논란도 제기된다.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0월 1일 오전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회선진화법은 위헌이 될 소지가 굉장히 높다”고 주장했다.

유 최고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이 처음 취지는 국회에서 몸싸움이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여야가 서로 협조를 해야 법이 통과하도록 돼 있는데 문제는 국회 의석이 5분의3 이상이 찬성해야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요건이 있다”며 “우리 헌법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있는데 과반 출석에 출석 과반수의 찬성이면 법안이 통과되도록 돼 있다. 5분의3 같은 경우 헌법에 예정하지 않았던 것이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헌법 제49조에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이 있어 이 법안이 위헌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예상했던 대로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라 ‘국회마비법’이다”며 “과반을 받으면 당선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과반 정당이 국정을 이끌고 있지 못하는 건 다른 의미로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지금은 모든 의정활동을 원내에서 합의해서 하게 돼 있어 한쪽에서 스톱하면 멈추게 된다”며 “(정치가) 스스로 자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공멸의 정치로 가게 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고 강조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회선진화법은 날치기로 인해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국민 눈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는데, 비효율성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말바꾸기’도 구설수

그러나 새누리당의 이 같은 주장도 지나치게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이 이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지난해 봄은 새누리당의 총선-대선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과반 의석을 얻는 대승을 거두고 대선에 승리하자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회의론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새누리당의 취지에 민주당이 공감해서 지난 총선을 앞두고 가닥을 잡아서 총선 직후에 통과된 것”이라며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새누리당이 과반 정당이 되고 여당이 되다보니 이게 슬슬 귀찮아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회선진화법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한 긍정적인 조치라는 지적도 간과할 수는 없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은 야당의 협조를 얻지 않으면 법을 통과시키기 어렵게 돼 있는 법이다. 야당의, 소수당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놓은 것”이라며 “이 제도와 절차에 충실한 게 정략적인 수단이라면 그 법을 만든 새누리당은 정략적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냐. 그건 제 얼굴에 침 뱉는 그런 부끄러운 짓”이라고 비판했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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