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과목 배우러 다른 학교로 떠나요”
“원하는 과목 배우러 다른 학교로 떠나요”
  • 이원우
  • 승인 2013.10.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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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일반고 점프업’ … 혁신학교 뛰어넘는 효과 거둘까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의 교육 철학을 설명할 때 반복해서 강조하는 두 단어가 있다. ‘꿈’과 ‘끼’다. 이는 교육학자로서 문 교육감의 연구 성과와도 연결되는 단어들이다.

문 교육감은 학자 시절 IQ 지수에 집착하는 기존의 지능이론에서 벗어나 포괄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의 적성을 찾도록 돕는 다중지능과 정서지능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한 바 있다.

지난 8월 말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반고등학교 점프업’ 프로젝트는 문 교육감의 교육철학이 드러나 있는 계획이다. 문제의식은 일반 고등학교의 교육 여건이 지나치게 낙후돼 있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4월 초 복수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재학생의 30%가 ‘수능 최하위 성적’인 서울지역 일반고가 전체의 30%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반고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결과로 분석됐다.

서울시교육청은 문제의 근본을 ‘자율성 제한’에서 찾았다. 일반고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의 자율성이 특목고, 자사고, 자율고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2009 개정교육과정 기준으로 학생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이수단위’가 일반고의 경우 자율형 사립고의 2배인 116단위 이상에 달한다.

이와 동시에 직업교육과 예술교육에 대한 기회는 부족한 상태여서 많은 숫자의 일반고 학생들은 꼼짝없이 낙후된 교육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없거나 그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이 너무 적어 다수의 논리에 맞춰 학문적 호기심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배우고 싶은 과목’ 찾아 떠나는 아이들

점프업 프로젝트 중 ‘교육과정 거점학교’는 학생이 반드시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시작된다.

일반고에서 선택 학생이 적거나 교원 수급, 교실 등 물리적 공간 등의 한계로 학교 단위에서 운영하기 어려운 진로집중과정을 개설해 본교 및 인근 학교 학생들에게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목적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이나 선생님을 찾아 인근 학교로 떠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2013년 2학기 현재 24개교가 음악, 미술, 체육, 과학, 제2외국어, 직업과목 등에 대해 교육과정 거점학교를 운영 중이다. 2014년에는 7개교가 추가 운영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과 이호둔 장학관은 “학생들의 희망대로 운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강조하며 “시범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계획을 더욱 확대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거점학교’는 그 명칭 때문에 시행 초기 적지 않은 오해를 야기하기도 했다. 거점(據點)이라는 단어가 마치 우수한 아이들만을 따로 분리해서 교육시킨다는 뉘앙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영어와 수학에 대한 심화학교 운영 계획을 밝혔다가 철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청은 이 계획 역시 ‘분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하고 못하는 학생은 꿈과 끼를 살리도록 하는 취지”였음을 강조했다. 다만 영어와 수학 심화과목은 단위 학교에서 편성 및 운영하는 것으로 기존의 계획을 수정했다.

‘혁신학교’ 넘어서는 히트상품 될까

문용린 교육감의 ‘점프업’ 프로젝트는 경기도에서 시작된 혁신학교 실험과 대조를 이룬다. 공교육의 회복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두 시스템의 목적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혁신학교의 방점이 ‘학교’ 그 자체에 찍혀 있는 반면 점프업 프로젝트의 강조점은 ‘교육 과정’에 찍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체험학습과 자연교육, 평등과 공동체 교육을 강조하는 혁신학교의 커리큘럼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훌륭한 시스템이다. 학부모들에게 비용도 거의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다만 현재의 혁신학교는 저학년과 고학년의 만족도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혁신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학년 때에는 혁신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를 받지만 고등학교·대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학년이 되면 비(非)혁신학교로 전학을 보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괴롭기는 하지만 교육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학생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매개체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은 풍토에서 이상주의적인 교육을 하지만 학업 성취도는 낮은 혁신학교는 ‘입학시키고 싶지만 졸업시키기는 싫은’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감으로 하여금 혁신학교 운영을 강제하는 ‘혁신학교 조례안’ 통과에 대해 재의 요구를 하는 대신 ‘일반고 점프업’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이 시도가 기존의 교육과정에 큰 변화를 가하지 않으면서도 학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공교육의 ‘묘수’로 기능할 수 있을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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