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케네디가 못생겼다면
만약 케네디가 못생겼다면
  • 이원우
  • 승인 2013.11.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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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외모에 이승만의 내공을 갖춘 정치인을 기다리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슈퍼스타K처럼 생방송으로 ‘칼럼 공모전’을 해 보면 재미 있지 않을까? 지금 시점에서 누가 가장 잘 쓰는지를 라이브로 겨뤄보는 거다.

제한시간 1시간, 인터넷검색 불가, 인용 불가, 분량은 A4 1장 등등의 조건을 걸고 철저하게 논리와 사고력 중심으로 싸워 보면 재미 있을 것 같다. 현대판 과거(科擧)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행사야말로 국민들의 지력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을는지.

이 대결의 좋은 점은 누가 썼는지 모르는 상태로 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교수고 유명논객이고 기자고 간에 이름값으로 거품 낀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판다는 사람들이 쓰고 있는 글을 보면 과연 이 사람이 글 솜씨 하나만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건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이미지’가 좋아서 인기를 얻은 건지 의심스러워진다.

조정래는 최근의 히트작 ‘정글만리’에서 일본인 등장인물에 굳이 ‘이토’나 ‘도요토미’ 같은 성을 붙여가며 노골적으로 반일감정을 부추긴다(그러더니 중국에 대해서는 길바닥에 똥을 마음껏 쌀 수 있는 인간적인 나라라며 두둔한다).

팔로워가 170만 명에 육박하는 이외수가 “달에 거주하는 지성체와 교신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주워섬겨도 책은 잘만 나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미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생방송의 압력 속에서도 지성의 끈을 놓지 않고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정치인에게 ‘이미지’란 무엇인가

존 F. 케네디에 대한 생각을 하던 와중에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케네디가 이미지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운발 100%’의 정치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의심이다.

1960년 9월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대선후보 TV토론을 했을 당시 TV를 본 공화당원들은 닉슨이 케네디에게 완벽히 제압당했다고 생각해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재미 있는 건 똑 같은 토론을 라디오로 들었던 공화당원들은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당선을 확신했다는 사실이다.

2003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시행된 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둘의 토론 내용을 타자로 쳐서 읽게 했더니 결과는 닉슨의 압승이었다. 녹음된 내용을 듣게 했더니 결과는 박빙. 하지만 TV를 보여주자 다시 한 번 결과는 케네디의 압승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도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만약 케네디의 눈빛이 조금만 옅었더라도 현대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반론도 있을 수는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이미지도 관리해야 할 자산이 아니냐는 거다. 맞다. 사람들은 누구도 비참한 인상의 사람에게 표를 던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에도 (특히) 보수 성향의 정치인과 논객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만 케네디의 문제는 집권 이후에도 이미지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낳는 아이마다 족족 추남추녀여서 결국 고소를 당했다는 중국의 성형미인 이야기처럼,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에 내놓은 케네디의 정책은 반공(反共) 말고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었다.

이런 사람이 뭐가 좋다고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그를 맹렬하게 지지했던 것일까. 가만히 보면 좀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외모나 집안 같은 운명적인(?) 부분에 관대한 것 같다. 한국의 경우에도 국민들의 학력 수준이 올라갈수록 이미지에 휘청거리는 현상이 더 도드라지고 있지 않은가.

‘예쁜 여자’라는 책을 쓰면서 알게 된 케네디의 또 다른 이면. 마릴린 먼로가 케네디와 불륜관계였다는 소문은 알고 보니 상당히 신빙성 있는 사실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발간된 책 ‘이 소중한 나날들-잭과 재키의 마지막 해(These Few Precious Days: The Final Year of Jack with Jackie)’에 따르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부인 재클린도 인지하고 있었다. 마릴린 먼로가 케네디와의 연락두절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이승만이 잘 생겼다면

그 뿐인가. 케네디 재임 당시 백악관 공보실의 19살짜리 인턴이었던 미미 앨포드 역시 2012년 발간된 회고록을 통해 그의 방만한 생활을 폭로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케네디의 문란한 사생활은 그 사례가 너무 많다. ‘설마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런 짓까지 했을까’ 싶은 선입견에 가려져 실체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알면 알수록 깨는 인물이 바로 케네디다.

역사는 흐르고 흘러 이미지 정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케네디의 ‘21세기 버전’은 현직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성공 비결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있으면서도 ‘티파티로부터 미국을 지킨 인물’ 쯤으로 평가받고 있는 건 어떤 의미에서 정말 대단한 일이다. 좌우를 가로질러 모든 사람이 외모지상주의자인 한국에서 케네디와 오바마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이승만을 생각한다. 만약 이승만이 젊고 잘생긴, 딱 케네디 정도의 캐릭터였더라도 그에 대한 평가가 지금처럼 박했을까 싶어서 말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의 나이 73세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이승만을 떠올릴 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과 쌍꺼풀 없는 눈과 입가의 팔자 주름과 고집스럽게 앙다문 입술을 떠올린다.

생방송으로 글쓰기 대결을 펼쳤다면 과연 케네디가 이승만에게 명함이나 내밀 수 있었을까. 이승만 정도의 인물이 이미지 때문에 저평가 받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뭐 어쩌겠는가. 케네디의 이미지와 이승만의 내공을 모두 합친 인물을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수밖에.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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