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선택이 승부를 갈랐다
충청도의 선택이 승부를 갈랐다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12.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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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당선에 큰 역할을 한 김종필 前 자민련 총재

1992년 이후 영남과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대립해 온 양당 구도 하에서 충청도는 역대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해 왔다. 14대 대선 이후는 충청도에서 패배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례가 없을 정도다.

1992년 대선은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정주영 국민당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승자는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공화당을 포함시킨 ‘3당 합당’의 주역인 김영삼 후보였다.

김영삼 후보는 42%의 득표율을 기록, 33.8%에 그친 김대중 후보를 약 190만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충청도는 김영삼 후보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

김영삼 후보는 충북에서 38%를 얻어 김대중 후보(26%)에 앞섰고 대전에서도 35% 대 29%로 김대중 후보에 우세했다. 충남 역시 37%의 득표율로 29%에 그친 김대중 후보에 비해 많은 표를 얻었다.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DJP 연합’을 성사시키면서 승리했다. 김대중 후보는 전국 40.27%의 득표를 기록하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38.74%)에 약 1.5%p 차이로 이겼는데 역시 충청권에서의 승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후보는 충북에서 37% 대 31%로 이 후보에 앞섰고 대전에서는 45% 대 29%로 격차를 더 벌렸다. 김 후보는 충남에서도 48%의 득표로 24%에 그친 이 후보에 더블스코어로 앞섰다.

김종필 총재의 막판 지원 유세가 충청권의 표심을 김대중 후보 쪽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이회창 후보의 고향이 충남 예산임에도 김대중 후보에게 충청권에서 완패했다는 사실은 당시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 총재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단독 출마를 했던 이인제 후보도 충청권에서 20%대의 득표를 기록하며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

盧 수도이전 공약, 충청 표심 흔들어

2002년 대선에서는 97년과 같은 지역 연합보다는 충청권을 겨냥한 공약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2002년 11월말.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국민승리21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그후 이회창 후보의 추격이 거세지자 노 후보는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결국 노 후보는 48.91% 대 46.58%로 이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실제로 수도이전 공약은 충청권 표심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노무현 후보는 충북에서 50% 대 43%로 이회창 후보에 앞섰고 대전에서는 55% 대 40%로 격차를 더 벌렸다. 이회창 후보의 선산이 위치한 충남에서도 52% 대 41%로 노 후보가 앞서면서 대선의 향방을 충청도가 결정지었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양자 대결이 예상됐으나 한나라당 창당의 주역이면서 이전 두 번의 대선에 출마했던 이회창 전 총재가 탈당 및 단독 출마를 강행하면서 돌연 3파전으로 둔갑했다.

이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는 역대 대선 사상 가장 큰 격차인 550만표 차이로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득표율은 이명박 48.67% 대 정동영 26.14%로 더블스코어에 육박했다. 이회창 후보도 15.7%를 득표하며 비교적 선전한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압승했는데 충청도에서의 득표 격차는 타 지역에 비해 적었다. 이명박 후보는 충북에서 42%의 지지를 얻어 정동영(24%), 이회창(23%) 후보에 앞섰다.

대전에서는 이명박 36%, 이회창 29%, 정동영 24%로 각각 나타났다. 충남에서는 이명박 후보(34%)와 이회창 후보(33%)의 득표율이 거의 같았고, 정동영 후보는 21%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인해 전국적인 민심이 이명박 후보에게 쏠리면서 거둔 수월한 승리였으며 전국 득표율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충청도가 결정적인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충청-영남에서 동시에 앞선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대선은 ‘충청도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된 선거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전국 득표율은 51.55%로 문재인 민주당 후보(48.02%)보다 3%p 높았다. 격차가 미세했기 때문에 충청권에서의 승리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후보는 충북에서 56.22% 대 43.26%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대전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49.95% 대 49.7%로 문재인 후보에 미세하게 앞섰다. 충남에서는 박근혜 56.66% 대 문재인 42.79%로 격차가 더 컸다.

경북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이 충청도에서 압승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모친인 故 육영수 여사는 충북 옥천 출신으로, 이로 인해 충청권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외손녀’라고 여기는 정서가 있다. 특히 고인이 젊은 시절에 서거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역 정서가 더 애틋해진 측면도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았을 때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원안 고수를 주장한 바 있다. 이 역시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 막판에 이회창, 이인제 등 충청권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자유선진당과 당대당 합당에 성공하면서 충청표가 집중된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서울에서 51.42% 대 48.18%로 약 20만표 뒤졌는데 충청권에서 약 28만표를 앞섬으로써 서울에서의 패배를 가볍게 상쇄시킨 것이다. 결국 기존의 지지 기반인 영남권에서의 압도적인 승리에 이어 충청권에서도 압승을 거두면서 박 대통령은 당선될 수 있었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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